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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n 22. 2020

9시 10분이 되면 문을 닫는다.

인도의 또 다른 모습


인도가 참 아이러니한 나라인 것이 학생들에게 시간 지키기를 엄격하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주재원으로 나와있는 한국 분들이 가장 골머리를 썩는 문제 중 하나가 현지 직원들의 근태일 정도로 어른들은 지각이나 결근을 빈번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들의 등, 하원 시각에는 꽤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 부조화는 또 뭔가 싶어 선뜻 납득이 잘 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리아가 다니던 학교는 오전 8시 50분부터 9시 10분까지가 등교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1분이라도 늦으면 학교는 말 그대로 여지없이 문을 닫아 버렸다. 덕분에 아침부터 엄마들의 단체 채팅방에는 웃픈 에피소드들이 넘쳐난다.

어느 날은 Community helper dress up day (경찰, 소방관 등 지역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의 복장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날)였다. 엄마들의 단톡방에는 등교 전부터 코스튬을 입은 아이들의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고, 그 날의 단톡방을 재현해 보자면 이렇다. (아래 재현된 단톡방의 이름은 모두 임의 작성했다.)



++

A 엄마 (AM 07:00)  : 오늘 커뮤니티 헬퍼 코스튬 입는 날이야!!

B 엄마 (AM 07:08)  : 예이!!!!

C 엄마 (AM 07:15)  : 오늘 Vansh 생일이라 학교에서 파티할거니까 애들 간식 도시락 비워서 보내줘요!

D 엄마 (AM 07:30)  : 엄지 척

E 엄마 (AM 08:10)  : 엄지 척

F 엄마 (AM 09:07) : (학교에 이미 도착한 코스튬 입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업로드 하며)

우리 커뮤니티 헬퍼들이예요!! 하트뿅뿅

G 엄마 (AM 09:10)  : 급하게 가고 있는데 완전 늦었어요 ㅠ 몇시까지 도착해야 들여보내주죠?

H 엄마 (AM 09:10)  : 9시 10분

G 엄마 (AM 09:11) : 누가 Rishi 좀 늦는다고 선생님께 말씀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10분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은데 어째야 될까요 ㅠㅠㅠ

E 엄마 (AM 09:12)  : 9시 10분이 지나면 학교에서 안 들여 보내줘요

H 엄마 (AM 09:12)  : 아마 안 들여보내 줄텐데요….

G 엄마 :   젠장 망했네(Shit)…우리 애 진짜 엄청 기대하고 있는데…..

지각 사태로 등교할 수 없게된 귀여운 꼬마

++



학교의 입장은 한결 같다.

시간을 지켰으면 될 일. 늦었다면 이유여하 불문하고 등교 불가.

인도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 보았다면, 뭐야 여기…여기 인도 맞아? 싶은 대목이다.

위의 에피소드와 같은 상황을 어디 우리인들 피할 수 있었을까.

시간을 지킨다고 서둘러도 피치 못 한 상황은 언제나 발생한다.

가령 평소보다 빨리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한다거나.

평소라면 15분이면 넉넉했을 등교 길이 갑작스러운 교통체증으로 30분이 된다거나 1시간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기는 인도니까. 당장 차에서 내려 걸어가고 싶은 충동이 차오르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마찬가지로 여기는 인도니까.



(좌) 출처 : dnaindia.com / (우) 출처 : pinterest


특히나, 교통체증이 우리 모자의 발목을 잡을 때에는 어마어마한 억울함이 단전에서부터 차오르고는 했다.

평소보다 일찍 준비를 마치고 나왔는데, 지하철이 지연되거나 버스 간격이 벌어져서 오히려 지각을 하게 생겼을 때의 억울함과 비슷하다.

그런 일들을 몇 차례 겪으면서 신랑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오빠, 직원들 너무 다그치지 마. 기사가 다 실어 날라줘도 시간 지키기가 이렇게 힘든데 대중교통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여기 사람들 왜 그렇게 지각이 잦은지 좀 이해가 될 것도 같아. 아니 그런데 왜 애들한테 이렇게 가혹한거야 대체!!!!!!”

그렇게 술에 물 탄 듯 인도화 되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의 의식도.



아무튼, 기타 여러가지 사유로 9시 11분, 12분쯤 학교 도착이 예상되는 때 틴틴(기사)에게 늘 같은 말 두마디를 던졌다.

“What’s wrong, again? – 또 왜 이래??”

“Back side – 뒤로 갑시다”



여기서 “Back side”라 함은 학교 상담 때 정문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피치 못 해 사용한 그 이후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던 바로 그 학교 뒷길로, 피치 못 한 긴급 상황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사용하게 되었다. 1분 간격으로 등교 가능 여부가 결정될 마당에 유일한 지름길을 마다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살면서 함부로 “절대(Never)”라는 단어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

인생에 ‘절대’가 어디 있나. 다 상황에 맞추는 거지.

“Back side” 라는 것은, 이미 나름대로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침부터 쓰레기 오물 냄새와 까마귀, 빽빽이 들어찬 닭장 안의 닭들을 마주할 준비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흥건한 바닥을 밟을 준비를 마쳤다는 이야기다. 무심결에 잘못 밟았다가는 신발 바닥이 문제가 아니라, ‘첨벙’ 오물이 내 발을 점령하고 말 것이다.



학교 뒷문에 다다르면 우리 모자는 재빨리 차에서 떨구어진다.

잽싸게 내린다고 내렸는데도 뒤이어 줄 선 차들의 경적 소리가 골을 다 울렸다.

어떤 ‘한국’엄마라도(인도 엄마는 입장이 또 다를 수도 있으므로) 아침부터 오물 웅덩이가 만연한 바닥 위에 아이를 세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므로, 핸드백 걸치듯 팔에 책가방을 건 채로 아이를 번쩍 안고 재빨리 폴짝 폴짝 징검다리 건너기를 해 가며, 대형 쓰레기 바스켓 사이를 뛰었다. 험난한 길을 거쳐 학교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 왜 그런 순간 있지 않은가. 엘리베이터 기다리다 백프로 지각이다. 촉이 딱 오는 순간. 그럴 때는 차 안에서 “Back side!”를 외칠 때 동시동작으로 마련해 두었던 비상 대책이 잘 발동하였기를 바라며 아이를 안고 4층까지 냅다 뛰었다.

(* 비상대책 : “차가 너무 막혀서 그러는데, 선생님하고 이야기하면서 시간 좀 끌어주세요. 리아 곧 도착인데 차가 막히는 모양이라고 ㅠㅠ“ 라는 웟츠앱 채팅을 보내 같은 반 엄마에게 부탁을 하고, 운이 좋으면 정말 9시 10분이 막 경과하려는 찰나 학부모가 던진 말에 대답을 하느라 1, 2분 정도 문이 엉겁결에 열려 있기도 했다. 이른바 꼼수를 노린 것)



아이를 교실에 들여 보내며, 아이가 아침에 소변을 보지 않았는데 아무 말 안 하더라도 화장실 갈테냐 한번 물어봐 달라, ‘피피, 푸푸’를 계속 가르치기는 했는데 급하면 한국말을 할 수도 있다. ‘쉬’는 ‘피피’고 ‘응가’는 ‘푸푸’예요. 아이가 용변 볼 때 예민해서 디디들과(힌디어로 직역하면 언니/누나. 선생님들은 교육 관련 업무만 하시고 그 외 모든 것들을 도맡아 도와주는 분들. 내 기준에서 ‘디디’란 주로 아이와 같이 화장실에 동행해주거나, 현장 학습 시 아이들 가방 등을 들고 이동해주는 분들) 같이 가면 안 하고 그냥 참는 것 같으니 선생님이 죄송하지만 따라가 주시면 좋겠다 따위의 당부인사를 전한 후에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왔다.

리아와 함께 내려오지 않고 혼자 내려와 틴틴을 기다리고 있으면, 틴틴은 씩 웃으며 인사말을 건네고는 했다.

“Madam, Lia gone to school?” – 마담, 리아 등교 잘 했어요?

그러면 나는, 씨익 웃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가뿐하게 “Starbucks!” 를 외쳤다.

(디디에 관한 이야기나 기타 인도 특유의 학교 시스템 등은 분량 조절 실패로 다른 글에서 다시 다룰 예정이다.)



또 어느 날은, 나보다 오히려 틴틴이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학교 뒷 쪽의 까마귀가 살아있는 생쥐를 낚아채 날아가다 땅바닥에 앉아 잡아먹는 모습을 리아가 보게 된 날이었다.

“Madam, we will not come to backside next time. It’s not good for Lia. Tomorrow, just get ready 15 minutes earlier than we usually do. I will make it anyway, ok ?” – 마담, 우리 이제 뒤쪽으로 오지 맙시다. 리아한테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냥 앞으로 평소보다 15분만 더 일찍 준비하세요 어떻게든 등교 시간 맞출 테니까.


이럴 때는 참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내가 인도 사람인지, 네가 인도 사람인지.


나라고 그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고, 리아가 그걸 보게 된 것에 몹시 심각해졌지만, 평상시 주방 발코니 난간에도 매가 뭔가 잡아먹다 걸터 앉아 피를 흘리고 있기도 하고 했던 것을 감안하면 충격적이지만 인도라서 이해하는 것이 맞다고 어떻게든 이해를 하려던 나였는데, 이해와 수용까지는 필요 없었던 풍경이었나 보다. (59층이라 주로 매, 독수리들이 앉아있다 인기척이 보이면 날아가고는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우리가 학교 뒷 길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을까?

천만에. 종종 틴틴이 말했다.

“Madam, back side only” – 마담, 뒷 길 밖에 방법이 없겠는데….?




) 리아 학교 뒷길에 있던 빽빽한 닭장은 실은 닭을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잡아 손질해주는 생닭 집이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닭을 사면 집에 당도하는 길까지 내내 비닐을 타고 따땃-한 온기가 전해진다고 하는데, 기르는 용으로 닭을 파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귀국 직전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괜히 새삼스럽게 소름이 쫙 끼쳤다. 정문인들 아름답지는 못 했으니, 아이 등교 길. 참도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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