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매우 이질적인 경관을 지닌 우리 집은 오래전부터 동네에서 아주 유명했다.
하얀 석조주택은 크고 높았으며 정원은 넓고 푸르렀다.
집을 둘러싼 수많은 나무들의 녹음은 마치 우리 집을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양한 나무들이 촘촘하게 붙어있는 모습은 마치 우리 집과 세상을 분리하는 거대한 장벽 같았다.
매우 좁은 간격으로 늘어선 나무들은 기형적으로 서로의 가지를 꼬면서 팔짱을 끼듯 자라나 있었고, 바람에 스산하게 찰랑거리며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난 나무들이 한데 모여서 나를 빤히 바라보며 속닥거리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이 무섭고 싫었었다.
어린아이였던 당시에 나는 아버지 없이는 절대 혼자 정원에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친구들과 놀고 흙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나를 보며 '우리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며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셨다. 크고 따뜻한 손이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우리 집의 정원은 가문 대대로 아주 오랜 역사가 있는 정원이라고 했다.
또한 집 앞 정원의 나무를 가꾸고 관리해 주는 것이 우리 집안의 전통이며 사명이라고 했다.
그저 대대로 그래왔기에 자연스레 물려받은 타성에 젖은 자부심이었을지, 고집불통 늙은 노인네들의 고집이었을지는 모르겠다. 상당히 넓은 정원임에도 절대 정원사는 두지 않았다.
아버지는 언젠가 나도 이 사명에 대해 이해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어릴 적 나는 그러마고 사명을 이어받겠노라는데에 아무 의문을 품지 않았었다.
그 사명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는 게 나에겐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어머니는 이에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집을 나간 거라 생각했으니까.
집안보다 정원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아버지는 내가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항상 같은 나무 밑에 계셨다.
기대어있건, 누워있건, 멍하니 서 있건 아버지는 항상 미묘하고 슬픈 표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키 크고 두꺼운 나무들이 많았지만, 아버지는 정원 제일 외곽에 있는 가장 작은 나무를 유달리 아꼈다.
그 작은 나무를 제일 좋아하시는 이유에 대해 아버지는 자신과 가장 오랜 추억이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항상 다정하고 따뜻한 아버지가 제일 화를 냈던 순간은 내가 별생각 없이 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나무를 발로 찼을 때였다.
순간적으로 세게 내 따귀를 때린 아버지는 본인의 행동에 스스로도 놀란 듯 보였고, 나는 맞아서 화끈거리는 내 볼을 만지며 우리 집의 잘난 전통에 의문과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우리 집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무 선택권 없이 집안 내력에 순응해야 하는 삶도 싫었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는 듯한 아버지의 눈도 싫었다.
웅장하고 높기만 했던 집도 이제는 더 이상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을씨년스럽고 정돈되지 않은 정원의 나무들은 더없이 추하게만 느껴졌다. 정원에 우뚝 솟은 빽빽한 장벽은 꼭 집안의 전통이라는 시스템에 우리 가족구성원들을 가두는 감옥 같았다.
아버지는 이제 허리가 많이 굽고, 이마에는 내가 집에 대해 가진 반감만큼이나 깊은 골이 파였다.
많은 게 변했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가장 작은 나무도 훌쩍 자라 다른 나무들과 같은 높이에서 나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그 나무 앞에서 여전히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아버지와, 나에게 '우리 아들'라고 하는 아버지의 지겨운 인사말이었다.
난 더 이상 아버지에게 '우리 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집과 우물 안에 사는 한심한 아버지에게 벗어나기 위해, 난 무작정 그동안 모아둔 돈을 가지고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왔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집을 나온 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 나무감옥에 혼자 남았을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세상이 휘청대는 듯한 죄악감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으려 치열하게 살아갔다.
나는 직장이 생겼고, 아내가 생겼고, 가정이 생겼지만 어딘가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도 같이 생겼다.
몸을 한껏 부풀리고 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나의 호기와 자존심은 냉혹한 사회의 칼바람에 조금씩 깎여갔다.
하얗고 푸르렀던 나의 세상엔 서늘하고 탁한 세속이 스며들었고, 가족이란 울타리는 아주 잠시 나를 밝게 희석시켜 줄 뿐 진정으로 빛내주지는 못했다.
어느새 볼품없는 먼지한 톨이 되어버린 나는 그제야 진짜 안식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변치 않는 나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어딘가가.
'나무'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왜 항상 정원의 나무를 그토록 사랑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짐을 싸서 아내와 함께 도착한 하얀 석조주택 앞, 정원의 나무는 역시나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나무 앞에는 너무나도 그리워했던,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착각했던,
그 사람도 여전히 있었다.
'우리 아들'
여전한 말로 나를 맞아주는 늙은 아버지의 손은 예전만큼 크지 않았다.
그 손은 기력이 쇠하여 정수리까진 올라가지 못하고 내 팔에 머무를 뿐이었지만, 따뜻함만은 그대로였다.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내가 태어난 그날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돌아갔던 그날 다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말 좋아하셨다.
가끔씩 아버지는 작은 우리의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정원을 여러 바퀴 돌곤 했다.
나무들에게 손자를 자랑하듯 정원을 도는 아버지의 얼굴은 원초적인 행복으로 가득했다.
가끔씩은 아버지야말로 아기 같다고 아내와 함께 키득거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눈을 감기 직전, 초인적인 힘으로 혼자 몸을 일으켜 집 밖의 정원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 모습은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기이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아꼈던 그 나무밑동에 등을 대고 앉았다. 그리고 영영 눈을 감으셨고 그 모든 장면을 나와 아내가 지켜봤다.
비록 나도 처음이었지만, 아내는 이러한 죽음을 보게 된 경험이 적잖이 도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아내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흔들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나는 충격적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본 후 정원을 가꾸는 우리 집안의 사명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거의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임종 직후 아내와 나는 우리 집의 사명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대화와 언쟁을 했지만,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서로의 입장은 완강했다.
집에는 아직도 한 손으로 나이를 다 셀 수 있는 작은 아들과 나만 남았다.
나는 정원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그 자리에 새로이 자라난 작은 나무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나무였다.
이제 어느새 내 허리 위까지 키가 큰 아들이 집에 오면, 나는 아들의 정수리에 손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
같이 사는 식구가 늘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가 태어났다.
나는 정말 좋아했다.
가끔 손주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정원을 돌아다니는 게 삶의 낙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난 이제 내 삶의 끝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몇 분도 남지 않았음을 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난 아버지가 누누이 말하곤 했던 그 사명을 지켜야 했지만, 더 이상 나에겐 아무런 기력이 없었다.
누워있는 내 옆에 한 발자국 떨어져, 며느리가 두 팔로 손주를 안고 있었고 아들은 양손을 그녀의 양 어깨에 올린 채 날 슬프게 바라보고 있었다.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명을 지키지 못한 채 죽는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있을 때,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나를 일으켜주었다.
나는 누가 날 일으켜주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날 정원의 외곽까지 부축해 주었다.
난 내가 가장 아꼈던 그 나무이자, 아버지에게 등을 기대고 앉았다.
놀라서 따라 나온 아들과 며느리는 내가 걱정돼서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 순간 나에게도 그 시간이 찾아왔다.
내 두 발이 노란색으로 변하더니 인해 이내 완전한 갈색이 되어 흙과 하나가 되었다.
날 바라보는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며느리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와 내 아내도 그랬었겠지.
혈통의 굴레를 짊어질 나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해일같이 밀려왔다.
아버지도 나에게 그랬었겠지.
난 마지막에 와서야 모든 걸 깨달았다.
기묘했던 우리 정원의 형태까지도.
땅과 하나가 되는 과정은 썩 좋지만은 않은 감각을 수반했지만 내심 나도 아버지와 똑같은 마지막을 맞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뿌듯했다.
이건 우리 집안의 '전통'이니까.
두 팔은 이내 완전한 나뭇가지의 형태가 되었고, 나는 정원의 가장 작은 나무가 되었다.
난 마지막 힘을 다해 가지로 변한 팔을 움직여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감았다는 게 맞겠지만.
내 삶은 아버지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전하는 마지막 사과와 감사의 인사였다.
하얀 석조주택 앞 정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나뭇잎들이 마찰하며 여러 가지 소리를 낸다.
이제 나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나무가 나에게 말한다.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