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은 어려서부터 물건을 팔고 11세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해 용돈을 스스로 벌었다고 알려졌다. 여러 강연에서도 수차례, 어려서부터 경제관념을 익혔던 자신에 관해 설명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그는 비싼 음식보다는 값이 싼 뉴욕식 스테이크와 햄버거를 즐겨 먹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유명했던 부자는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다. 그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던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학력도 가졌다. 그는 작은 쌀가게로 시작한 사업을 굴지의 대기업으로 이루어 냈다.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았던 구두쇠로도 잘 알려져 있다. 평생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담뱃값이 아까워서라고 한다.
고 정주영 회장은 ‘열심히 절약하고 모은다면 큰 부자는 못되어도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으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워런 버핏은 ‘만약 필요 없는 것을 구입하는데 돈을 낭비한다면 나중에는 정말 필요한 물건들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라고 했다.
워런 버핏과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는 많다. 물론 부정적인 평가도 포함해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두 사람의 공통점인 ‘검소와 절약’이다.
두 부자는 돈이 많지만, 돈을 함부로 쓰는 일은 절대 없었다. 돈이 많다고 절대 돈을 우습게 보지도 않기도 했다.
사업을 크게 했던 선배가 있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유학도 다녀왔고 취업도 잘했다. 인물과 평판이 좋아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날개를 단 듯 잘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입사 후 10년이 지나고 자신의 사업체를 꾸려 ‘독립’을 했다. 모든 것이 그를 위해 준비한 듯 탄탄대로를 걸었다. 학생 때부터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했다.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작은 데서 아껴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사업에도 망하고 부모님 재산까지 다 날려버린 뒤 잠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그는 돈을 우습게 보았던 값을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식사 프리패스
엄마가 회사 주변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며 전화가 왔다. 회사 근처 중식당에서 엄마와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먹고 있었는데 거래처와 약속이 있던 사장님이 그 식당으로 들어오셨다. 사장님은 나에게 괜찮다고 일어나지 말라며 눈짓으로 인사한 뒤 룸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다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점원이 계산할 것이 없다고 말을 했다. 사장님이 들어오시며 나를 보고는 계산을 하신 거다.
사장님의 센스와 멋짐에 없던 충성심이 절로 생겨났다. 동료에게 넌지시 자랑을 하니 동료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 예전에 동생이 회사 앞에 찾아와 우연히 사장님을 만났는데 사장님이 식사비용을 모두 계산해 주셨다는 것이다.
좀 오래된 일이지만 학교 근처에서 친구와 밥을 먹는데 한 선배가 계산한 적이 있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어서 고맙기는커녕 난감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더 가관이었다. 선배들에게 자기가 내 밥값을 내줬다며 으스댔다는 것이다. 나에게 고마운 일이 있어서 밥을 사준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거다. 원래도 싫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가 더 싫어졌다. 우리 사장님처럼 이른바 ‘가진 사람들’이 행하는 식사 프리패스는 참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별로 가진 것도 없는 학생들끼리 그렇게 식사 프리패스를 남발하면 큰일 난다. 남에게 돈이 좀 있다고 으스대다간 거지꼴을 못 면한다. 그런 태도는 결국, 돈을 우습게 본다는 증거다.
돈을 많이 모으려면 돈을 무서운 걸 알아야 한다.
우리 사장님은 알짜배기 사업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돈을 많이 모은 ‘찐 부자’다. 하지만 그의 신발은 언제나 단정한 구두 한 켤레다. 명품을 두르고 오는 적도 절대 없다. 40대에도 부자였지만 그때는 국산 차만 몰았다. 50이 다 되어서야 가족들의 권유에 못 이겨 수입차를 한 대 뽑았지만, 그마저도 10년이 넘어간다. 직원들이 찾지 못한 돈의 허점이나 구멍도 그의 날카로운 스캔이 지나면 하나씩 드러난다. 15년 가까이 근무한 나도 그가 단 한 번도 ‘그까짓 거’라는 말을 입에 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예의 바르고 아랫사람들에게도 깍듯하지만, 돈 앞에서는 언제나 무섭도록 냉정을 유지한다.
젊어서 돈깨나 만져보았다는 친구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딸 둘을 데리고 혼자되어 젊어서부터 식당을 했다. 넉넉하고 인품이 좋아 식당 손님들에게도 늘 인기가 있었다. 하루는 어떻게 돈을 많이 모으셨냐는 나의 질문에 ‘돈이 너무 무서워서’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사는 게 무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젊고 튼튼한 내 몸으로 못할 일은 세상에 없었거든. 근데 돈이란 것은 참 무섭더라. 내가 가지려고 다가가면 달아나고 손에 쥐려고 하면 빠져나가더라고. 그래서 돈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도 무서워했어. 그래서 지켰지, 돈이 없는 세상은 혼자 사는 여자한테는 너무나 가혹하니까. 너희도 알아 둬. 돈은 쓰는 사람한테 붙질 않아. 돈은 자기를 무서워하고 지키는 사람한테만 붙지. 그게 남자 말고 돈이라는 또 다른 놈이거든."
돈을 모으며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으기 힘든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재미있게 쓰기만 할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요즘은 돈이 무섭다. 쉽게 모이지도 않는 것이 빠져나가는 속도는 정말 빠르다.
어렸을 때 놀았던 놀이터의 모래와 돈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러 물을 퍼오거나 저 깊은 안쪽 모래를 힘들게 파 올려 손에 흙이 잔뜩 묻는 촉촉한 모래가 되어야 단단한 두꺼비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예쁘게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로는 집을 지을 수가 없었고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