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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l 13. 2020

디디(Didi)와 안티(Auntie)

1인 1유모쯤은 누구나 있는거 아니야?

Ep. 1

선생님 : “너는 충분히 자랐으니까, 혼자 잘 걸을 수 있어. 이제 그만 디디한테서 내려와.”

“(디디에게 그만 가라고 손 짓하며) 이제 그만 가 보세요”

“저기 봐. 네 디디는 이미 가고 없지? 그만 울고 여기 앉아.”


Ep.2

선생님 : “저기, 디디에게 가서 화장실 간다고 해.”







여기에서 돌발 퀴즈 !


Q. ‘디디’는 누구 일까요?

1.      엄마

2.      아빠

3.      베이비시터


A.    3번

- ‘디디’는 힌디어로 ‘언니/누나’를 일컫는 말이지만, 우리 나라에서 근래에 베이비시터를 ‘이모님’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아이들에게 ‘디디’라고 부르도록 한다. 다만, 베이비시터 나이가 월등히 많다면 ‘디디(Didi)’ 대신 ‘안티(Auntie)’라고 주로 부르고 공교롭게도 ‘안티’는 또 영어 그대로 사용한다. 

- 아이들의 부모님은 이들을 말 그대로 ‘내니(Nanny)’ 또는 ‘베이비시터(Babysitter)’라고 하고, ‘아이 돌보는 일 & 집안일’까지 겸하는 경우에는 ‘메이드(Maid)’라고 하기도 하며 호칭 할 때는 영미권 국가처럼 이름을 부른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위에 묘사된 상황은 물론,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고 있을 인도에서의 일상이었을 테다.

유아가 첫 기관 생활을 시작하면서 적응기에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울며 불며 등원을 시도하는 모습은 거의 99.9%의 아이들에게서 관찰할 수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던 내 입장에서는 아이가 엄마가 아닌 유모와 그렇게나 진한 애착을 형성했다는 것이 꽤나 놀랍고도 낯선 광경이었다. 


유모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울며 매달리는 아이와 애처로워하는 유모.

단호한 선생님.

이 곳에서 엄마의 자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당시에는 가늠이 참 어려웠다.


이어서, 리아가 처음으로 필드 트립(Field Trip; 현장학습 내지는 소풍)을 가게 되던 날은 엄마들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보면서 다시 한번 문화 충격에 휩싸였다.






Good morning mommies

Just a reminder for uniform, sandwich, Mawa cake, attendance and reaching the 00000 garden at sharp 9 am. Those who can't make it please msg on this group as well as send an email to the school giving your reason. Teachers also need 2 nannies. Who can send? 


-       엄마들, 좋은 아침! 유니폼, 샌드위치, 마와 케잌 잊지 말고, 00000 공원으로 아침 9시 정각까지 시간 꼭 맞춰서 와요. 혹시 참석이 어려운 분은 이 그룹에 메시지 보내주고, 학교에도 메일 보내주세요. 선생님들이 내니(유모) 두명이 필요하다는데 보낼 수 있는 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유모 지원을 요청하고 있고, 엄마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집 유모를 보낼 수 있다는 둥,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가능하다는 둥 서로 조율을 이어가고 있었다. 

‘뭐야, 유모가 모든 집에 당연히 있는 그런거였어?’ 하는 놀람과 함께 누가 유모를 보낼지에 대한 결론이 지어질 때 쯤 여러명이 “Thank you”를 외치기 시작하기에 나도 적절한 타이밍에 함께 “Thank you”를 투척했다. 


대망의 필드 트립 당일. 학교는 다시 한번 단호한 규칙을 내세웠다.

아이들만 참가할 것. 엄마들 참가 불가. 그러나, 학교에서 요청했던 유모들은 함께 동반 참석.

다만, 아직 적응기간 중에 있던 리아를 배려하여 내가 동반 참석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네명의 유모들(기존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유모 2인과 학부모 가정에서 파견된 유모 2인)과 단 한명의 엄마, 곧 4+1 체제로 아가들의 소풍에 참가하게 되었다. 천방지축 날뛰는 리아 꽁무니를 쫓아 다니느라 바빴기에 망정이지 아이들 케어하느라 바쁜 선생님과 네 명의 유모들 틈에 혼자 일행 아닌 사람인 척 산책이나 거닐면서 행복할 뻔 했다. 



리아의 첫 필드트립 / 왼쪽 사진을 보면 선생님과 유모가 뚜렷하게 구별된다.


급파된 유모들을 가만 보아하니, 아이들이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돗자리, 아이들 가방, 도시락 등을 모두 들고 함께 이동해주거나 아이들 화장실에 동행하기, 식사 전후 자리 정돈 및 아이들 도와주기 등에 거쳐 잔잔한 손 가는 모든 일들에 동원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들의 주요 임무는 아마도 용변 보는 것 도와주기라고 느껴졌고, 아무튼간에 이 모든 일들에 선생님들은 일체 손을 더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정말 순수하게 인솔과 지도, 함께 놀아주기 정도 범주의 일만 했다. 잡일이 일체 없는 선생님이라니. 우리가 이론으로 알던 선생님 상의 현실화 버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 또한 태어나 처음 보는 매우 신기한 광경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표현은 아마 이럴 때 쓰라고 만든 표현인 것 같다. 그렇게 이동 때마다 우리 아이 가방을 챙겨 따라 다니면서, 급파된 유모들의 행동 양식과 내 행동을 가만 보니, 잠깐만…. 나는 여기 유모 대신 투입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리아가 낯선 소풍에 참석해서 독점적인 유모를 동반한 셈이 되었으니 마음 편하고 좋다며 정신 승리를 이뤄냈다. 비록, 나 외에 다른 엄마들은 모두 공원 인근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담소를 즐기고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그 뿐인가. 아파트 키즈 클럽에서도 이 비슷한 상황을 여러 차례 맞닥뜨렸다.

나도 친구가 없고, 아이도 친구가 없으니 적어도 그 곳에 가면 아이도 또래를 만나고 나도 또래 아이 엄마들을 좀 만날 수 있겠지 하는 심산으로 들렀던 그 곳에서, 또래 엄마들을 만나기는 커녕 디디 내지는 안티들만 수십명 만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유모와 아이가 일대일 매칭이 되기 시작했다. 늘 동일한 아이와 유모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파트 내 이 곳 저 곳을 다니다가 키즈클럽에서 만났던 아이를 마주쳤을 때 그 아이 옆에 말쑥한 차림의 낯선 어른들이 함께 있다면 백발백중 그들이 바로 그 아이의 엄마, 아빠다. 인도 생활을 시작하고 끝 마치는 그 날까지 아이와 유모는 백번도 더 보았는데 그 아이의 부모는 얼굴 한번 마주칠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도 더러 있다. 보통의 경우 아이 한명당 각자의 유모가 따로 있는 실정이다 보니, 리아와 함께 키즈클럽에 발을 딛으면, 간혹 이런 질문을 받고는 했다. 

“너 이 아기 엄마야 ?”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말이지만 듣고 보면 묘하게 빈정 상하는 그런 질문 되시겠다.

‘아니 뭘 물어? 딱 보면 알지…??’ 하면서 속으로 툴툴 거리곤 했다.



최근 들어 인도 엄마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문화에 대해서 각성의 의견이 많은 모양인지 간혹 이는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이 엄마와 애착형성을 제대로 할 시간도 없이 유모와 애착형성을 하게 되는 것은 정서에도 좋지 못 하고, 올바른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개인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해오는 인도 엄마들도 더러 있었다. 공식적으로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계급사회 분위기가 뚜렷한 인도에서 부모가 고용한 유모가 과연 얼마나 단호하게 아이에게 옳고 그름을 주지 시킬 수 있을지 그 한계를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엄마들의 의식이 한결 쉽게 와 닿지 않을까 싶다. 바로 옆에서는 누군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20살이 넘은 청년이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사준 페라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강물에 빠트린 사건이 뉴스에 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아주 복장이 터질 노릇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카페에서 아이는 유모가 오며 가며 전담하여 돌보고 애 없는 부부인양 우아하게 앉아 둘만의 시간을 다정하게 보내고 있는 인도 부부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팔자 좋다 소리가 절로 나왔던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마찬가지로, ‘인도 엄마들은 도대체 뭐 해? 애는 유모가 다 봐주고, 집안일이며 밥이며 메이드들이 다 하고, 관리나 받고 모임이나 다니고 세상 저렇게 편할 수가 없어.’라고 비아냥댔던 적도 있다. 사실 인건비가 싸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여 나도 그네들의 방식을 따라가면 될 일인 것을 아이 먹거리부터 시작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손이 닿아야 안심이 되는 뼛속까지 한국 엄마인 내가 차마 누리지 못 하는 인도 엄마들의 여유와 우아함이 괜히 부러운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판을 깔아줘도 못 노는 주제에 제 한계는 생각도 않고, 한국말 알아들을 사람 없다는 생각으로 혼잣말만 그렇게 늘었더랬다. 이다음에 리아가 많이 자라면, 우스갯 소리 삼아 이렇게 전해 주려고 한다.



2019년도 인도에서 너는 엄청난 아이였다고.

무려 24시간 상주 한국인 유모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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