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좀 했던 여자가 들려주는 돈과 소비의 모든 것.

어쩌면 당신도 나와 같나요?

by 단팥

아휴. 17살 때부터 백화점을 다녔다.


고등학교 1학년 때다. 그날도 엄마와 나는 함께 백화점에 가 쇼핑을 했다. 백화점 2층의 고급 여성 의류 매장으로 나를 데리고 유유히 걸어간 엄마는 호들갑스럽게 반기는 매니저에게 우아하고도 익숙하게 커피를 주문하더니 매장 중앙의 안락한 소파에 앉았다. 곧이어 엄마와 친분이 두터운 아주머니 세 명이 매장으로 들어와 함께 앉았고 그녀들은 마치 커피숍에라도 놀러 온 듯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누구는 사업이 잘되지 않아 집을 팔았다더라, 친구 남편이 바람이 나 상간녀 머리를 다 쥐어뜯고 왔다더라, 옆 집은 대단한 시어머니를 만나 평생 고생하다 드디어 장례를 치르고 만세를 불렀다더라 등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이 그녀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매니저는 차를 주며 옆에 앉아 장단을 맞추기 시작하다가 눈치를 슬쩍 보더니 지난번 주문했던 옷들이 도착했다며 입어보기를 권유했다.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돌아가며 옷들을 입어보았고 옷이 매우 흡족한 듯 그래그래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녀들의 지갑이 열리고 카드가 쏟아져 나왔다. 3개월 할부로 결제해줘, 아니야 나는 그냥 일 시불, 어머 형님 이번에 돈 좀 버셨다더니 정말이었나 봐 오늘 밥은 형님이 사소. 그렇게 시끄러운 결제가 끝나고 아줌마들은 밥을 먹기 위해 쇼핑백을 손에 들고 백화점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1층을 나가려다 구두매장 앞을 지나던 한 아주머니가 걸음을 멈추었다.

형님, 오늘 산 옷하고 어울리는 신발이 없는데 좀 보고 갈라우?

그런데 잘살고 있지를 못하다.

24년이 지난 지금, 그녀들 중 안락한 노년을 보내며 잘 사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물론 슬프게도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다. 한 명은 일찌감치 맞이한 부도로 생사를 모르고 한 명은 다단계 건강 보조식품을 팔고 있고 한 명도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삶이 편안하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엄마는 뒤늦게 직업을 구해 20년 전과 전혀 다른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백화점 그녀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젊어서 쓰기를 좋아하고 저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17살 때부터 그녀들과 어울렸던 나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2020년. 나 또한 그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이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을 맞이했다. 백화점을 가지 않고 인터넷 쇼핑을 끊은 지 3년. 소비를 밥 먹듯, 아니 숨 쉬듯 하던 나에게 온 금단현상은 이렇게 글쓰기로 승화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때때로 쇼핑을 하고 싶어 가슴이 요동친다. 티브이나 인터넷에서 보이는 연예인들의 옷과 가방을 눈으로 재빠르게 스캔하고 어디 브랜드의 얼마짜리 상품인지 찾아보는 것은 여전히 고치지 못한 습관이다. 그래도 나는 격렬하게 나의 소비에 반대하고 있으며 실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적어도 60이 넘어서는 지금보다 안락하게 살고 싶은 희망에서다.


몇 년 전, 내가 버는 소득의 수준에 벗어나는 소비를 하며 버거워하는 나에게 나를 아끼는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사람이 적어도 죽기 전 나의 병실 하나쯤은 안심하고 입원하다 하늘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은 가져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려면,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번 잘 생각해 봐.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 말이 가슴속으로 분명하게 다가왔다. 지난 20년은 내가 즐겁기 위해 소비하는 여자로 살았지만, 나머지 인생은 나를 위한 소비를 하는 여자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밝혀보려 한다. 지난 20년간 내 소비생활의 역사. 그리고 내가 소비를 그만두어야 했던 이유,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들의 삶을 위한 적당한 소비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금수저, 혹은 은수저랑은 좀...

만일 자신에게 소비란 너무나 행복하고 그 빈도가 매우 적당하고 지출 또한 합리적이어서, 아니면 원래 금수저로 태어나 소비라는 말 자체가 크게 와 닿지 않아 이렇게 망한 소비의 역사를 가진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글은 그리 권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응당 이 글을 읽을 ‘자격’이 되는 분들은 당장 다음 달 카드 값이 매우 걱정스러우며 백화점의 시그니처 뮤직을 들을 때 뭔가가 또 사고 싶어서 심장이 흥분으로 매우 나대는 사람, 현재 사용하는 핸드폰(물론 최신 폰)에 쇼핑몰 앱이 3개 이상 깔려있고 이미 장바구니에 사고 싶은 물건이 가득 들어있으며 주문 목록에는 지난 1년 치의 구매 이력이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고, 터질 듯한 옷장은 입지 않는 옷이 반 이상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아. 그리고 특히 더 중요한 것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기적으로 사고 싶은 옷의 종류와 소재, 디자인이 머릿속에 있으며 지나가는 여자들의 가방은 언제나 시각적 표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주 기본적으로 깔린 분이어야 한다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에 관한 심각한 구매 욕구의 저 밑바닥에 ‘소비를 줄이고 싶다’라는 이중적 욕망과 저축에 대한 미련 또한 질척하게 깔려있어야 이 글에 조금은 맞장구가 쳐질 수도.

물욕을 버리러, 이제 가봅시다.

자. 이제 당신이 그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분이라면, 이 글은 분명 당신에게 아주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 매거진 구독이 다 끝나고 나서 ‘지침서는 아닌데?’라는 반감이 든다면 그저 또 한 명의 동지가 나타났음에 반가운 마음 정도라도 가져주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그럼 이제 저의 망한 소비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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