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살기

아니 에르노 <칼 같은 글쓰기>

by Soopsum숲섬


1. 아니 에르노의 읽기와 쓰기


인터뷰를 통해 아니 에르노는 젊은 시절의 책읽기에 대해 들려주는데, '모든 문학이론에 관심'을 가지며(《칼 같은 글쓰기》118쪽) 폭넓게 또 깊이 수많은 저자들의 책을 읽고 영향받았음을 밝힌다. 특히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초현실주의자들처럼 '비할 데 없는 투명성을 담은 다양한 시도들'(117쪽)에 대해 언급하며 "텍스트와 비평가들과 줄곧 대화를 나누면서 글을 써"왔고, "작품의 리얼리티에 대해 '어떻게' 그리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비평의 자세로 작품을 읽어왔음을 말한다.


브르통이 <나자>의 서두에 기록했다는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는지, 내가 어떤 독창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125쪽)이 가장 선행되어야 할 탐구인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적절하고 정확한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 자신만의 구조로 된 '진정한 장소'로 구축해 내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와 문장들은 모두 역사 속의 타인들과 더 정확히는 다른 글, 즉 책으로부터 온다. 아니 에르노의 경험으로부터 탄생한 "진실과 정확성(19쪽)"으로 쓴 글이든 뒤라스의 "허구" 대해 쓴 글이든 모든 소재는 작가의 경험과 기억, 감각에서 시작된다. 다만 그것을 쓰는 과정에서 가장 정확하고 새롭게 표현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을 만치 노력하는 존재들이 바로 '작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중립적'이고 '간략한' 문장으로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거리두기'와 '객관화'를 통해 리얼하게 표현하는 글쓰기를 평생 해왔다.


프레데리크 Y. 자네 : 아니 에르노는 "실존의 고통과 즐거움과 복잡함을 적나라하게, 뼛속까지 파헤치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마침내 "그 본질을 추출해 낸다". 그녀는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하거나 말하지 않는 것의 경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6쪽)



2.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내 책들을 '살고' 있다



글을 쓴다는 사실이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믿습니다. 때때로 난 삶과 글쓰기라는 두 차원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나는 내 사랑 이야기를 '쓰고' 내 책들을 '살고' 있다" 《탐닉》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내 삶과 내 책들 사이의 접근과 교환,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투쟁입니다. 그러한 상호작용은 내 삶 속에서, 내 책들 속에서, 사랑과 성과 글쓰기 그리고 죽음 사이에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58쪽)


사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거기 이르렀는지 이야기하지 않고는 그것들에 대해 말하는 게 불가능해요. 모든 것ㅡ존재들, 나, 내 생각ㅡ이 내게는 역사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삶의 사건들을 통과하면서, 글쓰기에 관한 나의 관념 혹은 직관을 전복시켜 버린, 문학과 현실 사이의 일종의 정면 대질이라고 할 과정을 겪었습니다. (99쪽)



"책에서 중요한 것은, 그 책들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외부에 일어나게 되는 어떤 것."(95쪽)이라고 아니 에르노는 말한다. 그녀의 작품을 읽으며 바늘구멍 사진기처럼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특수한 경험들과 회상(어린 시절, 낙태의 경험, 열정적인 사랑, 부모님의 죽음 등)에 참여하고 동감했던 느낌이었다면 이번에 《세월》을 읽으면서는 이 모든 사건들을 하나로 꿰어 아우를 수 있는 목걸이의 완성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글쓰기가 '문학과 사회학과 역사 사이에' 위치한다"(105쪽)는 문장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거대한 책이었다. 《세월》안에서 전쟁 직후의 대한민국을 보았고, 표류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근대화에 휩쓸리는 부모 세대와 과거의 내 모습을 보았다. 우리와는 다른 프랑스의 모습도 보았다. 흐르는 시간과 장소 속에 놓인 '나'라는 존재를 아니 에르노가 선택하고 구축한,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작품 속의 '그녀' 또한 그녀만의 리듬과 속도를 가지고 독자적인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속에 '우리'라는 존재가 있고, 읽는 내내 '우리'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나이마다 자신이 살아온 해를 규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과거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세월》97쪽)



당장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의 오늘, 어제 그리고 살아온 해를 무엇으로 어떻게 규명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아니 에르노가 말한 대로 나의 삶을 '쓰고', 쓰는 순간 문장 속의 내가 나를 뛰어넘고, 매번 뛰어넘을 수 있고, 그 글과 타인들의 글을 통해 읽고 생각하는 나는 어제의 나를 뛰어넘는다. 글을 쓰기로 선택한 것은 그런 상태, 그 위험을 끌어안고 계속 고민해 보고 탐구하려는 의지의 손을 들어주고 언제나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상태가 아닌 활동'(158쪽)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열정'에 대해 '존재 전체를 사로잡는 총체적 희열이자, 현재 속에 갇혀 있는 상태'(158쪽)라고 말했다. 앞에서 '내면일기'에 대해서도 '순전히 거기-있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진술'(30쪽)이라고 말했다. 글쓰기는 내가 '계획하고 변형'하는 것, 스스로 구축하고 건축하는 것, 그리고 그 모두를 허물고 더 나은 것을 만드는 활동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일은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칼 같은 글쓰기》처럼 《세월》도 4분의 1 정도가 남았다. 아직 내가 살아보지 못한 미리 도착한 한 갈래의 가능성을 지닌 미래의 책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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