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열리는 잔디밭 어느 구석에도 아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정신없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혹시나 집에 올라갔을까 싶어 뒤 돌아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문을 열어보다 말고 이 무거운 문을 네살 짜리가 혼자 열 수 없었을 것이다 했다가도 혹시,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틈에 같이 들어갔다면? 엉겁결에 엘리베이터까지 탔다면? 숫자도 모르는 아이가 우리 집 층수인들 제대로 누를 수 없는데,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면? 어쩌다 로비까지 내려갔다면? 아파트 시큐리티는 좋다고 했으니 설마 누가 봐도 거주민인 외국인 꼬마가 혼자 나가면 누구라도 아이를 달래 세워보겠지. 아니지 혹시 납치라도 당하면 어쩌지. 아파트에 딜리버리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니야 아이가 그 짧은 사이에 사라졌다고 해 봤자 아파트 건물 안이겠지' 하다 말고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 버렸다. 새를 따라 다니다 어디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우리가 있던 P6라 불리우는 공간에는 거주민 전용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그 곳은 참 멋들어지게도 예쁘게 만들어 둔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 더러 위험했다. 그 중에서도 경관을 위해 유리로 된 울타리가 있는 테라스 공간이 있었는데, 그 울타리와 바닥 사이에 꽤 큰 너비의 틈이 있어, 리아처럼 어린 아기들은 호기심에 혹여 가까이 갔다가 한쪽 발이라도 빠지는 날엔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생길 수 있는 곳이라 여겨, 이 곳에 살기 시작하던 날부터 눈에 몹시도 거슬리던 공간이었다. 아이가 사라지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악의 잠재적 사고가 나를 공포로 밀어 넣었다. 그 뿐인가. 우리가 있던 행사 공간 바로 옆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야외 수영장 하나와 실내 수영장 하나. 좋다고 천방지축 뛰다 꼬르륵 물에 빠졌으면 어떡하지. 오늘따라 거기에 스탭이 아무도 없었으면 어쩌지.
인간의 상상은 언제나 사실보다 더 무섭다. 행사에 동원된 아파트 스탭들이 보일 때마다 3살짜리 동양인 아기 못 봤냐, 보이면 꼭 말해달라 신신당부를 하며 동분서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도 사람들도 동양인인데, 차라리 한국 아기 못 봤냐고 할 걸 그랬다. 온통 까만 사람들 틈에 언제나 유독 눈에 띄어 문제이던 아이인데, 이렇게까지 보이지 않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홀리고 뭐고 남의 나라 명절, 남의 나라 행사에 관여하지 말고 얌전히 집에서 아이와 저녁이나 맛있게 먹을걸 내가 왜 우리 아이를 여기 데리고 내려왔을까 왈칵 눈물이 차오르려던 순간 쯤이었던 것 같다. 낯 익은 옷이 눈에 들어오던 순간이.
발걸음을 되돌려 보니, 우리 리아가 맞다. 혹여 아이가 놀랄까 내 마음부터 얼른 급히 추스렸다.
“리아야!!!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엄마가 너무 놀랐잖아. 항상 엄마 옆에 있어야지...”하며, 아이를 꽉 끌어 안던 그 찰나, 중학교 2학년 시절, 마트에서 본인 아들을 잃어버렸던 순간 아이를 영영 못 찾으면 나는 그 날로 죽어야겠다 했다며 이야기를 전하시던 국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의 충격이 20여년 전 수업 시간 중 흘려들은 이야기 한토막까지 소환할 지경이었던 거다.
그 날, 그 곳에서 리아를 잃어버리고 찾기까지 한 시간쯤은 걸렸던 걸까 물어 본다면, 내 기준의 소요 시간은 적어도 세시간 쯤이었고, 실제 발생한 물리적 소요 시간은 2-3분 남짓이었다. 나도 놀랐다. 그 날 그 자리에서 세상을 통째로 잃은 듯, 단장이 다 끊어질 모양으로 사색이 되었던 사람은 나 하나 뿐이었던걸 보면 아마도, 2-3분 남짓이었던 것이 맞기는 한가보다. 그러고 보니, 굳은 표정으로 아이 이름을 부르며 뛰는 나를 단번에 알아보셨던 한국 분도 함께 사색이 되었다 금새 웃고 계셨던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는 정말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 걸렸던 뿐이었나 보다. 또 한번 인생의 진리를 배운다. 시간이란 개념은 대부분의 경우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면 찰나의 순간이었을지도, 혹은 꽤나 긴 시간이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가 답답하다며 그만 놓아 달라고 버둥대자 그제야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인형처럼 생긴 아기가 유모차에 누워 있었고, 유모차 핸들을 잡고 있는 미모의 한 여자가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괜찮으면 우리 사진 한장 찍을까요?”
“네??”
상황 파악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터라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
“이 아기 엄마 맞죠? 아이가 너무 귀여워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네, 제가 얘 엄마는 맞고,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요. 고마워요.”
“언제 우리 아기랑, 댁의 아기 같이 만나 놀게 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아기 이름이 뭐예요? 몇 개월?”
리아의 이름과, 개월 수를 대답하면서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완료됐다.
리아는 예쁜 그 꼬마 아가씨에게 계속해서 리셉션 장에 있는 감자칩을 가져다 날라주고 있었고, 틈틈이 그 아기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내면서 아기 손을 살살 쓰다듬어보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 인도 꼬마 아가씨의 엄마는 리아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한국말도 못 하는데다, 당시 영어는 당연히 더 못 하던 리아가 싱긋 웃고는 내가 주입식으로 가르친 “Three, LIA” 만(세살-인도 나이로는 한국 나이보다 한살 적은 3세-, 리아예요.) 반복했겠지. 묵묵히 과자를 더 갖다 나르고 있는 리아와 더는 과자를 쥘 손도 없는 본인의 딸을 번갈아 보며 웃다가, 왠 외국인 아줌마 하나가 나타나자 기념 사진이라도 찍자며 인사를 했던 것이다.
인도 부유층의 Holi : 아파트에서 자체 주최한 홀리 전야제 행사. 인도 전통 다과와 차 등이 줄을 세워 준비되어 있다.
아이를 잃은 줄 알고 혀라도 깨물고 콱 죽고 싶었던 애 엄마는 어디로 가고, 나도 그새 웃고 말았다. 아들을 낳긴 낳았네 내가. 너털 웃음을 지으며, 우리는 사진을 찍고, 이어서 번호를 주고 받았다.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럽게. 리아 덕분에 예쁜 친구가 생겼다.
Anshu와의 사진. TPO 따위 멀리 던져버린 어쩌다 용감한 리아와 나.
머리 위로 꽃잎이 흩날리고,
모닥불에 불이 지펴졌다. 홀리 전야제에 펼쳐지는 홀리카 태우기이다.
짚으로 신화 속 마녀인 홀리카를 만들어 태우면서 추위와 악의 기운을 몰아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축하와 정화의 의식이자 선이 악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월 대보름의 모닥불이 연상되는 모습이다. 그 모습도 실은 시골 길을 우연히 지나다 보기나 했지, 직접 참가해 본 적은 없는데 싶어 괜히 머쓱해졌다가, 최신식 아파트 6층 정원에서 활활 타고 있는 인도의 모닥불과 그 의식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Holi 전야제 : BONFIRE
방금 전 친구가 되기로 한 Anshu가 물어왔다.
“내일 아파트 행사도 갈거야?”
“그건 또 뭐지?”
“홀리 다음날 물총을 사용하거나 하면서 서로 물 쏘고, 색깔 묻히고 던지고 그러는 행사야.”
“아, 그래? 신랑 오면 한번 이야기 나눠보고 메시지 보낼게.”
이 야단법석이 모두 종료되고, 세상이 온통 조용해지고 나서야 집으로 귀가한 남편과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리아를 잃어버린 줄 알고 혼비백산 했던 이야기. 새로운 친구가 생긴 이야기. 인도 나이로 고작 세살짜리 우리 아들이 얼마나 적극적인 남성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등. 그리고 다음날 행사에는 가족 모두가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난리통 속에 리아가 행여 다치기라도 하지 않을까. 오늘과 같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던 탓이다. 대신 우리는 다음날 오전 차를 타고 나서며 아파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들만의 홀리 행사를 구경하면서 아파트 밖 길거리의 난장판과 온갖 색을 뒤집어 쓴 사람들을(크리슈나와 라다가 서로의 얼굴과 몸에 색을 칠하고 놀았다는 신화로 유래된 행사) 마찬가지로 차 안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홀리 때 만큼은, 전 국민이 즐기는 명절로 카스트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함께 즐기는 것이라고 들었지만, 역시나 아파트 안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파트 밖의 사람들은 또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냥 언제나와 같이 모두가 그들만의 세상에서 산다.
그리고, 인도에서 마주친 그들의 첫 명절날 나는 맞불을 놓고 삼신 할매를 찾았다.
모닥불이 일렁이던 그날 밤.
간절히 빌었다.
“삼신 할매요. 내 새끼 얼마나 귀한지 이제 아주 제가 사무치게 잘 알았으니까, 무탈 없이 건강하게 잘 크게만 도와 주이소. 부탁합니다.”
그리고, 어찌되었건 간에 "May your life be as colourful as the holi colours, Happy, Holi !!"
이튿날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정문 앞에 마련된 부유층 그들만의 홀리 행사
이동하며 목격한 거리의 Holi와 유사한 풍경 / 출처 : www.inotherpar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