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에 살러 왔던 첫여름, 극심한 가뭄이 있었다. 지내던 게스트하우스의 외부 화장실에 뱀 한 마리가 물을 찾아 들어올 정도로 심각한 가뭄이었다. 이렇게 며칠만 더 지나면 상수도에 물이 부족할 거란 문자가 날아들었다. 당시 이웃에 살던 N의 집에 갔더니 그는 없고, 곱던 해바라기와 토란들이 바짝 말라 비틀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육지에 나간 N과 통화를 했는데, 그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줘."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은 산에서 어린 제피나무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와 뒤뜰에 심었다. 책상에 앉으면 창밖으로 새 식구가 된 제피나무가 보였다. 겨우 50센티의 크기인 작은 나무가 몸살을 끝냈는지 잎이 푸르러지고 새 가지가 돋아나고 있었다. 어느 날 누에처럼 생긴 커다란 애벌레 한 마리가 나타나 가장 아래쪽 가지에 부담스럽게 큰 몸을 얹고서 한 잎 한 잎 나뭇잎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다음날 보니 애벌레는 위쪽 가지로 옮겨가 있었다. 다음날은 다른 가지로, 자꾸만 위로 옮겨가 나뭇잎을 먹어치웠다. 결국 제피나무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있다가 죽고 말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해바라기와 제피나무를 바라보며 가엾다고만 생각했을 뿐 물을 준다거나 벌레를 잡아주면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언제나 수동적이고 자기 방어적인 이런 태도는 지난날 내가 살아온 시간의 선택과 행동을 좌우했고, 더없이 나를 우울하고 불행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했다. 그 상태와 이유의 근원을 리베카 솔닛의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창비, 2022)을 읽으며 발견했다.
"존재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기에, 존재하지 않는 법을 익혔다." 78.p
"내 경우에는 침묵당한 것이 아니었다. 내 말이 저지된 일은 없었다. 내 말은 아예 시작되지 않았다. 혹은 어떻게 저지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일찌감치 저지되었다. (…) 내가 주장을 말할 수 있다는 생각, 상대에게 내 주장을 존중할 의무가 있고 실제로 그럴 의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말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 리베카 솔닛
-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김명남 옮김. 창비, 2022
'공정', '자유', '평등'이라는 가치는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번지르르한 말일뿐이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우리가 억압받아오고 통제되고 있었다는 사실과 아직까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훨씬 많을 만큼 교묘하게 꾸려지고 조작되어온 현실에 진심으로 분노하게 된다. 나 혼자만의 것인 줄 알았던 문제들이, 사소하게는 연인이나 가족 간에 이뤄지는 권위주의적인 말과 태도의 문제에서부터, 말 잘 듣는 국민을 만들기 위한 교육과 장애인이나 약자, 소수자에 대한 차별, 여성 억압, 노동자 탄압, 민주주의의 억압, 자본주의 시대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 문제들은 누구와도 무관하지 않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이제는 몇 번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을 주러 갈 수 있다. 벌레를 잡으러 가겠다. 말로만 안타까워하지 않고 손 내밀어 당신을 만지고 마음으로 위로하겠다. 함께 눈물 흘리겠다. 이 기사는 잘못되었다고, 한쪽으로 치우쳐 편드는 잘못된 기사라고 하루에도 수십 번 댓글을 달고, 목소리 내어 외치겠다. 사랑의 혁명을 노래하는 김선우 시인의 시구절처럼 "독자적인 팔랑거림"을 가진 나뭇잎이 되어 살아있는 내내 온 힘을 다해 팔랑거리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나와 당신을 읽고 싶다. 읽고 싶은 만큼 간절하게 쓰고 싶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 나와 남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저항이었고, 생기를 되찾는 일이었고, 힘을 얻는 일이었다. 그것은 나무들의 숲이 아니라 이야기들의 숲이었고, 글쓰기는 그 숲을 통과할 길을 그리는 일이었다. 64.p - 리베카 솔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