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눕다 #11 :<물질적 삶> 마르그리트 뒤라스
눈이 아프고 난 후, 나를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대신 두세 달에 한번 안센터에 검진하러 가면 사진관에서 기념 촬영하듯 오른쪽 눈 사진을 찍는다. 초접사 카메라로 한쪽 눈만 찍는데도 온몸을 바로 세우고 반듯하게 고쳐 앉게 된다. 어쩐지 내 눈을 통해 한번도 본적 없는 내 영혼이 사진으로 환히 찍혀 나올 것만 같다. 눈이 영혼의 창이라면 세상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누군가가 내 눈을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고 보니 서로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는 이들이 요즘은 드문 것 같다). 눈 사진을 아무리 봐도 영혼까지 뚫어볼 능력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래서 영혼을 드러내는 글을 쓰거나 읽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한 편의 시나 글은 네거티브 필름 한 장 같은 존재이고 글을 모아둔 책은 영혼의 사진첩 인지도 모른다. 내 눈을 찍은 사진들이 차곡차곡 모여 나중에 무얼 말해줄는지는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병원에 가기 전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었지만 마음과는 달리 계획대로 움직일 기운이 부족했다. 결국 과감히 포기하고 병원만 다녀왔다. 여행 지도에 겨우 점 하나를 찍는 방식이다. 선이나 면을 그릴 힘이 없을 때는 한 개의 점을 최대한 정성 들여 찍는 방식으로라도 움직이는 수밖에.
등과 배 가운데, 위장이 위치한 부분이 아직 편치 않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스트레칭을 자주 한다. 부드러운 음식을 정성스럽게 먹는다. 조심해서 먹은 후 걷는다. 육지에 있는 동안 조용히 내리는 눈을 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진료가 끝나고 병원과 가까운 서래마을을 향해 걸었다. 처음에는 이 광고와 간판들을 차라리 읽을 수 없는 곳에 도착했다면 좋았겠다 잠시 바라다가 곧 간판 읽는 일에 빠졌다. 거리의 르누아르 풍 그림이나 유럽풍 디저트 카페보다도 ‘수다’니 ‘NAMU'니 하는 우리말 간판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중 ’ 물결‘이라는 필라테스 학원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잔잔하게 혹은 세차게 너의 몸과 일상을 바꿔줄게, 같이 바꿔보지 않겠니, 물어보는 자신감 넘치는 프러포즈 같기도 하다. 프랑스 학교의 뒤뜰에서 왁자한 아이들의 함성이 들린다. 골목 귀퉁이에 자리한 작은 카페에서 최대한 연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카푸치노는 부드럽고 포근했다. 올해 마신 커피 중 최고였다.
동네의 한쪽 작고 평범한 공터에 색다를 것 없는 파리 15구 공원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뒤라스의 ‘파리’에 대한 글을 읽으며 서울과 참 닮았단 생각을 했다. 대도시와 시골의 운명, “교육과 예절과 섬세함과 정신”을 잃어버리고 “돈벌이 기술만(143쪽)”을 익힌 채 도시에 사는 노동자들의 모습도 같다. 서래마을에서 살던 이들도 파리를 그리워했을까. 전 세계엔 이렇게 부서진 파편처럼 작은 파리 공원들과 무수한 코리안타운이 있겠지. 그러나 어제의 그곳엔 아무도 없었고 “나의 이야기는 매일매일, 그리고 그 매일의 매 순간에 삶의 현재에 의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물질적 삶> 민음사(2019), 98쪽.)”라는 뒤라스의 글만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