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를 숲을 홀로 걸었다'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中, 고명재 시인

by Soopsum숲섬


아름과 다름을 쓰다

고명재



죽은 씨앗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 거야 나무가 다시 자라길 기도하는 거야 소네트 같은 거 부모 같은 거 고려가요처럼 사라진 채로 입속에서 향기로운 거


열매는 한여름 빛의 기억이라서 태울수록 커피는 반짝거리고 그 기억을 마셨으니 잠들 수 없지 불에 덴 것들은 최선을 다한다 불꽃, 파프리카는 탈수록 달달해진대 불꽃, 유기견은 눈동자가 필름 같더라 불꽃, 우리가 계속 찾아다닌 건 불에서 꽃을 건진 그 눈이다


이름하여 타버릴 이름 같은 것 이름이 리듬을 입고 믿음을 열고 아름과 다름을 쓰다 쓸쓸하더래 그 어깨의 흰빛이 아름답더래 세상을 다 태워도 꿈은 타지 않는다 새장을 열면 하늘이 가능성으로 열리듯 케냐


AA를 좋아합니다

설산을 그대로 받아쓴 것 같아서


아프리카에도 눈 덮인 산이 있다고 집이 타도 그 집의 골격이 있다고 너는 불이니 꽃이니 죽고 싶을 때마다 끝 모를 숲을 홀로 걸었다 너는 숲이다 낮인데 밤이다 물불과 술이다 서슴지 않고 어디서든 자유를 찾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리듬이라고 한다 빛을 먹고 푸르게 타는 걸 식물이라고


ㅡ《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고명재, 문학동네시인선 184 (2022)




커피를 사랑한다.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깨어있게 해서 좋아하지만 진하게 많이 마시면 밤늦도록 잠들지 못해 투덜거린 적이 많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깨어있고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몸은 이 세상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사용할 수 없음을 안다. 몸은 마음과 다른 리듬을 가진다. 몸의 리듬을 존중하지 않고서 자유로울 순 없다. 영혼과 몸이 삐걱이지 않게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만 이런 시도 오래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지나치게 아름답다. '아름'과 '다름'의 정의와 경계 끝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살다', '죽다', 불과 꽃과 낮밤과 물불, 술들이 한꺼번에 타오르는 장면을 펼쳐 보이기에, 타오르는 꽃인지 불인 지를 보느라 우리의 시간은 자신마저 잊게 된다. 소리 내어 읽을수록 천천히, 더 천천히 읽기를 반복하며 시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마법. 시 속의 화자가 그랬듯이 곱게 간 원두 위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읽고 또 읽고 싶은 시다. 그렇게 마신 커피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면 "열매는 한 여름 빛의 기억, 그 기억을 마셨으니 잠들 수 없지"라고 말해보고 싶다. 그 피로한 감각을 당연하다는 듯 기꺼이 환영하며, 꼭 처음 읽는 것처럼 이 시를 다시 읽고 싶어질 것이다. '푸르게 타'고 있는 세상의 모든 숲의 끝에서 자유를 찾아 리듬을 찾아 홀로 걷고 있는 시인들을 생각한다. 이미 '세상을 다 태워'본 자들, '불에 데었어도 최선을 다해본' 그들을. 문득 마거릿 애트우드의 성이 'Atwood'라는 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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