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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섬 정은영 Feb 09. 2023

하늘과 바람, 별과 시

바쁜 하루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



  얼마 전 깨끗한 밤하늘을 보았다. 오랜만에 밝은 별을 스무 개쯤 보았다. 몇 개 되지 않는 별이지만 나에겐 오랜만에 보는 많은 별이었다. 기쁜 마음이 들었다. 열다섯 살 때던가, 시내 서점에서 오래 망설이다 구입했던 별자리 책이 생각난다. 페가수스, 안드로메다, 헤라클레스, 물병자리 같은 아름답고도 낯선 이름들. 별을 알고 싶고 궁금해하면서도 어둠이 무서워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머릿속에 간직한 별자리와 가끔 볼 수 있는 질서 없이 박힌 무수한 별들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배우며 살아왔던 것이다. 별자리들이 간직한 사연과 이름을 이제 알게 되고 별자리를 알아보길 무척 기대하지만, 내 눈은 빛이 없는 곳에서는 잘 볼 수 없기에 내 삶에서 별들이 영영 사라진 줄 알았다. 그날도 옆에서 저기 유성이 떨어지나 봐, 하는데 그것까지 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본 유성의 모습들이 살아난다. 다른 이들에 비해 유난히 자주 유성을 보았다. 옥탑에 살 땐 유성우가 내리는 새벽에 일어나 마음껏 별을 보기도 했다. 기억 속의 별자리와 하늘의 별들은 그렇게 서서히 하나가 되는 중이다. 비록 온전히 합일시킬 수 없다 할지라도 별들은 언제나 기쁨을 준다.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던 시간과 이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우리에게 전기가 없다면, 과연 별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될까(많은 이들이 밤새도록 연구해 결국 전기를 발명해 내고 곳곳에 공급하고야 말겠지만). 어린 왕자의 "시간이 남는다면 우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텐데"가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고, 특히 저녁이면 뜨고 있기 힘들 정도로 눈이 건조하다 싶었는데, 어제 아침에야 문득 그동안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았단 결론에 이르렀다. 좋아하던 컵이 깨져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컵으로 바꿔 사용했는데,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목마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물을 천천히 많이 마시고 있다. 뭔가 잘못되었을 때, 이상할 때, 내가 신경 쓰고 얻고자 하는 일을 잠시 치워두고 고민해 본다. 늘 있어야 하는 것, 균형, 흐름을 만드는 것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처럼 물이 부족하거나, 바람 즉 흐름을 만들어내고 환기시킬 수 있는 공기나 공간이 부족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일만 생각할 때, 확실히 나는 바보가 된다. 고개를 들어 하늘과 별을 보고 바람을 맞아야 어리석은 성질 또한 순환하며 밝은 것과 함께 어우러진다. 고이고 멈추지 않기 위한 틈과 쉼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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