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읽기는 당신의 쓰기다. 당신이 쓰는 삶을 나는 읽는다.
7월부터 오직 타로를 읽고 해석하고 분석하는 일로 매일의 시간을 보냈다. 타로를 처음 알게 되고 배우려고 시도했던 건 무려 20년 전의 일이다. 그땐 명확했다. 타로덱의 카드들은 내가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카드와 도무지 읽어지지 않는 카드로 나뉘었다. 딱 나의 경험치만큼 읽어지는 것이 그때의 타로였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경험한 만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젊은 날의 독서였다. 지금의 책읽기는 다르다. 경험으로 생긴 이해와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과 시간을, 말과 글과 배경을 더 이해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자아로 끝없이 확장시키는 능동적인 활동으로 변했다. 타로 역시 상호작용의 경험과 시간이 많아질수록 정확해지고 날카로워진다. 말하자면 타로 리더(reader)란 카드가 보여주는 질문자의 무의식과 현재의 상태를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해석해 주는 통역가와 더 가깝다.
"난 너무 목소리가 작아
늘 이 문장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할 말을 못 찾을 때마다"
- <소리 줌인> 김은지 시인의 詩 중,《여름 외투》문학동네시인선 193
올해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곧 두터운 눈구름을 뚫고 올라가 해가 쨍한 비현실적 겨울 하늘을 날고 있었다. 오랜만에 밑줄을 그으며 시집을 읽었다. "난 너무 목소리가 작아" 이토록 작은 목소리로도 이렇게 섬세한 울림과 공감을 끌어내는 시라니. 이렇게 작은 목소리로도 끊임없이 읽고 쓰는 시인의 모습, 그가 있는 공간과 목소리와 계절을 상상하게 만드는 시라니.
"시는 은유를 지렛대 삼아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림으로써 짐을 가볍게 해주기도 한다." -파커 J. 파커 p.19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글항아리
타로 카드 한 장에는 하나의 사건, 특정 캐릭터, 타로가 만들어진 최초의 시공간부터 작가의 의도, 영향을 주는 특정한 에너지까지 많은 것들이 은유적으로 압축되어 있다. 타로를 공부하면 할수록 카드를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은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 성공과 실패, 힘과 조언, 희망과 두려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캘틱크로스 배열의 아홉 번째 카드는 질문자의 희망과 두려움을 상징한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인생 전체를 혹은 어제의 내 모습을, 낯설게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타로와 시는 오묘하게 같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두 물줄기처럼 반복해서 만난다는 사실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현실에 치열해진다는 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나는 무엇인가.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 모두가 나 자신이다. 어둠으로 내려앉는 것, 빛 속으로 다시 떠오르는 것 모두 나 자신이다. 배반과 충성심, 실패와 성공 모두 나 자신이다. 나는 나의 무지이고 통찰이며, 의심이고 확신이다. 또한 두려움이지 희망이다."
온전함이란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서짐을 삶의 총체적인 부분으로서 끌어안는다는 뜻이다."
-파커 J. 파커 p.31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글항아리
은지 시인의 시 덕분에 순수하게 읽는 사람으로, 잊고 있던 독자 모드로 돌아왔다. 처음 내 읽기의 시작은 내 앞의 당신을 읽기 위한 시도로부터 출발했던 것 같다. 자주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읽기였던 것도 같다. 무엇이든 좋다. 내 리딩이 질문자에게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지만, 내 삶과 시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읽기는 당신의 쓰기다. 당신이 쓰고 있는 삶을 나는 읽는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작은 목소리', 아직은 작은 울림에 불과할지라도.
"내가 쓰고 싶은 건
여름 외투
겨울보다 추운 실내에서
어깨를 감싸주는
그런
시"
- <여름 외투> 김은지 시인의 詩 중,《여름 외투》문학동네시인선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