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거야, 가방을, 꼭, 기필코!
립스틱으로 시작하고 가방이 될지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많은 여자가 그랬듯, 나 또한 시작은 립스틱이었다. 1999년 당시 유행하던 패션잡지에서 한 모델의 터질 것 같은 입술을 보고 나는 곧장 백화점으로 향했고 대학 새내기가 립스틱 하나에 몇만 원이 아깝지도 않았는지 샤넬 립스틱을 시원하게 사버렸다.
처음 손에 쥐게 된 립스틱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샤넬의 로고는 내 가슴을 미친 듯이 쿵쾅거리게 했다. 입술에 바를 때마다 진하게 풍겨오는 그 향기와 촉촉한 느낌. 아. 이래서 사람들이 비싼 립스틱을 바르는구나, 하고 나는 화장을 할 때마다 그리고 쇼윈도를 지나치며 내 얼굴이 보일 때마다 샤넬 립스틱을 사길 잘했다고, 이걸 발라서 내가 너무 예뻐 보인다고 생각했다.
립스틱을 구매하고 집에 돌아가며 검정의 샤넬 로고가 박힌 쇼핑백을 들고서는 다짐을 했다. 이다음에 커서 돈 많이 벌면 꼭 이 로고가 박힌 가방도 사야지 꼭. 하고 말이다.
스몰 럭셔리 그리고 립스틱 효과
명품의 로고가 박힌 립스틱은 곧 그 브랜드를 압축하여 나타낸다. ‘스몰 럭셔리’ 현상이다. 스몰 럭셔리란 자동차나 의류, 가방 같은 ‘대형’ 사치품 대신 화장품이나 식료품 등의 작은 제품에서 소비의 만족을 얻는 트렌드다. 나는 대학생 때 샤넬 립스틱을 구매하며 사치품을 소유했다고 믿었다. 비싼 가방은 소유할 수 없지만, 대신 그 가방과 같은 로고가 박힌 립스틱을 구매하면서 나의 소비 욕망을 스스로 충족시켜 나갔다.
명품 회사들은 그렇게 소비자를 유혹한다. 큰 지출을 앞두고 미리 ‘워밍 업’ 하라는 것이다. 처음 내가 지출했던 립스틱의 단돈 몇만 원은 곧 그 브랜드의 다른 품목을 사는 데 밑거름이 된다. 립스틱 다음으로는 향수, 그다음으로는 스카프 이런 식으로. 이런 여성 소비자의 마지막 종착지는 역시 핸드백이다.
남자들의 소비 욕망의 상징인 자동차 회사들의 시계 브랜드 론칭도 이와 같은 소비 맥락을 짚어낸다. 1억이 넘는 포르셰를 타지 못하지만, 시계는 포르셰를 차는 것. 역발상으로 수입 자동차 회사들이 고가의 자동차를 판매하며 자신들의 로고가 박힌 차량 액세서리인 우산, 키홀더, 컵 등을 고객에게 선물하는 것도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전략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우산까지 벤츠라니까.’
립스틱에서부터 시작한 우리의 욕망은 그렇게 서서히 부피를 키워 나간다. 때문에, 경기가 불황일수록 명품 립스틱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이른바 ‘립스틱 효과’라고 하는 것. 이것은 경제적 불황기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특이한 소비 패턴이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 경제가 어려워 산업 전반에서 소비가 위축됐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립스틱의 매출은 증가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불황기에서도 자신의 소비 패턴과 만족도를 쉽게 떨쳐내지 못했던 여성들이 비교적 지출이 낮은 사치품인 립스틱을 구매하면서 자신들의 소비 만족도를 채웠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에 나는 샤넬 립스틱을 사며 언젠가는 가방을 사리라 그렇게도 꿈꾸었건만, 샤넬은 버스를 타고 다니는 내가 자기네 핸드백을 사는 게 그렇게도 싫었는지 정말 꾸준하게도 가격을 올려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꿈에 그리던 ‘샤넬 클래식 캐비어 미듐’을 사지 못했다. 대신 샤넬의 가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른 명품 가방들을 줄기차게, 1년 적어도 2년에 1개씩은 꼭 소비했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의 파파라치 사진 속 백이었던 셀린느의 부기 백을 시작으로 나는 펜디 바게트, 프라다 백 팩 등의 가방들을 사들였다. 내가 핸드백의 세계에 입문하기 전 처음 샀던 페이즐리 모양의 에트로는 당시 명품백의 입문자 코스 같은 것이었다.
2004년 즈음에 신촌 일대를 걷다 보면 에트로 백을 메고 가는 여성들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다. 당시 40만 원-50만 원의 가격으로 명품을 쉽게 가질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메리트가 있기도 했고 클래식한 페이즐리 문양도 그때 유행했던 카멜색의 로브형 코트와 잘 어울리기도 했으니까. 에트로에서 함께 판매하던 헤어밴드와 핀은 2000년대 잇 걸이라면 꼭 하나쯤은 소장하고 있어야 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에트로 헤어핀을 생각하면 대학교 동창이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얼굴이 하얗고 참 예쁘고 단정하게 생긴 아이였는데 들리는 소문에는 집이 강남이라고 했다. 그녀의 성품이나 말투, 심지어 이름 같은 것까지 가물가물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하고 다니던 헤어밴드, 가방, 옷은 지금 그리라고 하면 당장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생각이 난다. 항상 그녀의 반들반들한 단발머리 위에 얹어있던 에트로의 헤어밴드. 그리고 무심하게 손에 들려있던 에트로의 천 가방이 있었다. 당시 에트로에서 판매하던 천 가방은 굉장히 센세이셔널했던 아이템이었다. 가죽 가방이 최고라는 편견을 깨고 학생이나 주부, 누구라도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던 천 가방을 명품백으로 들고 다닐 수 있다니 신박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돋보일 수 있는 명품 아이템을 ‘소박하게’ 장착하고 학교에 나타나곤 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그녀를 마음속으로 참 부러워했다. 끝내 그녀는 나의 질투심에 마치 정점이라도 찍는 양, 졸업 사진을 찍는 날 한 손에 샤넬백을 들고 학교에 등장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샤넬은 ‘넘사벽’ 혹은 ‘가방 계의 갑 오브 갑’이었다. 특 A급이라는 수십만 원대의 모조품도 인기가 있을 만큼 인기가 많은. 진짜를 가지고 있으면 그야말로 ‘최고 잘 나가는 애’가 되는 것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