지구 위를 걷기

by Soopsum숲섬


어린 시절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나면 혼자 세수하는 시간이 싫었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내 앞에 무엇인가 나타날 것만 같아서. 밤에 바깥에 있는 화장실 가는 게 무서워 참은 적도 있다. 동생과 함께 화장실에 가면 나만큼이나 무서워하는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힘이 났다. '전설의 고향'이나 낮에 들은 무서운 이야기 속 저승사자, 처녀귀신, 토막살인, 교통사고 그런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도시에서 보낸 2, 30대 시절은 마치 벼랑 위로 나 있는 위험천만한 좁은 길을 걸어가듯 늘 위태롭고 조심스러웠다. 곧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걱정이 많았고 불안한 마음이 잦았다. 떨어지면 죽을 정도로 높은 데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길을 잃을 만큼 깊은 정글에 들어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아끼던 이의 무덤 가는 길,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돌아오는 일은 특별한 평화를 준다. 묘지 옆에 새로 생긴 축사에서 들리는 소울음소리, 소똥 냄새, 뻐꾸기 소리, 근처 밭에서 틀어둔 라디오 소리가 있어 여기 계시는 영혼님들 덜 심심하겠단 생각을 하게 한다. 꽃 한 다발과 고인이 좋아하던 아이스커피 한잔. 미안, 샷 추가를 못했어요, 사과하다가 뜨거운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아, 선크림을 안 바르고 왔네, 하며 사소한 생각을 하는 나 때문에 피식 웃게 된다. 도보 여행 때 크고 작은 마을 가운데에 자리한 성당을 지나고 나면, 반드시 마을 끝에 자리한 묘지에 다다르게 되는 시간이 좋았다. 고인의 이름과 생몰년, 가족과 지인들이 올려뒀을 사진과 마른 꽃과 작은 선물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랑하다 죽는 일도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서 흙을 만지는 일도 비슷한 평온을 준다. 요즘 유행하는 어씽Earthing, 맨발로 흙을 밟으며 자주 걷는 시간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