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과 감자튀김의 소비

호구가 되는 소비

by 단팥

부자는 떡잎부터 다르다.

내가 아는 ‘돈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늘 적절하고도 규모 있는 소비를 하기로 일가견이 있는 나의 친언니 이야기다. 언니는 사십 대 후반의 직장인이지만 단 한 번도 명품을 사본 적이 없으며 옷과 신발은 늘 단정한 것으로 고작해야 몇 년에 한 차례만 구매해 정말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사용하는 일명 ‘짠순이’다. 자매의 소비가 왜 그렇게 다르냐고 놀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글쎄, 그냥 우리는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언니가 대학생이고 내가 중학생일 때, 우리는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했다. 내가 뭘 좀 먹고 싶다고 하자 언니가 사주겠다며 햄버거 집에 들어갔다. 햄버거 세트를 사 주려나 신이 난 나를 향해 언니가 아이스크림 한 개와 감자튀김 한 개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실망한 모습이 역력한 나에게 언니가 말을 했다.


아침 먹고 나와서 얼마나 됐다고.

이거 먹어도 배부를 거 같은데?

실제로 언니와 둘이 그걸 다 나눠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아마 언니가 나에게 햄버거 세트를 사주었으면 다 먹지 못하고 남겼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니는 늘 다른 물건들을 살 때도 그렇게 ‘햄버거 세트’ 대신 ‘아이스크림과 감자튀김’의 소비를 했다.

하지만 나는 이후로도 여전히 햄버거 세트 같은 소비를 했다. 많이 시장하지 않아도 좋은 식당에서는 맛있는 것으로 욕심껏 골라서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기 일쑤였고, 신발이 있어도 더 예쁜 신발을 샀으며 옷이 있어도 다른 예쁜 옷을 사려고 노력했다.

그 햄버거 집에서 우리가 나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저금이라는 것을 시작한 나와는 다르게 언니는 좋은 지역의 주거 아파트, 노후대비용 아파트와 토지, 게다가 든든한 예금까지 소유한 '빵빵한 40대'가 되었다.


도대체, 우리는 뭐가 달랐던 것일까?



지독한 사람이 돈이라는 것을 모은다.

언니는 햄버거 집에서 적당하게 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햄버거를 원하는 나에게 ‘적당히 먹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 같으면 실망할 동생의 모습이 걱정되어 ‘많이 먹어, 남겨도 돼’라고 했을 것이다.

하루는 사회 초년생이었던 언니에게 동창이었던 00 언니와 잘 만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00 이는 만나면 꼭 나한테 밥을 사라고 해. 그래서 만나기 싫어.’라고 대답했다. 친했던 친구인데 그렇다고 어떻게 안 만나냐, 우리 언니 정말 독하네. 생각했던 나였다. 옷 가게에 들러 언니와 쇼핑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막상 사려고 하는 옷도 점원에게는 ‘그냥 보기만 할 거예요.’라고 먼저 말한 뒤 둘러보다가 마음에 들면 바로 사거나 아니면 빨리 가게를 나왔다. 게다가 우리 언니는 12월생이지만 해가 지난 9살에 초등학교 입학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기 친구들보다 1살이 많았다. 누구나 '언니'대접을 받고 싶어 하던 시대에 태어난 우리 었지만(실제로 우리나라의 '빠른'나이는 얼마나 많은 다툼을 야기시키는가!) 언니는 꼭 자신의 생일을 이듬해 2월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서 엄마와 내가 뭐 그렇게까지 어리게 보이고 싶냐는 핀잔을 준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언니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언니라고 하면 밥이라도 한번 더 사야 하잖아. 그래서 그냥 동갑이라고 하는 거거든.


어쩌면 조금은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지는 언니의 행동에는 ‘필요 없는 것에 대한 경계’가 늘 깔려있었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과의 관계는 질질 끌려 다니지 않고 바로 잘라버릴 수 있었고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아니요’라는 말도 할 줄 알았다.



돈이 좋아하는 사람

가끔 친구들끼리 모이면 자기 가족에 대한 불만이나 안타까움을 토로할 때 나오는 말 중, 부모님에 대한 경제적인 불만을 종종 듣는다. 우리 아버지는 마음이 약해서 친척들에게 돈을 잘 빌려주신다, 우리 엄마는 마음이 약해서 주변 아줌마들에게 돈을 떼인다, 등의 말이다. 그 어느 말에도 ‘우리 부모님은 지독해서 돈을 못 모았다’는 말이 없다.

어쩌면 돈은 '사람 좋다'는 말보다 '지독하다'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언니는 그야말로 지독하게 돈을 모았지만, 이제 그렇게 모은 돈으로 예쁜 두 아이의 미래를 차곡차곡 준비해 나가는 좋은 부모가 되어있었다.

돈을 좀 모으려면 ‘독해져야’ 한다는 말은 거의 진실에 가깝다. 정에 약하고 마음이 여려서 남에게 퍼주기만 하다가는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내가 두 번 사면 남도 나에게 한 번은 사야 하고, 내 돈이 나간다 싶으면 아니요, 라는 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말은 전래동화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착하게 살았더니 사람들은 나를 호구로 보았다. 사회가 정한 규범과 보통의 가치를 지키며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 이제, 너무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말자. 여태껏 그렇게 살았던 결과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다음 편에서는 이제 우리가 '어떤 소비'를 해야 할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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