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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섬타로 Apr 10. 2024

지난한 과정을 견디게 하는 힘

{숲섬타로}의 열두 번째 상담일지



  1년간 PDS 다이어리를 써보자고 결심한 지 4개월째다. 3월 중순은 코로나에 걸려 통째로 날아가고, 겨우 겨우 <식사-휴식-잠> 패턴의 서너 번 반복으로 이어지는 하루를 무려 일주일쯤 살았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매일 어떻게 시간을 썼는지를 기록으로 남겼다. 혼자였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PDS 단톡방"에 참여한 덕분이었다. 



  PDS 다이어리는 <Plan 계획하다 / Do 실행하다 / See 돌아보다>라는 단순하지만 독창적인 형식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다이어리다. 가격은 35,000원으로 다이어리 치고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지만, 이 다이어리를 구입한 모든 분에게 제작진들은 1년 동안 내 기록을 관리하고 인증하고 동기부여할 수 있도록 "PDS 단톡방"에 참여할 자격을 준다. 우선 한해/ 월/ 주간/ 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하루를 살며 기록한 다음, 밤마다 기록된 하루를 돌아보며 점검하고 반성해 본다. 매주 일요일마다, 매월 말일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점검하고 공유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점이 컸다. 몇 번 해보지 않고 바로 피드백과 정정된 행동하기,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동안 나의 삶이 큰 성장 없이 늘 제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작년 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왔어요. 처음엔 괜찮았는데, 점점 공부도 힘들고, 자신도 없어지고, 합격할 거란 확신이 없으니까요. 겨울부터 알바를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일해서인지 정말 재미난 거예요. 필기시험이 다다음달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제가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 할지 알고 싶어요. - 상담자 A님의 질문



  처음엔 Plan란에 빠듯할 정도로 매일의 계획을 세우고 힘차게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는 재미에 빠져 지냈다. 그러나 곧 귀차니즘, 대충 하고 싶은 마음, 느슨함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PDS 단톡방"에서는 내가 세운 목표를 돌아보게 하고, 그동안 해온 일을 적어보고, 다음 계획을 세우게 하였다. 약 20여 분의 시간을 들여 내가 무얼 해왔는지 돌아보면 알 수 있었다. 아, 매일의 시간들이 쌓여 작지만 성과가 되고 있구나, 내 불안은 나를 좀먹게 하고, 흔들리게 하고, 나 자신을 작게 만들었지만, 내가 보낸 시간은 그곳에 고스란히 쌓여 경험과 경력과 역사가 되고 있었다. 다만 내가 해온 일과 가야 할 길을 자주 잊을 뿐이었다. 




  알바 일이 진짜 재미있다기보단, 해야 할 공부가 힘들고 마음이 불안하니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불안에서 회피하고 싶은 감정이 큰 것으로 보여요. 곧 싸움을 앞둔 사람이 칼 다루는 훈련은 하지 않고, 큰 칼 두 개를 들고 이 중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 망설이기만 하는 모습이에요. 칼은 두 개나 쓸 필요가 없어요. 내게 꼭 맞는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작년부터 공부하신 것들은 내 실력으로 쌓여 있어요, 본인이 잠시 잊어버렸을 뿐이지요. 알바는 언제든 시작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만약 오늘이 시험일이라면, 지금 막 시험을 보았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공부 좀 더 했어야 하는데 생각하지 않을까요? 시험이라도 쳐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시험을 못 봤지만, 다시 공부하면 될 것 같아 혹은 이 길은 아닌 것 같아,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어, 하고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시작하던 때의 마음을 돌아보세요. 그때의 목표를 되새겨 보세요. 제대로 시험을 쳐 보고 그만둔다면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겠지만, 그것조차 하지 않고 물러서 버리면 이 일은 생각할 때마다 아쉬운 미련으로 남아 내내 후회를 남기게 될 거예요. 해보고 나니 그만해도 되겠다, 미련이 1도 없다 싶을 만큼, 열과 성을 다해 공부하세요. 옆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저 앞으로 내달리세요. 그러면 이 시간과 경험과 지식은 온전히 나 자신의 것으로 남게 돼요.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성장할 수 있어요. 행여 시험에 떨어진다 해도 그건 실패가 아니에요. 하루하루가 A님께 내가 선택한 신나는 모험이자 도전이 되시면 좋겠어요. 
- {숲섬타로}의 상담일지



  모든 상담은 내 일상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담을 통해 내담자와 나는 분명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들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고, 그들에게 들려주는 카드의 리딩은 곧 내게 필요한 조언이 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타로카드는 영혼의 GPS라고 말한 문장을 본 적 있는데, 정확한 비유다. 내담자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비쳐주는 타로의 리딩과, 현재 내담자의 시선과 타로 리더의 시선이 합쳐져 현재 어느 지점에 머물고 있는지,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단골이 생기고, 그분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좀 더 깊이 있게 반복적으로 부딪치던 문제들에도 스스로 접근하고 질문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발견은 늘 신기하고 흥분되고 감사한 경험이다.



  내가 도달할 지점을 정확히 보는 것, 그 지점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잊지 않는 것, 내가 가야 할 큰 지도와 매일의 사소한 할 일들을 동시에 보는 것, 지칠 땐 느리더라도 멈추더라도 괜찮으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는 것, 힘들면 동료나 도반을 만들어 함께 가는 것,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 그동안 잘 해온 일을 돌아보고 칭찬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일들이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게 돕는다. 이 과정이 뚜렷한 습관으로 장착되면 내 삶은 분명 성장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4월의 서귀포 섶섬(숲섬)의 모습, 서귀포는 지금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다.



  지금 서귀포엔 온 곳에 화려한 꽃들이 만발이다. 아름다운 벚꽃과 동백, 무꽃과 유채, 제비꽃과 데이지들, 자리에 앉아야 보이는 이름도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꽃들. 그러나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식물들에겐 꽃이 없는 초록의 평범한 존재로 보내는 사계절 대부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매일매일의 고군분투와 불안과 인내 모두 아름답다. 피고 진 꽃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봄이다.





* 숲섬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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