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다

by Soopsum숲섬


수영이 어려웠다 나는.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낙동강 상류에 있어 한해 걸러 한 번씩 아이들이 강에 빠져 죽는 사고가 났다. 살아온 아이들은 학급 친구들에게 자신이 겪은 무서운 경험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명절에 큰집에 갈 때면 낙동강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늘 죽은 아이들이 먼저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이 아이들을 잊어버릴까. 죽는 줄 알면서 주변의 누구도 죽음의 두려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는 사실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다.


오랫동안 물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수영을 배우러 처음 수영장에 갔을 때, 자꾸 다리에 쥐가 나서 당황스러웠다. 발차기를 열심히 배우고, 호흡을 따라 하고, 팔 돌리기를 잘하는 것처럼 느꼈지만, 정작 물속에 몸을 띄우고자 하면 즉시 가라앉았다(그때만 해도 나처럼 뜨지 못해 초보반을 6개월까지 다니는 이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른 이들이 나를 지나치며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나는 생각지 못한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다. 강사님이 "물에 빠졌던 적 있어요?" 라며 허리에 차는 스펀지처럼 생긴 헬퍼를 던져주었다. 난 헬퍼도 믿지 못했다. 앞으로도 수영을 못할 것이다, 란 생각에 사로잡혔다. 못할 것 같아 점점 하지 않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장에도 더는 가지 않았다.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N과 함께 표선 바다에 갔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해변이었다. 8월 중순이었고, 허리 깊이의 바다까지 걸어 들어가며 처음으로 물속이 시원하단 생각을 했다.


"저 수영 못해요."라고 하자 N은 웃으며 "내가 가르쳐 줄게. 쉬워."라고 했다.

"물에 몸을 맡기고, 팔을 이렇게 저으면서 나한테 와."


물안경을 끼고 얼굴을 물속에 담가보았다. 4-5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허리까지 잠긴 채 당연한듯 손 내밀고 나를 기다리는 N의 다리가 보였다. 그리로 가면 될 것 같았다. 들은 그대로 '물에 몸을 맡기고, 팔을 휘저으며' 나는 N을 향해 갔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N은 "나비 한 마리가 나한테 오는 것 같았어."라고 나중에 말해 주었다. 그날 갑자기 난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물속에서 처음으로 나를 잊을 만큼 신나게 놀았다.


다음 해 친구들과 함께 같은 장소에 갔다.

물은 다시 어둡고 두렵게 느껴졌고, 애쓰면 애쓸수록 나는 물에 뜰 수 없었다. 다음 해 구명조끼를 사 입고 난 후에야, 안심하고 물속에서 놀 수 있었다.


이후 해마다 검게 그을리도록 바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른 계절에 수영장도 여러 번 가 본 후에야 물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수영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이 일이 쉬운지 어려운지조차 생각하지 않은 채, "수영 갈까?" 먼저 말하고, 파도를 타고, 파도를 맞고, 물속에 가라앉고, 짠물도 먹다 보니 어느새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놀이를 한다 느껴질 때, 완전히 몰입할 때 그것은 더는 두렵지도, 어렵지도 않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어려운 건 쉽게, 더는 생각지 말고 그냥 하는 것. 잘하지 못해도 매일 하다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들은 있다.


정리 정돈이 어렵다.

역시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는 어렵다.

돈 (잘) 쓰고 벌기 어렵다.

인간관계 어렵다.

손님 접대 어렵다.


'수영'이란 단어 속에는 국가대표급 수영선수의 자신감 넘치는 포즈와 오늘 발차기를 시작한 초보자의 고군분투가 동시에 들어있다. 그 간격 속에는 수천수만 번의 실패의 경험과 꾸준한 노력이, 한 시즌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동작과 감정의 승패들이 켜켜이 늘어서 있다. 지금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훌륭한 장면만을 욕심내며 지나치게 잘하고만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보니 오히려 '쉽다.'고. 주문을 외듯 자주 혼잣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