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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섬 정은영 Feb 12. 2023

봄이 오는 중

배우고 싶은 기술



  며칠 전 급체했다. 저녁 식사를 평소보다 급하게 먹었던 것 같다. 평소처럼 정리하고 청소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저녁 바람이 차가웠던지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소화제를 먹는 동안 얼굴과 발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N에게 체기가 있으니 빨리 따달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손발이 저리고 숨쉬기가 고통스러웠다. 손발을 다 따고 합곡, 곡지와 등을 지압하고 주무르는 동안 땀이 식으며 몹시 추워져서 보일러를 돌리고 핫팩으로 손발을 따뜻하게 했다. 그 사이 N이 이웃 농부 친구 B를 불렀다. 금방 감은 머리를 흩트린 채 맨발인 B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땐 바람이 찬데 젖은 머리에 맨발로 왔냐고 B를 걱정할 정도로 조금씩 편안해지고 있었다. 목소리가 너무 다급해서 앰뷸런스 실려가는 줄 알았어요, 하며 걱정하는 B의 얼굴을 보니 고맙고도 안심이 되었다. 잠시 후 B는 내게 정성 들여 침을 놔주었다.


  B는 30대 아가씨지만 무척 진중하고 취향도 독특하다. 조용필과 산울림 노래를 좋아하고, 신해철의 오래된 팬이다(지금도 도서관에서 그의 책이 창고로 가지 못하게 정기적으로 대출한다). 해지는 매일과 일상의 사진을 찍어 혼자만의 사진관(?!)을 운영하고, 이제 텃밭농사와 귤농사를 지어 판매도 한다(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게 많다). B는 침 뜸에도 관심이 많아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배웠다. 곁에서 N도 함께 하지만, 우린 늘 B를 믿고 B에게 침을 놔달라고 한다. 우리 곁으로 이사 오게 된 사연도 재미난데, 앞집 사시는 이모가 놀러 와 허리가 아프다 하니, 당시 우리 집에 며칠 있던 B가 허리에 빼곡하게 침을 놔드렸다. 그게 무척 효과가 있었던지 이모님이 동네 빈 집들을 적극적으로 알아봐 줘, B가 이웃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B는 긴 시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삶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다. 특히 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 간섭하지 않지만 늘 관심을 갖고 챙기는 일을 B는 잘한다.


  그런 B로부터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침과 뜸은 자기 자신이 놓아 직접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란 점이다. 요즘 침들은 무척 가늘어서 정확한 혈자리에 꽂으면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꼭 경락에 놓지 않더라도, 아픈 자리에 직접 놓아 근육과 경혈에 자극을 주면 몸은 스스로 움직이며 나아진다. 이번에 태충, 족삼리, 합곡, 곡지에 침을 놓는 모습을 보며 나도 직접 침을 놔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B가 N에게 침놓는 모습만 봐도 무섭다고 진저리치곤 했는데, 이번엔 다르게 보였다. 병원은 몸에 관심이 없고 오직 증상만을 완화시킨다. 내 몸의 섬세한 변화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여행 중에도, 일하면서도 급체해 병원에 실려갔던 적이 있다. 살아가며 꼭 필요한 기술은 나 스스로 내 몸을 돌보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먹는 걸 조심하고 있다. 벌써 앞집 매화는 피었는데 봄은 저절로 오지 않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몸과 마음을 쭉 펴고, 숲으로 소풍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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