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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오 Sep 20. 2022

던킨(도너츠)에 대한 추억

2007년에 광주 충장로 던킨도넛에 자주 가곤 했다. 2층에는 늘 중절모를 쓰고 던킨도나쓰를 먹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사실 겨우 두 번 마주쳤지만 그것이 그의 반복되는 일상이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커피는 필요하지 않는 듯 보였던 그는 오직 단것이 묻은 밀가루 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카운터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매일 던킨에 오는 거였다. 유난히 단 것을 좋아하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전주 평화동 한성아파트 거실 바닥에서 빠다코코넛을 먹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2009년, 내가 말년 중위일 때, 이등병이 부대에 한명 들어왔는데 그는 군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자살충동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부대의 모든 관리 이슈는 그에게 집중되었다. 영화를 전공하다 입대했다길래 뭐랄까, 나는 예술가의 독특한 기질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는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교회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교환노트 방식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소통을 했고, 나의 말년 휴가와 그녀석의 두 번째 휴가가 겹쳐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서 만났는데 첫 휴가 때 죽을 생각으로 통장의 돈을 모두 인출해 서랍에 넣어뒀었던 것으로 나에게 한우를 사겠다고 했다. 이제 죽지 않을 거라서 그 돈을 쓰겠다고 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소화를 시킬 겸 명동까지 걸었고, 내가 보답으로 맛있는 음료를 사겠다니까 던킨도너츠의 쿨라타를 먹자고 했다. 초여름이었고, 시원한 쿨라타를 하나씩 쭉쭉 빨며 걷다가 을지로 쯤에서 헤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계급이 오르면서 평범한 군생활을 하다 전역했다고 들었다. 추측이지만 영화일을 하진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영상과 카메라 레슨을 하면서 SPC의 간부를 가르친 적이 있다. 그와 약속을 잡은 스터디룸 건물의 던킨도너츠에서 커피를 대접받았다. 즐겨듯는 팟캐스트에선 종종 노동문제를 다루기도 하는데, 그 중 SPC의 제빵사들과 노동조건, 고용문제 등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래서 수업 때마다 약간의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임했지만, 그것을 희석시킬 만큼 그는 매우 정중하고 매너있는 사람이었다. 정중한 것이 매너있는 것이니 강조의 표현이다. 그리고 가정적이면서 음식 문화에 대한 나름의 애정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동료와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의 직원이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수업을 즐겁게 진행했지만 너무나 바쁜 분이었기에 장기간 홀드되었고, 1년 정도 뒤에 다시 연락이 와서 나머지 수업을 했다. 얼마 후 그는 외국으로 스카웃되어 직장을 떠난다고 했다.


한때 던킨도너츠의 여섯 개 들이, 열 개 들이 같은 박스는 교회나 회사에서 좋은 간식선물이었다. 나는 던킨의 도너츠와 2천원짜리 원두커피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커피를 던킨에서 더이상 팔지 않는다. 던킨도너츠는 이름에서 도너츠를 뺐고 지금은 샐러드와 샌드위치 제품을 많이 팔고 있다. 자주 지나는 횡단보도 앞 던킨은 늘 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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