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월급을 주고 일도 가르쳐 주는 후원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몇 년 전까지 내 목표는 월급 루팡 회사원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팀장이 나의 이름을 한 번도 안 불러주길 바랐다.
주어진 일은 딱 욕먹지 않을 만큼만 처리했다.
팀장한테 찍히지 않고 뒤탈이 없을 정도로만 말이다.
어차피 회사는 개인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팀원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적당히 성과를 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매월 받는 월급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내가 회사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자 특혜라 생각했다.
회사 안에서 에너지를 아끼고 퇴근 후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직장인으로서 미덕이라 여겼다.
더 가치 있는 건 퇴근 후의 내 삶이며, 자기 계발을 통해 내 가치를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팀장에게 쩔쩔 메는 과장, 차장님들을 보며 다짐했다.
‘절대 저렇게 회사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지, 쓰다 버려지는 톱니바퀴는 되고 싶지 않아’
입사 2년 차 회식 자리에서 내 속마음을 과장님에게 내비친적이 있었다.
‘과장님, 팀장님이 시키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거처럼 왜 그러세요..?’
과장님은 소주를 삼키며 말했다.
“결혼하고 애 생겨봐라. 너도 똑같아져.”
그때는 그 말이 책임질 사람이 많아져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 ‘생산자’ 입장에서 돌아본 당시의 나는 오만방자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계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제일 손해 본 건 회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회사에서 주어진 8시간을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였고, ’ 능동‘적으로 성장할 시간을 제 발로 차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뜯어고치기로 했다.
‘수동’적인 직장인이 아니라, ‘나’라는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가정해 보았다.
지금 하는 업무가 개인 사업자처럼 운영한다면, 과연 매달 나에게 제공되는 월급을 주고 맡길 것인가.
답은 당연히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해 전문성도 떨어지고 요령만 피우는 사원에게 돈을 줄 사장은 없다.
관점을 바꾸니 상황이 다르게 보였다.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300만 원의 가치는 년 5% 수익을 주는 ‘8억짜리 건물’과 같은 가치다.
이후 회사에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회사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서 배우기로 다짐했다.
이런 생각으로 일하려고 드니, 시키지 않아도 궁금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다.
자연스레 ‘능동’적으로 일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했다.
그걸 반복한 4년 차에는 사업부 우수사원으로 뽑혔다.
월급 루팡을 꿈꾸던 사원이 회사 시스템을 이용하기 시작하자 생겨난 변화였다.
진상 상사도, MZ후배도 훌륭한 교보재
하지만 일만 잘해서는 인정받기가 힘든 곳이 회사다.
결국은 사람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부정적으로 봤던 가장 큰 이유도 이런 사람들 간 ‘관계’의 피로함 때문이었다.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시대라지만, 여전히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배척당한다.
상사들과 가기 싫은 스크린 골프를 치러 가야 하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술상무를 겸하며 감정 쓰레기통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럴 때일수록 위치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리더십과 팔로우쉽을 다졌다.
위로는 상사들을 설득하는 ‘협상력’을,
아래로는 후배들을 이끌고 성과를 내는 ‘리더십‘을 길렀다.
상명하복 하는 나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타산지석 삼아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가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의 성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하면 피드백을 주는 ‘코칭’ 연습을 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말이 안 통하는 상사와 이야기할 때도, MZ 스러운 후배를 대할 때에도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대응하고 아울러야 할지를 고민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을 만남으로써 어울리고, 소통하는 나만의 방식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중이다.
월급 루팡에서 우수사원까지 가는데 달라진 건 오직 하나, 일을 대하는 태도였다.
성과를 내니 보상이 따르고 함께 상사들의 인정을 받게 됐다.
하지만 나는 딱 거기까지만 받아들인다.
달콤한 칭찬에 취해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맹목 적은 회사에 바치는 ‘노예’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입사초 패기도, 타성에 젖은 관성도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팀의 중간 관리자로서 더 많은 책임과 성과를 요구받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되뇔 것이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긴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회사가 주는 트랙과 운동화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