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피는 우정

by Soopsum숲섬


버찌 도둑 /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느 이른 새벽닭이 울기 오래전

휘파람 소리에 잠이 깨어 창문으로 갔다.

내 벚나무 위에 ㅡ 여명이 정원에 깃들어 있었다 ㅡ

기운 바지를 입은 한 젊은이가 앉아서,

신나서 내 버찌를 따는 거였다. 나를 보고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고, 두 손으로

버찌들을 가지에서부터 그의 주머니로 옮기는 거였다.

내가 다시 침대에 눕고도 한참 동안

그의 짧고 흥겨운 휘파람 노래를 들었다.

(1938)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베르톨트 브레히트, 박찬일 옮김. 민음사 (2018)



N이 지난여름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 S님의 집에 들렀다.

지난번 이사한 집이라고 들렀더니 몇 년 전까지 지인이 살던 집이라 깜짝 놀랐다.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늘 김치, 반찬이며 말린 버섯이나 과일들을 챙겨주시는 통에 우리도 뭔가 주고 싶다 싶어 매운 돼지갈비찜을 푸짐하게 해서 냄비째 들고 갔다.


짐 정리가 거의 다 되어 집은 한가로웠고 마당 빨랫줄엔 빨래가 바싹 마르고 있었다. 140평 정도의 땅에 시멘트 바른 흰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파란 지붕의 안거리 밖거리가 마주 보며 놓인 전형적인 제주집이다. 텃밭이 너른 뒤뜰엔 황칠나무 묘목 세 그루, 작은 귤나무와 큰 감나무 한 그루 씩이 있었고 S님이 심어 놓은 상추 모종들이 푸릇푸릇 자라고 있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햇빛도 많이 들고 텃밭도 있고 다 좋은데 난방이 안돼서 겨울에 추워 큰일이다, 며 걱정을 하다가 N이 이 집 놀고 있는 아궁이에 불을 때 보자고 제안했다. N과 S는 당장 밭 여기저기에 쌓여있던 나무들을 주워다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번 아는 분이 살 땐 아궁이가 있는 줄 전혀 몰랐기에 네 개의 아궁이가 놓인 쑥 들어간 옛 부엌 같은 장소에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바깥은 약간 녹슬어 보이지만 안은 멀쩡한 무쇠솥까지 있었다. 불을 지피며 솥에 물을 부어두자 금세 부글부글 힘차게 끓기 시작했다. 아궁이 옆으로 금이 가 있고 양옆의 두 아궁이로 연기가 마구 새어 나왔다. 적당한 포대로 구멍들을 막았더니 잠시 후부터는 앞뒤 연통으로 제대로 연기가 흘러나갔다.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 두 분이 차례로 들르셨다. 불 피우네, 하시면서. 여기 구멍들을 어떻게 막아야겠다는 둥, 땔감은 어째야겠다는 둥, 이전 이사 간 친구는 잘 사냐는 둥. 생각지 못한 이웃들의 등장에 다시 한번 우리의 시골살이가 실감 났다.


N은 S에게 나무 마구 집어넣지 말고 딱 여기 있는 것까지만 넣어야 해, 당부를 하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맞은편 이웃집 뒷마당에 석류가 빨갛게 열려 있었다. N은 자연스럽게 다가가 아이처럼 석류를 땄다. 저거 덜 익어서 많이 실 텐데 S가 걱정하는 소리도 못 듣고 N은 따자마자 껍질부터 까서 석류알을 입에 넣는다. 집주인이 본다 해도 두 사람은 태연하게 인사를 나눌 것 같다.


집에 와서 잡초를 뽑다가 전화를 받았다. 아들 방이 뜨끈뜨끈 하다고, 덕분에 불도 때보고 난방되는 것도 알게 돼 고맙다고. 난방이 안돼서 싸게 얻었다던 집인데, 다 좋은데 겨울에 추워서 큰 걱정이다 하던 집인데, 파란 대문 집은 이제 N과 동네 사람들이 은근히 부러워하는 근사한 시골집이 되었다. 밤에 반딧불이 두 마리를 올해 들어 처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