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로> 고명재 시인
고명재
그때 나는 골목에서 양팔만 벌려도
양파 밭을 넘어서 하늘로 떠올라버렸다
그때 나는 무결한 무릎의 탄성이었다
산비탈을 보면 리듬부터 솟았고
그때 나는 돌아다니는 환대였으므로
개와 풀과 가로등까지 쓰다듬었다
그때 나는 잔혹했다 동생과 새에게
그때 나는 학교에서 학대당했고
그때 나는 모른 채로 사랑을 해냈다
동생 손을 쥐면 함께 고귀해졌다
그때 나는 빵을 물면 밀밭을 보았고
그때 나는 소금을 핥고 동해로 퍼졌고
그때 나는 시를 읽고 미간이 뚫렸다
그때부터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 그때의 내가 창을 흔든다
그때 살던 사람은 이제 흉부에 살고
그래서 가끔 양치를 하다 가슴을 쥔다
그럴 때 나는 사람을 넘어 존재가 된다
나는 이야기다 적설積雪이다 빵의 박자다
왜성矮星에 크림을 바르는 예쁜 너의 꿈이다
그렇게 너는 작은 빵가게를 차린다
무릎 안에 소보로가 부어오를 때
그때 나는 한입 가득 엄마를 깨문다
치매가 와도 매화는 핀다 그게 사랑
뚱뚱한 엄마가 너를 끌어안는다
그때 너는 이야기며 진실이다
ㅡ《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고명재, 문학동네시인선 184 (2022)
이 시를 읽으니 문득, 어려서 이웃에 살던, 형이 나와 동갑이던 형제 생각이 난다.
한때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집으로 두 형제와 그의 엄마가 이사를 왔다. 우리는 그 앞집에 살았는데, 엄마 말로는 그 애들의 엄마가 새엄마라고 했다. 저녁이 되면 크게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 집 엄마는 단발머리에 단호해 보이는 표정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무서운 선생님 같았다. 엄마는 가끔 그 아이들 얘기를 하며 그래서 엄마 말 잘 들어야 한다고 했다. 형제들은 엄마에게 언제나 존댓말을 썼고 심부름도 잘했고 청소도 빨래도 직접 한다고 했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처럼 동화나 영화 속에만 있던 '새엄마'라는 존재는 궁금하면서도 두려운 느낌을 주었지만 더 자세한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어른들로부터 엄마가 없으면 고되고 힘든 것이라는 말을 들어 그런가 보다 짐작만 했을 뿐.
아이들과 어떻게 놀고 무슨 얘길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그 애들의 친엄마가 나타났다고 들었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나와 동갑내기던 형이 오열을 하며 가지 말라고 매달리며 울었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소리도 안 내고 울었다고도 했다. 그 저녁 이후로 형제들은 동네에서 사라졌다. 새엄마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상상 속에서 보고 싶던 엄마를 만나 원 없이 목놓아 울고 있는 형제들의 모습만 마치 봤던 것처럼 떠오를 뿐이다. 그 뒤로는 잘 살고 있겠지, 이제 투정도 부리고 엄마한테 반말도 하면서 잘 살겠지, 다른 곳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창문을 통해 뒷집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언제나 전체를 내다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내게 주어진 렌즈는 세상 전체를 담는 거대한 망원렌즈 하나와, 자리에 앉아야만 겨우 발견할 수 있는 들꽃을 찍기에 알맞은 초접사 렌즈뿐이다. 내가 하는 얘기는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작은 것 하나를 보여주고 싶어 멀리멀리 돌아 이야기를 시작하다 보면 목소리는 작아지고 흐지부지 흩어지거나 사라지고 말았다. 매번 넌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자른다는 누군가의 말이 입을 다물게 했다. 시는 그런 시선의 간격과 결함을 단번에 보충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읽기만 하는데도 모순과 불편과 넘침과 결핍까지 꼭 알맞게 표현해 준다. 그런 시를 만나면 작가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싶다. 당신이 건너온 고통과 슬픔과 피와 한숨에 귀의합니다. 이 시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과, 형제와 나 사이의 간격과 그 집과 우리집 사이에 있던 담장을 한번에 허물어버린다. 나이기도 한 네가 그동안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그저 보여준다. 고명재 시인의 시를 읽다 보니 '시'는 내게 없어선 안 될 안경처럼, 인공심장이나 시각장애인의 지팡이, 다리 아픈 자의 목발처럼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찾아낸 외부에 있는 기관이나 눈目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