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 맞춘들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이럴 때면, 기필코 이상한 점을 먼저 찾아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라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둘러 보았다.
운전석 위치가 다른 점은 그다지 이상할 것 까지는 없는 일이고, 남편이 운전석에 앉아 있지 않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놀라울 일은 없다.
조금 더 눈을 돌려보니 차 양 옆 문에 주르륵 꽂혀있는 생수병이 눈에 들어온다.그러나 그것 또한, 이상한 점은 못 된다.또 뭐 다른 게 없을까 여기저기 둘러보다 문득 정면을 응시하면서,
“음.. 차선이 잘 안 보이는 거? 그런데 그건, 밤이라 그런거 아니야?” 하자, 시쳇말로 “이거 실화냐….” 싶은 어마어마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조금 전까지 계속 역주행 중이었어.”
맙소사…..
상상조차 해 보지 못 한 현실이라 순간적으로 입이 딱 벌어졌다.
그 때의 등골 서늘한 공포는 짜릿함도 아니고, 유령을 본 듯한 그런 무서움도 아니었지만 극도의 두려움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딴에 굉장한 충격이었던 터라 “오빠 나 죽어도 인도에서 죽고 싶지는 않은데?” 라고 말 하던 그 날의 나는물론, 그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때의 나는 그 날 부로 죽었다가 ‘인도에서 사는 나’로 다시 태어났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한달도 채 버티지 못 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인도 생활을 지속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틴틴(당시 기사의 이름을 앞으로 이렇게 부르고자 한다.)이 역주행을 하며 앞을 차고 나갈 때면 주로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속 시원한 쾌감을 느끼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잘 한다 잘 한다 옳지 옳지. 빨리 가 빨리’ 하면서.
길을 나서다 막힐 때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보다 앞으로 또 몇시간이나 차에 갇혀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지루함이 훨씬 앞질렀던 탓이고, 차에 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줄곧 느껴야 했던 죄책감이 체한 것처럼 거북하고, 무서웠다.
뭄바이 공항에 처음 도착하던 날, 유리창에 김이라도 발라놓은 듯 새까만 천으로 창을 가려둔 차를 보고 이거 너무 과한 거 아니냐며 깔깔 웃어대다 결국 가림 천을 가차없이 떼어내고 밖을 구경하던 용감하고 무모하던 나는 더 이상 없다. 어느날 부터인가, 차에 타면 가림막이 있는지 여부부터 체크하고는 했다. 세차 등을 하면서 틴틴이 간혹 깜빡 잊는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을 열면 한 뼘도 안 남을 듯한 공간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정차한 순간이면 시시때때로 창문을 두드려대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엄마는 어딜 갔는지, 갓난쟁이 아이를 안고 나타나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애처롭게 창문을 두드리는 소녀, 차 마다 기계적으로 창문을 두드리고 다니며 그렇지 않아도 험한 길을 맨 발로 헤매며 돈을 구걸하는 소년. 매몰찬 사람들의 거절에도 이제는 그깟 생채기 정도야 이골이 난 듯 해 보이는 나이가 많아야 10대 청소년일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리고, 나는 그 아이들이 두드려대는 창 안에 내 아이와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앉아있다.
이 괴리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고 끝도 없는 죄책감에 바늘방석에라도 앉은 듯 애써 못 본 척 시선을 회피하고 앉아있던 나는 차에 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렇게까지 마음의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일상에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이까짓 사소한 일상마저 마음에 부담이 되어야 하는 현실은 끝내 괜히 미안해하던 내 감정을 죄책감의 크기만큼 그들에 대한 노골적인 짜증으로 변질시켜 놓았다. 연민과 안쓰러움 보다는 어느 순간 창가에 사람 인기척만 보이면 신경이 곤두서고 화가났다.
그 때만 해도 리아가 지금처럼 말을 잘 하지 못 할 때라,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할지 깊은 고민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을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받아 들이게 해야 좋을지, 어떻게 설명해주는 것이 바람직한 부모의 역할일는지도 언제나 막막했다.
소위 말하는 후진국으로의 여행과 생활은 명백히 다르다. 정차한 차에서 창문을 두드리며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마주했던 경험이 인도에서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매일 매일 그들을 마주하는 것이 내 삶이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주 초기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손에 들고 있던 무엇이라도 내어주려다 틴틴에게 저지 당했고(틴틴은 매우 단호했다. 절대로 보지도, 창을 내리지도 말라고 했다.), 어느 순간에는 틴틴에게 고마워하게 되었으며, 문득 저들이 어디에서 지내는 지까지 눈길이 닿은 후로는 가슴 한 켠이 휑해지곤 했다.
그 동안 내가 짊어지고 괴로워하던 수백, 수천만가지의 고민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들이었는지 허탈해졌다. 덕분에 때로는 이런 기분이 들게하는 그들의 존재가 더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나는 또 같은 류의 고민들을 하며 괴로워하고는 하지만, 그 순간들만큼은 진심으로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했다.
그들과 나는 대체 무슨 차이인 걸까. 교육의 유무라고 하기에는 시작부터 태어난 나라의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 태어날 나라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 누구도 없을 텐데 태어난 순간 배 고픔을 걱정해야 하는 삶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삶으로 나뉘고 만다. 비단 국가만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같은 인도 땅에서도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명품을 휘감으며 지내지만, 누군가는 태어난 순간 차 경적소리로 뒤덮인 도로 가운데 다리 아래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빈 젖을 빨며 엄마의 동냥 길에 함께 나서게 된다. 상대적으로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열악한 삶을 시작하게 되는 그들에게 내가 감히 ‘열심히 살면 잘 될 수 있어’라고,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구걸이나 하고 있는거야.’ 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유년기부터 배워왔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가치관과 도덕적 신념 따위들이 아무리 생각하고 되짚어 보아도 사치스럽기 그지 없을뿐인 것으로 치부되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정신적 대혼란을 겪고 집으로 들어설 때면, 그 곳은 또 새로운 세상이다.
차에서 내릴 때면 언제나 도어맨이나 기사가 문을 열어주곤 했고, 이곳에서는 ‘겨우’ 승용차 타는 일로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우리가 쓰는 차가 한 대 뿐인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판이다. 이 곳에서는 내가 짧은 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이상하게 눈길 주는 사람 하나 없고, 나와 아이가 아파트 내 시설들을 아무리 쏘다녀도 동물원 원숭이 보듯 우리를 보는 따가운 시선이 없다.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죄책감을 느낄 일도 없고 ‘일상을 일상으로’ 보낼 수 있지만, 이마저도 실은 내가 살던 세상의 일상이 아니다.일주일 유럽 여행 한번에 한화 3,4천만원 쯤은 가볍게 쓰고 오는 그들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과연 같은 범주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앞을 나서는 순간 이 세계는 완전히 단절되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나마 아파트 밖 보다는 안의 세계와 유사한 점이 많은 삶을 그동안 살아왔다.
어느 날 밤, 곤히 잠 든 아이를 끌어 안고 이렇게 이야기 했다.
“리아야, 인생은 원래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 앞으로 살아가면서 운 좋은 어느 순간들에는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때도 있겠지만, 억울하고 불공평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더 빈번히 더 크게 와 닿는 기분일거야. 그건 네가 잘못한 것도, 반성할 일도 아니야.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왜 충족되지 않는지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지. 원래 그런 감정이라는 건 지극히 상대적인거거든. 네가 힘들면 힘든거고, 네가 슬프면 남들이 뭐라해도 너는 슬픈거니까. 언젠가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은 훨씬 순탄한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왜 내 삶만 이렇게 매 순간 어려운가 싶어 다음 생에 다시는 생물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을지 모르지. 괜찮아. 충분히 억울해하고 아파하고 힘들어해도. 네 삶이니까 너는 그럴 자격이 있는거지. 다만, 어떤 순간에도 그 감정들이 네 삶을 지배하게 두지마. 너는 너 자체로 그 어떤 외부 제한들보다 귀하니까. 아가야, 엄마 아빠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무조건적이고도 전폭적으로 너와 함께하며 사랑을 퍼부을거야.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현명하고 굳건하게 버틸 수 있는 충분한 맷집을 키워주는 것 그게 엄마 아빠가 할 일인 것 같아. 언제나 사랑해. 잘 자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