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동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칼 같은 글쓰기> 아니 에르노

by Soopsum숲섬



"나는 어떤 새로운 것을 향해 열리고 확장되는 듯한 진하고 강렬한 감동을 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162쪽)라는 문장을 읽으며 이것이 문학의 정의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분명 문학이라는 생각과, '문학하다'라는 동사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쓰는 이유는 '새로운 것을 향해 열리고 확장되는' 나 자신이 되고자, 그런 하루로 만들어진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아니 에르노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실제 사물들의 무게를 싣고 단어들이 단어이길 그치고 감각이 되고 이미지가 되기를 바란다"(165쪽)고 썼다. 또한 자신을 "존재들과 사물들을 대변하는 배우이자, 그것들이 존재하는 장소이며, 그것들의 증인"(166쪽)이라고 말하며 "주어진 한 사회와 시간 속에서 그 존재들과 사물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구하는 것"이 자신이 글을 쓰는 가장 큰 동기이자 "자신의 삶을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아니 에르노는 나라는 존재의 '해체와 극단적 거리두기'를 통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쓸 것을 요구하는 진실을 탐구하는 글쓰기"를 계속한다.


쓰는 사람(작가)이 글을 쓸 때 "단어가 아닌, 사물을 보고", 감정, 장면, 이미지처럼 구체적인 것들을 만나고 "내면의 귀로 듣고 옮겨 적"는다면(178쪽) 읽는 사람(독자)에게도 단어는 감각과 이미지가 되어야만 한다. 이 책에서 아니 에르노는, 쓰는 사람의 수고로움을 들려줌으로써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글쓰기가 물속의 돌을 건져내는 것처럼 구체적인 감각으로 기록하는 일이라면, 읽는 일 또한 그 돌을 꺼내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읽는 일은 쓰는 것과 같아서 나를 좀더 정확히 읽기 위해서, 타인의 경험과 감각을 통해 나와 인간을 이해하고 원하는 삶을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한다.



+ 글을 쓰는 동안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182쪽. 난 늘 내 욕망을 일단 억압부터 했던 것 같아요.


181쪽. 난 씌어지고 있는 텍스트라는 삶과 일상적 삶을 병행해서 살아요.


193쪽. '사건'은 낙태수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낙태수술에 관한 글쓰기를 이야기입니다.

기억의 문제, 즉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 모든 것을 내 인생의 다른 순간에서 끌어올 수는 없었을 겁니다. (…) 진실, '증거'가 관건이 되는 것. 그것은 글을 쓰는 순간에 내가 경험하는 것이며 나를 관통하는 것. 나는 그것을 경험하는 바로 그 순간에, '실시간'에 그것을 말하는 것이고요.


200쪽. 프루스트의 말 중 "발견되고 해명된 삶"이 핵심. (…) 말, 여행, 광경 등,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글쓰기가 무엇을 다가오게 하고 도래하게 하는지는 결코 미리 알 수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을 억압하며 산다. 누군가에게나 쓰고 싶은 몇 조각의 기억이 있다. 강렬하게 쓰고 싶은 충동이 있을 때 몇 페이지를 우선 쓰고 멈추고 한동안 보류시킨 후, 그 조각에서 출발해 글쓰기를 계획하고 '악착같이 매달려' 그 조각을 결정적 요소로 사용하며 (183쪽) 책을 썼다는 아니 에르노처럼 우리 모두도 아마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형태에 대한 질문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제기됩니다."(185쪽)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나도 몇 차례 겪어 본 신기한 경험이다. 형태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글을 써봐야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질문이 생기고 경계를 밀며 나아갈 수 있고 새로운 결론에 이를 수 있다(이 책이 어려워도 밑줄을 간추리고 다시 읽고 내 생각을 써보게 되는 이유다). 조금 전까진 세상에 없던 무엇이 글쓰기라는 시도로 인해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순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새롭게 체험하는 나만의 삶이고, 그 체험을 적는 순간을 갖고 결과물인 글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사실이, 글 쓰는 삶과 쓰지 않는 삶의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아니 에르노에게 늘 문제가 된다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거나 진실을 생산할 수 있는 형태를 탐구"(206쪽)하는 자세로 글을 읽고 쓴다면, 그렇게 살아간다면 과연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아니 에르노는 "나는 내 사랑 이야기를 '쓰고' 내 책들을 '살고' 있어요. 그것은 내 삶과 내 책들 사이의 접근과 교환, 그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속적인 투쟁입니다."(157쪽)라고 했다. 자신에게 글쓰기는 "하나의 존재방식"이자 "실현된 믿음"(196쪽)이라고도 했다. "오직 삶만이 있는 삶으로 충분하지 않"(208쪽)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진실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와 투쟁의 장이자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는 다른 차원에서 지속되는 제2의 삶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1963년 수첩 첫 페이지에 적어두고 외우고 있다는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한 글을 옮긴다.


"하나의 관념을 위해, 하나의 희망을 위해, 하나의 변덕을 위해서조차, 그는 항상 자신의 존재를 천 번이라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삶은 그에게 한 번도 충분했던 적이 없었고 그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할 따름이었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208쪽.




* 본문의 모든 인용은《칼 같은 글쓰기》아니 에르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최애영 옮김. 문학동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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