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는 화분

<슬픔의 방문> 장일호 에세이

by Soopsum숲섬



대낮의 햇살도 훈훈한 바람도 완전한 봄이다. 3년 만에 몸으로 봄을 느끼는 듯하다. 가을마다 예상치 못한 수술을 하느라 늘 집안에서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별다를 바 없는 봄을 맞았었는데, 자유로운 올봄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오곡밥과 나물을 하려고 고사리를 담그며 올해는 고사리를 꼭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내에서 가까운 지금 집으로 이사 와서는 고사리 하기나 동백씨앗 주으러 다니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최근 친구네 귤밭에 가서 오랜만에 귤을 땄다. 가기 전에 꽤 피곤했는데, 향긋한 귤나무의 향, 햇빛, 흙냄새를 맡으니 힘이 솟았다. 땅에 가까울수록 기운을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버려둔 텃밭엔 배추, 상추, 쌈야채들이 초록으로 무성하지만 어느새 잡초들도 그만큼 수북하게 솟아났다. 이사 온 지 5년 만에 도배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사오기로 했을 당시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6년을 사셨는데 집 상태가 나쁘지 않아 도배 대신 실크벽지를 직접 청소했었다. 솔로 락스 희석시킨 물을 발라 싹싹 닦으면 가구가 놓여있던 자리의 곰팡이들이 깨끗이 지워졌다. 이사오고도 별탈없이 잘 살았는데 올봄이 오기 전에 조금은 새로워지겠다. 도배를 하려면 작은 물건들이나 책장의 책들 같은 건 미리 치워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이참에 대청소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친구가 갑자기 하루 네 시간 아르바이트 어떠냐며 연락이 와서 이력서를 내놓았는데 부디 연락이 오면 좋겠다. 이제 안정된 눈에 맞게 안경을 맞췄다. 뭔가 꿈틀꿈틀 시작되고 있다.



《슬픔의 방문》을 읽는데, 쉽게 읽어지지가 않았다. 한 챕터 씩 읽고 덮을 때마다 표지 속 한 사람의 표정에서 점점 더 많은 깊은 것들이 느껴진다. 슬픔이나 절망, 상처, 화와 괴로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명 에너지가 응축된 작은 씨앗의 형태로 우리 안에 남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또는 슬픔의 정도에 따라 다른 형태로 간직되는 씨앗처럼. 누군가는 활짝 핀 민들레 씨앗이나 송홧가루처럼 툭, 건드리기도 전에 슬픔부터 터져 나오는 상태이고, 누군가는 우직하고 단단한 껍질 속에 그것을 품고 있기도 할 것이다. 다만 물이 닿고 따스함이 느껴지면, 이제 때가 되었고 알맞은 자리에 있다고 느끼면, 그들은 언제든 다시 그러나 다른 형태로 피어날 준비를 한다. 우리가 꽃이나 열매라 부르고 즐기는 모든 절정의 순간은 가장 어둡고 단단한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다. 모든 씨앗이 나무가 될 수 없듯이 모든 슬픔이 싹을 틔울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세상의 가난과 결핍과 불균형으로부터 스스로를 돌보고 아끼고 사랑했을 작가의 태도를 생각하게 된다. 이 표지의 얼굴에 점점 애정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나와 결코 다르지 않은 슬픔, 비슷한 슬픔,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을 안고서도 "어떤 문제를 해결할 힘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나에게도 있다는 걸"(76쪽) 기어이 발견한 사람의 문장은 읽는 이를 울리지 않으면서도 시나브로 마음을 적신다. 작가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에서 큰 위안과 긍정을 얻었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더 많은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슬픔을 다시 보고 슬픔을 받아들이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 같다.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살아 있는' 일이다.

고통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사회다.

수치심은 비밀 안에 싸여 있을 때에나 존재한다." -《슬픔의 방문》 장일호, 95쪽


"그렇다면 나의 이야기도 타인을 살리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해 많은 여성이 그 깨달음의 폐허 위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지치지 않고 증언을 이어 가고 있다." - 96쪽



오늘은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백일이 된 날이다. 어제 전국 곳곳에서 추모제와 윤석열 정권 규탄대회가 있었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연단에 올라 죽은 이들과 산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고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우리의 일 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이런 일들은 물론 지금보다 훨씬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있어왔다. 언제나 절망과 희망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챈다. 언제나 나는 내가 선택한 희망적인 특정한 한 곳만을 바라보거나 바라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월호와 10.29 참사의 희생자와 가족들, 성폭력과 국가폭력 생존자들(작가가 말한 것이 인상 깊어 이제 '생존자'라는 단어를 나도 사용하고 싶다.(91쪽 참조)), 과거에 있었고 현재에도 진행 중인 크고 작은 전쟁들, 이 모두를 내가 직접 돕고 관여할 순 없겠지만, 나는 이 사건을 볼 수 있고,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귀 기울여 듣고 기억할 수 있고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다. 그들이 거기 있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 것이다. 척박하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씨앗을 틔우고 그것을 가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들과 연대하고 언제나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이전에는 뭘 심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빈 화분 하나를 달랑 들고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면, 이젠 물을 주고 살피고 진정한 관심으로 나와 당신의 슬픔을 돌보고 싶다. '우리'라는 거대한 숲 속에서 맞는 '봄'을 온몸을 떨며 처음으로 느낀다. 어느 시인이 말했었다, '봄'이란 말 자체의 생김이 화분과 땅에서 핀 한 송이 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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