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작은 앵두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한 그루는 주방 쪽으로 난 출입문 앞 뒤뜰에, 또 한 그루는 앞마당에 있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가지가 소복하게 덮이도록 앵두꽃이 피었다. 동박새들이 날아와 노는 모습을 보자니, 올해엔 앵두가 많이 열리려나 기대하게 된다. N은 "작년에 저 나무에 앵두가 딱 하나 열렸어. 보고 또 보다가 지금쯤 다 익었을까 하고 가봤더니 벌써 떨어지고 없더라." 아쉬워하며 이번 참에 두 그루를 가까이 옮겨둘까 고민하였다. 그러나 벌써 두 해를 살아오며 뿌리는 얼마나 마음껏 자라났을지. 우리 마음대로 자리를 옮겨도 되는 것인지 쉽게 정할 수가 없었다.
식물들은 씨앗인 상태로 자신이 싹트고 뿌리내릴만한 좋은 장소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몇 년 혹은 몇백 년이고 기다릴 줄 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폭탄이 떨어져 불이 났고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은 물을 쏟아부었다. 이 물 때문에 500년이나 된 박물관의 씨앗에서 싹이 튼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경남 함안에서도 700년 전 고려시대의 씨앗 10개가 발견되었는데 그중 4개가 싹을 틔웠다. 박물관에선 이 식물에게 '아라홍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아라홍련이 되기까지 연못 퇴적층에 파묻혀있던 작은 씨앗이 보낸 700년의 기다림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씨앗들이 자신의 이동을 위해 선택한 방법을 살펴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많은 씨앗들이 바람에 몸을 날려 이동하는데, 어느 씨앗들은 특별히 산불이 나길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불이 난 후 대부분의 식물이 죽고 난 자리엔 영양분이 풍부하고 씨앗이 발아하고 성장하기에 좋은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동물들의 몸에 붙어 이동하는 씨앗들, 달콤한 과일을 만들어 새나 포유류의 먹이가 되는 방법으로 이동하는 씨앗들과 물을 타고 흐르며 이동하는 씨앗들까지. 세상의 씨앗들은 지금도 자신이 살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몸을 던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이거나 이미 도착해 끈기 있게 기다리는 중이다.
사람이 옮겨 심은 묘목의 경우는 스스로 발아한 식물에 비해 병약한 나무로 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연한 듯 의심하지 않고 농약을 뿌린다. 유기농이 아닌 노지 귤밭에 농부들은 일 년에 12~15차례씩 농약을 뿌린다. 귤 따는 일을 하러 가면 유기농 밭은 흙냄새, 나무 냄새 가득한 기분 좋은 곳이지만(게다가 맑은 날만 귤을 따기에 새파란 하늘과 귤과 초록잎과 가지의 색상 대비는 빼어나게 아름답다), 농약을 친 밭에서는 한두 시간만 일해도 혀가 말려들어가는 것 같고 목이 타는 것처럼 싸하다. 그곳에선 오직 농약 냄새만을 맡을 수 있다.
잡초를 뽑다 보면 지치지도 않고 올라오는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제비꽃이나 아프리칸 데이지, 각양각색의 다육이들, 보라색, 흰색, 노란색 이름 모를 꽃의 군락이 정원 군데군데 생겨나고 있다. 로즈메리 꽃도 야생 사과꽃도 예쁘게 피었다. 저절로 생겨난 것, 자연스러운 것이 강하고 진실하단 사실을 작은 정원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