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Jun 15. 2020

운명의 망고 나무와 무당벌레

34개월 리아, 인도에서 어린이집 가다

"외국인이라면 너나 없이 가는 국제학교(미국 학교, 독일학교 등) 유치원 과정에 보내기로 했다."

라고 서문을 열 수 있었다면, 참 시원하고 담백했을 텐데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다.

33개월에 불과하던 리아에게 미국, 독일학교는 우선 개월 수 미달로 불가능하고, 몇 개월 버티면 프랑스 학교는 조인 가능하겠지만 한국말도 못 하는 아이가 갑자기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에 던져진 것도 모자라 불어에까지 노출시키자니 부담이 상당했다. 더군다나 프랑스 학교는 영어보다 불어 사용 비중이 훨씬 큰 바람에 숙제 한번 봐 주기도 큰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상당한 내적 갈등 끝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우리가 이민을 온 것이거나 꽤나 오랜 기간 뭄바이에 머무를 것이 확정적이라면 한번쯤 모험을 해 볼만도 하지만, 그렇지 못 한 경우에는 오히려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주다 볼 일 다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위 국제 학교들 중 pre-kindergarten/어린이집 과정이 생긴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로컬 프리 스쿨(pre-school / ‘어린이집-유치원’ 과정, 리아가 찾던 과정은 어린이집 과정)이다.

정말 그래야만 하나. 왜 그래야 하지. 현타가 한번 왔지만 뭐 어쩌겠는가. 상황에 맞추는 수 밖에.

나름대로 굉장한 장점도 있다. 지출은 크게 세이브가 가능하니까 말이다.

어차피 리아 나이는 회사에서 학비 보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전부 자비로 지출해야 하는데 수천만원에서 크게는 기부금, 입학금 등을 모두 고려하면 초반에 얼추 1억에 가까운 교육비 지출을 감당해내야 한다. 물론, 학교와 잘 합의를 보면 일정 항목에 대해서는 분할 납부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아무튼, 가계에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폭풍 구글링을 시작했다. 집 근처 2-30분 내외에 소위 방구 좀 뀐다 싶어 보이는 5개의 로컬 프리 스쿨을 추려내고 일일이 전화를 했다. 다섯 곳 중 세군데가 전화 상담을 받지 않았고, 메일로만 연락이 가능했다. 더욱이 그 중 한 곳은 일주일이 훨씬 지나서야 회신이 와서는 올해 어드미션은 마감이고 2020년 3월 엔트리 모집이 5달 뒤에 시작될 것이라고도 했다.

‘아니 이게 다 뭐지 ???’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연락이 닿았던 A, B 학교와 상담 약속을 잡았다.

A는 오래 되었지만 인도에 당도하기도 전부터 신랑을 통해 이름을 들어보았던 데다 다소 가까운 로컬 프리스쿨이고, B는 집에서 거리가 조금 있지만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깔끔한 몬테소리 프리스쿨이었다.

내가 유아기 때 유행하던 그 몬테소리가 2019년 뭄바이의 트렌드였던지 꽤나 인기가 많다고 했다.



아이가 다니기에 최우선은 가까운 것이다 싶어 남편과 A학교부터 약속을 잡고 상담을 갔다.

학교 입구 찾기부터 헤맸다. 틴틴은 웬만해서는 헤매는 일이 없고, 농담 조금 보태어 땅 밟을 일이 없을 정도로 문 바로 앞에 차를 세워주곤 하는데 뺑뺑 돌다 내려보니 학교 뒷문이라고 했다. 쓰레기통 같은 거대한 바스켓들이 있어 냄새도 나고, 좁다란 골목길을 마주하고 닭들이 빽빽하게 채워진 닭장도 있었다. 물론, 까마귀 선생들도 연신 나대고 있어 아이 학교 인터뷰 때문에 구두에 정장 원피스를 칼 같이 갇추어 입은 내 모습이 오히려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어찌되었거나 도착은 했으니, 건물로 입성. 우와…..탄성이 절로 나온다.

눈만 꿈뻑꿈뻑 당황한 나를 보며 남편이 껄껄 웃었다.

“인도는 웬만한 건물 엘리베이터는 다 이래. 우리 집 같은 엘리베이터가 잘 없어. 우리가 얼마나 좋은 곳에 살고 있는지 알겠지??” 라고 틈새 공략을 하며 계속 웃어댔다. 참고로, 우리가 인도에서 살던 집에는 한국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엘리베이터가 있다.

120년쯤 되었다는 이탈리아 어느 민박집에서나 혹은 꿈속에서 본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엘리베이터가 눈 앞에 멈춰 섰다. 어느 집 화장실 문인가 싶은 목재 문을 열면 철재 미닫이 문이 하나 나오고 그 문을 열어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데 굉장히 협소하고 엘리베이터 문은 전면, 후면으로 개폐된다. 원하는 층에 도착하면 마찬가지로 철재 문을 열고 나무 문을 또 하나 열어야 내릴 수 있다. 폐쇄공포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까무러칠 엘리베이터라고 생각했다. 내려보니 엘리베이터 보다는 퍽이나 귀여운 장식들이 눈에 들어와 조금 안심을 하게 됐다. 시설에 대한 자랑을 담뿍 담아 안내를 받았지만, 한국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부부 눈에는 사실 다 쓰러져 간다 내지는 뭐 그냥 오래된 동네 어린이집 수준인가….정도로 인식되어 애써 미소를 띄우느라 고생을 좀 했다.


리아가 다니던 망고트리



 아이들이 맨발로 오르내리는 계단을 우리가 신발을 신고 이동하고 있는 점도 마음에 거슬리고, 위생이나 시설 면에서 여러모로 난감한 모습들이 많이 보이던 터라 여기는 아닌가…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눈에 익숙한 얼굴들에 걸음을 멈추었다. 리아가 다니게 된다면 같은 반이 된다는 한국 아이와 그 상위 반의 또 다른 한국 아이. 두 아이 모두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이었고, 그 모습이 꽁꽁 잠가 둔 내 마음의 빗장도 스르르 풀게 만들었다. 남편과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원장 선생님과의 면담에서도 아이의 발육 상태, 언어나 낯선 환경으로 인한 혼란에 대한 걱정 이런 것들을 한창이나 이야기했지만 사실 가장 크게 다가왔던 부분은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아주 좋은 한국 사람이 있는데 그 집 아이도 이 학교를 잘 다니고 이제는 상급 학교로 갔다는 소식이었다. 오호라, 남편이 건너 아시는 분의 아이도 이 학교를 다녔다고 했고, 원장 선생님 댁 이웃인 한국 분도 아이를 여기에 보냈다고 하고, 얼마 전 리아와 도전정신을 가지고 다녀 온 키즈 카페에서 만났던 싱가폴 출신 엄마도 자기가 잘 아는 한국 엄마가 있는데 A 학교에 보냈었다 들었다고 했다. 스트라이크! 까다로운 한국 엄마들을 믿어보자! 하고서는 B학교는 가 보지도 않고 A학교로 보내기로 했다.



리아는 아무리 보아도 허름하고 허술한데 ‘나 인터내셔널 프리스쿨이야!!’ ‘나 좀 최고라고!!’라고 주장하고 있는 귀여운 ‘Mango Tree’ pre-school의 Ladybug반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몇 주가 흐른 뒤 우리 부부는 ‘원장 선생님의 이웃인 한국 사람 A와 남편이 건너 아는 한국 사람 B 그리고 키즈 카페에서 만났던 싱가폴 출신 엄마의 지인인 한국 사람 C가 실은 모두 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됐다. 차에 앉아 우연히 여기 저기서 들은 이야기들을 떠올리다 ‘잠깐만. 그 영희가 그 영희고 저 영희가 그 영희인거야 ????’ 하고 퍼즐이 짜맞추어지던 순간 나의 허술함에 어찌나 짜릿하던지. 그나마 예쁘게 포장해서 뭄바이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이 얼마나 소수인가를 보여주는 대목 정도라고 하고 넘어갈까 보다.



뭐 어찌되었건, 리아는 요즘도 길 가다 무당벌레만 발견하면 ‘엄마, Ladybug야!!!’ 하며 좋아한다.



#역마살찐엄빠만나 #적응력만렙찍은아들의도전기

#인도에서어린이집가기

이전 09화 부모이지만 나도 엄마, 아빠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