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중독

소비와의 적당한 이별

by 단팥

20년의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겨울이 되었다. 무분별한 소비생활을 줄이고자 노력했던 나는 신발장을 막상 다 비우고 나니 당장 이번 겨울에 신을 신발이 없었다.(뭐, 있긴 했던 거 같았지만 없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머나, 신발이 없네? 이번에 사는 건 정말 필요해서 사는 거지 내가 사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야. 흐흐.

알뜰한 구매자의 코스프레를 난생처음 해보는 나였다. 포털에 여자 겨울 털신을 검색하자 사고 싶은 신발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내 예산에 맞는 신발은 3만 원 미만의 저렴이였는데, 내가 사고 싶은 신발은 3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신발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검색조건 3만 원 미만으로 춰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선택했다. 바로 다음날 오후 집에 신발 택배가 도착했지만 새 신발을 신고도 신나는 마음은 아니었다. 눈앞에 30만 원짜리 신발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주일쯤 참을 인자를 1만 개쯤 머릿속에 그리까 정말 그 신발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작용은 생각하지도 못한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옷이나 신발 같은 치장 품을 사지 못하니 나도 모르게 괜히 자잘한 물건에 욕심을 부린 것이다. 한날은 마트에 들러 집에 와 샀던 물건들을 정리하려니 이미 사다 놓은 지퍼 백만 다섯 가지나 되었다. 서랍 속에 크기별로 지퍼 백 컬렉션을 갖다 놓은 걸 보며 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엄마가 우리 집에 와 서랍을 보고는 또 한소리를 하셨다.


‘이제 저게 사다, 사다 별 걸 다 사 모으네.’


그렇게 소비를 줄이고자 다짐에 다짐했건만, 소비녀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마치 담배를 하루에 한 갑 정도 20년간 피웠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는 것과 비슷했다. 시간이 넉넉하고 할 일이 없을 땐 멍하니 핸드폰의 쇼핑 카테고리를 보았고 ‘아, 이거 예쁘네’를 또 하고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울’이라는 것이 있다. 유튜브나 sns 등에서 자신이 구매한 물건을 하나하나 뜯으면서 자랑을 하는 것이다. 박스를 뜯어 보여준다는 뜻의 ‘언박싱’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원래의 ‘하울’과 ‘언박싱’이란 물건의 브랜드, 재질이나 가격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며 제품에 대한 품평하는 것인데, 진행자들의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에 대한 경쟁도 가속화되었다. 자극적인 문구로 시청자를 잡기 위해 유투버들이 올려놓은 ‘500만 원 쇼핑 하울’, ‘명품 언니 신상 언 박싱’ 등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내용은 역시 진행자의 명품 가방이나 의류 쇼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다. 댓글을 보면 돈을 너무 막 쓴다, 예쁘지도 않은데 비싸다는 비난성의 글도 많지만, 부럽다, 영상으로 대리 만족했다는 글도 많다.

우리가 굳이 이런 영상을 찾아서 보는 이유는 아마도 명품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상을 본 뒤에 있다. 부러움과 질투가 뒤범벅되어 자칫 충동구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변질된 부러움의 감정이 악성 댓글이 되어 해당 유투버를 괴롭힐 수도 있다.

모든 비극을 피하는 방법은 '아예 보지도 듣지도 않는 것'이다. 내 관심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 당신이 소비에 집착하는 동안 눈에서 멀어지자 마음에서도 멀어졌던 것들을 한번 떠올려 보라. 쓸모없는 소비 또한 그러한 방법으로 멀리하면 된다. 우리 삶에는 소비 말고도 소중한 다른 것들이 많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 순간만 지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사고 싶은 순간’을 벗어나는 것이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30만 원짜리 신발도 결국 한 일주일쯤 지나면 바쁜 일상에 묻혀 잊게 된다. 미치도록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을 떠올려 보라. 그렇게 죽고는 못 살 것 같던 사람과의 이별도 결국엔 받아들이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우리다.

담배를 끊는 사람에게는 금단현상이 찾아온다.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난감해하고 다리를 떨거나 사탕이나 과자를 갑자기 많이 먹기도 한다. 하물며 지난 20년간 내가 해왔던 소비도 그렇다. 많게는 하루에 한 개씩, 무언가를 샀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주말에 몰아서 쇼핑했다. 그런데 단 한순간에 그 모든 소비를 정리하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러니 '내가 소비를 그동안 너무 많이 했고, 그걸 바로 끊어낸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라는 것부터 받아들이고 쇼핑이 생각나는 그 지점, 순간을 벗어나려 애를 써야 한다. 온몸으로, 온 맘으로 말이다.






다음 편에서 소비와의 적당한 이별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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