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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n 08. 2020

부모이지만 나도 엄마, 아빠가 있다.

"너는 훨훨 날아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옛날 옛날 시골 어느 마을에 엄마와 같이 살고 있는 형제가 있었어.

형제는 둘 다 똑똑하고 심성이 착했지만, 넉넉 않은 형편에 어머니는 병까지 얻게 됐지.

그렇게 되자 둘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엄마 곁에 있기로 했어.

함께 살던 집에서 엄마 곁에 효도하며 사는 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고 판단한 거지.

생각도 해 본 적 없던 농사를 짓게 됐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둘째를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라고 칭찬했어.

그런데 시간이 차츰 지나갈수록 둘째는 점점 더 힘들어졌지.

자신이 꿈 꾸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어졌고, 갈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형편에 집안은 나 몰라라 자기 욕심만 차리고 있는 형이 너무 미워지기 시작했거든. 삶이 힘들게 느껴질수록 엄마와 같이 시간을 보내겠다던 고운 마음은 미움과 화로 가득 찼지. 삶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았어.


둘째가 엄마와 함께 하는 삶을 결정할 때, 첫째는 그 길로 짐을 싸고 동원할 수 있는 가계의 자금을 몽땅 가지고 유학을 가 버렸어. 비난의 화살을 백만개 쯤 맞아가며 그 길을 기어코 선택했지. 없는 살림에 꿈을 놓치지 않고 공부를 이어가면서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외롭고 힘들었어. 동생은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인 반면, 세상은 줄곧 첫째를 세상 둘도 없는 불효자라고 부르니까. 동생에게 모든 짐을 지게하고 도망친 것은 아닐까 죄책감까지 드는 때면 한참이나 더 힘들었지. 그렇지만 첫째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굳게 믿었어. 우선 내가 잘 되고 봐야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냥 있어서는 다 함께 곤궁해지는 일만 남았다고 여겼던 거지.




“정원아. 너는 첫째가 맞다고 생각하니, 둘째가 맞다고 생각하니.”

“………………”

“정원아 엄마는, 정원이가 꼭 첫째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힘들 다른 가족이 안쓰럽고 마음 아프다는 이유로 서로 꽁꽁 끌어안고 모두 함께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게 정말 잘 하는 일일까.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우선 내 자신이 잘 되어야 해. 네가 있어야 가족이 있어. 네가 잘 되어야, 힘든 가족을 도울 힘이 생겨.”



이기적인 첫째 같은 사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더라도 옆에서 함께 지내는 둘째 같은 사람이 되어야 맞다고 대답을 하려던 찰나, 엄마가 먼저 답을 정해 손에 꼭꼭 쥐어 주셨다. 그리고 내가 무어라 더 반응할 사이도 없이 엄마는 다음 말씀을 이어갔다.

“정원아 너는 훨훨 날아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혹시 집이 어려워지고 엄마가 아프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너 갈 길 꾸준히 가는거야. 네가 잘 되어야 다른 가족들도 있어.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훨훨 날아가라.”



16살이었던가… 그 어느 밤 잠 들기 전.

엄마는 옛날 이야기를 빙자한 애틋한 당부를 어린 딸의 가슴에 꼭꼭 심으셨다.

고이 심어둔 엄마의 씨앗은 딸이 기로에 서는 순간 마다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언제나 엄마가 피운 꽃이 모든 것을 이겨내게 했으니까 말이다.

‘너는 훨훨 날아가. 뒤도 돌아 보지 말고.’






리아 방(엄마가 쓰시던 방) 창가 사진


엄마가 인도에 오셨던 때 쓰던 방 침대에 무심코 털썩 걸터앉았다. 망망대해 같은 하늘로 꽉 찬 창 밖을 멍하니 들여다보다 하필이면 그 때의 기억이 덥썩 날아 들었던 것이다. 끝도 없을 것 같은 하늘에 독수리일지, 매 일지 알 수 없는 맹수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얼씨구나 하고 훨훨 날아가라던 엄마와의 옛 기억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엄마의 딸은 멀리 멀리 날아가다 못 해 인도까지 날아왔다. 안 가면 안 되겠냐 물어나 본다던 엄마의 마음을 못 알아 들은 척하며 “훨훨 날아가라며. 엄마가 그랬잖아”라고 응수하던 인정머리 없는 내 모습도 연이어 떠오른다. 자식 새끼 키워봐야 쓰잘 데 없다더니 하며 픽 웃고는 고개를 돌려보다, 금쪽 같은 내 새끼 백일 사진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얼굴 속에 어린 내가 어려있다. 이제와서 괜스레 가슴이 저려온다. 양심도 없이.



뭐든 가르치면 곧잘 해내고는 하는 딸내미를 보며 우리 아빠, 엄마는 빛나는 딸의 미래를 꿈 꾸셨다. 내가 두 분의 우주였을 것이다. 지금 내 아이가 나의 우주이듯이.

아빠는 첫 아이로 아들을 바랬던 것을 알아차리고 서운해하던 딸에게 늘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엄마가 쓰셨던 태중 일기에서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나기를 바랬더니 아들 같은 딸이 태어났지 뭐야! 하하하”


늘 뭐든 할 수 있다고 너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하셨고 덕분에 그 딸은 인생의 어느 부분까지는 성별 기타 여하를 불문하고 세상이 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로 믿고 자랐다. 현실세계에 내던져지고, 사회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타협과 인정이라는 고난의 시간을 거쳐 차차 다듬어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두 사람의 우주를 소멸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이상한 책임감 같은 것이 뼛 속 깊이 새겨져 있다. 내 삶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 때면 나는 늘 있는 힘껏 나를 낳고 키워준 내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덕분에 인도 생활을 하면서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된 내 처지가 재빨리 설렘에서 허무함과 자괴감의 단계로 접어들었던 것일 테다.






뭄바이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를 빨리 지나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던 끝에 오전 시간은 주로 리아를 데리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온수 풀장인데다 한켠에 나즈막하게 얕은 키즈 풀이 있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이 거기에 들어 앉으면 딱 동네 사우나에 앉은 모습이 된다.

그렇게 은근슬쩍 한국을 느껴보는거다.

나와 비슷한 처지이지만 엄연히 다른 언니가 내게 그랬다. (언니는 휴직, 나는 퇴사했다.)


“정원씨, 그냥 좀 쉬어. 나도 우리 엄마가 휴직 절대 하지 말라는 걸, 나도 좀 쉬자!!! 그러고 왔잖아”

그러면서 언니는 요즘 세계 지도를 보고 있다며 나를 만날 때 마다 지도를 펼치고는 했다.

“여기 가면 어떨까. 빨리 빨리 여행 다닐 계획을 잡아야 해.” 라며 공휴일은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을 태세로 빡빡한 일정을 그려보고 있는 전투적인 그 모습에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언니도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한 이 폭 넓은 시간과 망망대해 같은 공허가 낯설었던 것이리라.

어떻게 갖게 된 ‘쉼’인데 그냥 허송 세월 보내듯 보내서는 자신에 대한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쁜 일상에 꼭 맞춰 길들여진 대한민국의 워킹맘은 여유로운 시간이 그렇게도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래. 뭐라도 해야지.

내가 뭐라도 하려면, 리아가 학교부터 가야겠네.

하긴, 리아도 친구가 없어서 늘 심심하지.

그 날부터 아이 학교 알아보기를 첫번째 업무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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