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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숲섬 Apr 17. 2024

벚꽃이 떨어지고 새잎이 돋듯

{숲섬타로} 열세 번째 상담일지





  "어느 날부터 아들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10.29(이태원) 참사, 그 자리에 자기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토록 화려하게 피었던 벚꽃이 모두 졌다. 거의 30년 만에 만났다는 지인의 후배 J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J님은 타로점으로 아들이 언제쯤 괜찮아질지 알고 싶다고 하셨다.




  "그 골목에서 그래도 운 좋게 에어컨 실외기를 밝고 올라가 탈출했다고 해요. 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시 그 골목으로 되돌아갔나봐요. 그땐 이미 사고가 일어난 뒤였고,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아들은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도왔나 봐요. 열심히 CPR을 하다 보니 이미 죽어있기도 했다고... 1년이 넘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상담을 계속 받고 있지만, 늘 자기도 모르게 그날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나 봐요. 그날의 광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 꿈에 나타난대요."



  사연을 들으며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는 나와 달리 어머니인 J님은 끝까지 차분한 모습이셨다. 아드님은 최선을 다해 그날의 기억과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모든 에너지가 살기 위해, 균형을 잡기 위해 쓰이고 있어, 일이나 일상생활을 제대로 해내기 어려워 보였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1년 단위로 앞으로 어떤 흐름으로 갈지 카드를 펼쳐보고서야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을 말씀드릴 수 있었다.




  "어쩌면, 아드님은 죽는 날까지 이 기억을 잊지 못할 거예요. 너무나 안타깝지만 단번에 좋아지거나 나아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내년과 후년에 본인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마치 자길 괴롭히는 듯 느껴질지 몰라도, 자신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가게 도우는 사건들이 될 거래요. 이 커다란 상처가 결국 흉터처럼 남을 텐데, 그 흉터가 아드님을 남들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는 표식이 될 것으로 보여요. 내면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에도,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이가 생길 것이고, 다름과 다양성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래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법을 찾고, 이 균형 잡기를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아드님은 괜찮아진대요. 괜찮아질 거란 사실을 가족들부터 진심으로 믿으셔야 해요." - {숲섬타로}의 상담일지 中





  벚꽃이 진 자리에 초록잎이 돋는다. 꽃을 눈여겨본 다음에는 평범해보이는 나무 위로 언제나 꽃송이들 겹쳐 보인다. 아직 지지 않은 꽃과 새 잎이 함께 돋아있는 이 맘 때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 같다. 꽃놀이만이 절정이 아니라, 이후에도 삶이, 성장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있은지 꼭 10년째가 된 날이다. 대체 살고 죽는 일이 어떻게 정치적인 일이 되어선 안된다고 쉽게 말할 수가 있나. 그 말 자체도 정치적인 발언이다. 우리의 삶 중에 정치적이 아닌 일이 뭐가 있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결코 수습되지 않고 매 순간 그 지옥에 버려져 있는 일이야말로 누구도 견뎌낼 수 없는 정치적 참사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분명한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믿음을 평범한 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세상은 달라져야만 한다.



  4월은 유난히 슬픈 일들이 많다. 제주의 4.3 사건, 세월호 사건, 4.19 의거일 등... 이전에 나는 역사나 정치가 나와 무관한 어른들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송이 하나 같은 사람들의 사연과 슬픔이 사건마다 깃들어있고 그 역사의 물줄기를 타고 우리의 하루하루도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 이웃의 이야기고, 그것은 곧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심할 수 없으며 무심해서는 안된다.  기후위기 문제도 심각해지고 세상은 오직 돈만 가치 있다는 듯 각박해지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세상에 넘쳐나길 바란다. 힘든 일을 겪은 이들의 유가족과 이웃들의 상처가 잘 치유될 수 있길, 하루빨리 세월호와 10.29 참사의 진상규명 되는 밝은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해 <뉴스타파 유튜브 채널>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24시간 한정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3편을 공개한다고 합니다. 극장에선 영화 <바람의 세월>도 상영 중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시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옴니버스 다큐 영화 <세 가지 안부>   <유튜브 뉴스타파 채널 바로가기>

1. <그레이존> 4월 16일(화) 오전 9시~24시간

2. <흔적> 4월 17일(수) 오전 9시~24시간

3. <드라이브 97> 4월 18일(목) 오전 9시~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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