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내가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였다. 일도 잘하고 너무 싹싹한 성격 탓에 나뿐 아니라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늘 적당히 남을 배려하고 위해 주어서 대인관계도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이 없었다. 관계에 감정이 스며들면 절제하기 참 힘든데도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참견과 간섭이 부담될까 봐 늘 조심했고 그래서 더 예쁘게 느껴지던 후배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와 내가 처음으로 퇴근 후 근처 백화점으로 쇼핑을 갔다. 그냥 아이쇼핑만 하자고 굳게 다짐한 우리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느덧 우리 손에는 쇼핑백이 몇 개가 들려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 들린 쇼핑백보다 그녀의 손에 있는 것이 더 많았다. 어라? 많은 여자들과 쇼핑을 했던 나지만, 이런 애는 처음인데? 후배는 쇼핑에 있어서 나보다 더 거침이 없었기에 쇼핑 질주녀였던 나조차도 그녀가 신선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
이 바지 너무 예쁘다. 얼마예요? 사이즈 55 있어요? 네 , 주세요.
”
그녀는 옷을 고르고 사이즈를 묻고 결제를 하기까지 채 5분도걸리지 않았다. 쇼핑에 도가 튼 나조차도 그녀의 씀씀이에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결국, 내 차의 뒷자리는 내 것이 아닌 그녀의 쇼핑백으로 가득 찼다. 처음이었다. 나보다 더한 인간은.
의외의 모습이지만 단서가 있었다.
백화점에서 봤던 후배의 모습은 여태까지 내가 알았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늘 일에 있어서 신중하고 사려 깊고 여러 가지의 변수를 계산해서 했는데, 쇼핑할 때의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후배의 2차 적(?) 모습을 알고 나니, 이제는 후배의 다른 행동에도 조금씩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책상 위에 있던 여러 개의 검정 펜, 두세 개씩 겹쳐있는 같은 모양과 색의 메모지, 머그컵 뒤에 있는 두 개의 텀블러, 의자 뒤에 사무실용 점퍼가 걸려 있지만 같은 종류의 점퍼를 또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그녀의 ‘쇼핑 습관’을 유추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사무실의 내 책상. 소비를 줄였지만 여전히 많은 물건들.
습관에 답이 있다.
‘습관’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상황에서 반복된 행동의 안정화 또는 자동화된 수행이다. 우리가 가진 많은 습관 중 일부는 어려서부터 이어져 온 것일 수 있다. ‘세 살 습관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이것은 ‘학습’의 관점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쌓아온 경험의 반복이 습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습관적 소비를 아주 쉽게 끌어내는 것이 바로 핸드폰의 앱 스토어 결제 시스템이다. 핸드폰에 심어 놓은 나의 카드는 소액부터 시작하여 더 큰 금액도 지출하기 쉽도록 설계되어 있다. 습관의 밑바탕이 되는 쉬운 결제 방식을 통해 하나둘씩 결제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그 누적금액이 천 원에서 만원 단위를 넘어간다. 게임이나 이모티콘, 인터넷 쇼핑몰을 앱으로 다운을 받아 지문이나 비밀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끝이기에 더 쉽게 돈을 쓰는 것이다.
7900원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동안 핸드폰의 요금제를 음악 스트리밍과 결합을 한 요금제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과도한 소비를 반성하며 당장 핸드폰 요금부터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뒤, 가장 최저의 요금제로 바꾸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무제한 음원 스트리밍’을 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긴 시간의 출근길이 너무 지루했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하니 고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내가 이 7900원을 아껴서 얼마나 부자가 될까 하는 생각도 났다. 그냥 다시 무제한 스트리밍으로 바꿀까? 마음이 오락 가락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주일을 버티고 나자, 내게도 조금씩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버스에서는 거의 종점에 가까운 정거장에 사는 내가 앉을 수 있으니 그간 보지 않던 책을 보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갈아탄 뒤에는 서있어야 하니까 무료 와이파이로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들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그간의 불편함이 조금씩 잊혀갔다. 이전에 무제한 스트리밍을 들을 때도 항상, 매일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몇 년이나 이용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니 족히 4년이 되는 시간이었다. 한 달에 7900원씩 4년이면 663,600원이었다. 해지하길 잘했다고 나를 칭찬하며 앞으로의 4년간 그 돈을 아낄 생각을 하니까 막 신이 났다.
오랜 시간, 내게 달라붙어있던 나쁜 소비습관을 조금씩 떼내기 시작하자 나에게도 새롭고 좋은 습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매우 평범한 진리가 만드는 기적의 습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