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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오 Sep 28. 2022

해운대를 걷고 나서 쓴 일기

스물일곱 12월

커피 한 잔을 들고 백사장을 거닐며 파도가 계속 밀려드는 것을 보았다. 바다의 끝자락을 파도가 그려낸다. 그 끝은 아주 얇게 퍼지며 모래알들이 물을 머금게 한다. 마치 얼굴에 펴바르는 크림처럼, 어젯밤에 먹은 회의 살점처럼 얇게 연하게 펴진다는 생각을 했다. 물로 채색된 모래는 까맣게 멍들고 부채꼴의 거품은 바다로 돌아 가려다 밀려오는 파도에 또 다시 뒷걸음질 친다.

 

파도는 깊은 저만치에서 밀려와 내 발 끝에서 사라지지만 사실 물은 제자리 맴돌고 있다. 물, 그는 너무나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의 신세가 마치 젊은 시절의 우리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벗어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날카로운 햇빛에 뜨겁게 달궈져 구름이 되버리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딛다 보니 구두에 모래가 묻기 시작했더. 모래가 묻으면 이거 상당히 피곤한일이겠구나 하는 생각과, 그 모래를 본 누군가는 분명 내가 해변을 거닐었음을 알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 시선에 조개껍질들이 들어왔다. 파도에 밀려와 모래위에 얹어진 수많은 조각들이 어느 것 하나 온전한게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 부서지고 깨져있었다. 물살에, 바위에 부딛혀서 말이다.

 

어느새 긴 해변의 끝에 닿았고 해변을 걷다가 떠오른 생각들을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에 적고 노트가 없었다. 사실 지금 매우 후회스러운 점은 인터넷서비스를 찾는 잠깐의 시간동안 해변가에서 떠올랐던 느낌들을 일부 까먹어버렸다는거다. 생각 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날로그 적 신호는 펜과 노트에 적어야 데이터의 손실을 덜 줄일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프랫(FRAT)이 달린 기타나 건반으로 된 피아노 같은 악기는 정확한 음을 운지할 수 있는 허용범위가 매우 크지만, 바이올린이나 첼로에 비해 세밀한 음의 변화를 표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피아니스트 율리어스도 한때는 그런 점 때문에 현악기를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컴퓨터에 타이핑 문장들은 노트에 적힌 것과 같은 잉크의 냄새나 펜의 떨림을 느낄 수 없는거다. 그러니 노트를 가지고 다녀야겠다.

 


2009.12.14 해운대 조선호텔 로비 컴퓨터에서 씀.






2022년 추가.

그때는 머릿속에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기록할 수 없는 시대였다. 2009년에는 아이폰이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노트가 있었다면 기록했겠지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를 찾아야 했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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