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직원 중에 가장 좋은 평판으로 유명한 A 씨. 그는 5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노총각이었다. 요즘 미혼 가구가 하도 많다 보니 노총각, 노처녀라는 단어 자체가 참 구태의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결혼을 원하는 리얼 ‘노총각’이었다.
사장님과 밥을 먹다가 A 씨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직원이 그의 칭찬을 했다. 갑작스러운 발주에도 한 번도 화낸 적 없이 침착하게 약속을 지켜주었으며 여자 직원들에게도 절대 농담 한 번이 없는 깔끔하고 매너 있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느 직원은 그가 복도에서 청소 용역 여사님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인성까지 갖추었다며 훈훈한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사장님은 그 모든 이야기가 별로 놀랄 것도 없다는 듯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했다. 그가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의 대표와도 잘 아는데 그가 단연코 일과 인성에서 모자람이 없는 것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라며. 검소해서 이미 진즉에 집 장만까지 한 1등 신랑감인데도 여자를 만나는 데는 유독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이 없어 결혼을 못 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고 했다.
다음 날, 그가 회사에 들러 미팅을 가진 후 나와 함께 퇴근하게 되었다. 사적인 대화를 좀 더 나눠보니 이 아저씨가 투박하고 촌스러운 성격이라 세련되게 여자를 꼬여내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감이 왔다. 하지만 소탈하고 진정성 있는 느낌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럼 저는 이쪽으로 가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그의 미소를 보는데 툭 튀어나와 겹쳐진 앞니 두 개가 갑자기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어쩌면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나는 그에게 불현듯 한마디를 던졌다.
“
과장님, 스타일도 좋으시고 키도 훤칠하신데 앞니요, 앞니 치열만 조금 손보면 훨씬 더 멋지실 거 같아요.
”
그리고 몇 달 뒤, 그가 회사에 빵이며 과자를 잔뜩 사서 내 자리로 왔다.
“
팀장님이 조언해 주신대로 앞니를 손보고 선을 봤어요. 저 내년에 드디어 노총각 딱지 뗍니다. 제 은인이세요.
”
환하게 웃는 그의 두 앞니가 예쁘고 반듯하게 위치를 잡고 있었다. 앞니를 바꾸었을 뿐인데 그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완전히 댄디하게 바뀌어 버렸다.
성악가 폴포츠도 앞니를 바꾸니 좀 멋져보인다.
나의 마음가짐을 바꿔주는 소비
앞서 2부에서 등장했던 직장 신입도 자신의 이미지를 올리기 위해 코 수술과 눈 앞 트임을 했다. A 씨도 마찬가지로 노총각 탈출을 위한 이미지 정비를 위해 앞니를 손보았다. 둘 다 미용을 위해 했던 성형이지만 도대체 둘의 소비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신입은 자신의 외모 가꾸기를 위해 현란한 네일아트와 의류의 소비를 넘어 성형까지 정복했다. 누가 보아도 못생긴 사람이 아니었고 그만하면 예쁘다고 할 만한 얼굴에 본인 또한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더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를 지배한 상태에서 그녀는 성형이라는 소비를 감행했다.
하지만 A 씨는 달랐다. 그는 항상 검소했고 이미 재산도 형성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했던 ‘성형 소비’는 그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였다. 만일 그가 앞니를 예쁘게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언젠가 꼭, 사람 보는 눈이 좋은 짝을 만났으리라고 확신한다. 그의 달라진 앞니는 그 시간을 좀 더 줄여준 것뿐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 말이다.
어쩌면 앞니를 예쁘게 해서 자신 있는 미소를 가진 그는 선을 보며 좀 더 당당한 자세로 여자를 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까지 매 부리 코로 놀림을 받던 나의 동창은 대학 졸업 후 코를 손보고 자신감을 얻어 취업에 성공했고 지독한 곱슬머리가 콤플렉스였던 지인은 미용실에 정기적으로 가서 가장 비싼 스트레이트 펌을 받고 있지만, 기꺼이 비싼 헤어 비용을 지출한다.
만일,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소비가 있다면 그건 그다지 망설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소비의 이유는 ‘당신이 살아오며 누군가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고질적인 문제’이거나 ‘당신 스스로 자존감을 올리기에 정말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문제’ 여야 할 것이다. 소비에 앞서 그것이 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함인지 행복을 충족하기 위함인지 깊은 성찰과 반성이 동반되어야 함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