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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pr 13. 2020

여기에서 살 수 있을까 ?_Part 1

외국인 라이프 1일차

해외 공항에 도착하면 언제나 시행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이 있다.



그 곳 공기 냄새 맡기.

냄새를 맡아봐서 특별히 거부감이 들지 않으면, 그 곳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킁킁’

‘킁킁킁’ 벌름 벌름.

눈알을 좌로 우로 샤샤샥 굴려가며 냄새를 살핀다.

큰 거부감이 없는 냄새지만, 왠지 긴장이 느껴진다.

털을 잔뜩 곧추 세우고, 경계 태세를 갖춘다.

‘가까이 오기만 해 봐 아주 그냥 짖어버릴 거야.’



2019년 1월의 끝자락. 현지 시각 새벽 한시 경.

털을 고슴도치처럼 바짝 세우고 산발을 한 어미 황구가 인도 땅을 갓 밟고야 말았다.

컨테이너로 실어 보낼 수 없었던 김치, 냉동식품 등의 갖가지 식료품 및 적어도 1년은 버틸 수 있을 최소한의 물품들 약 200kg(최소한의 범주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나와 아이까지 대략 260kg의 운명이 잠시간 내 손에 달렸다. 1시간이면 공항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남편의 얼굴이 급격히 아른댄다.

빨리 보고 싶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얼른 만나서 이 무게들을 좀 떼어 넘기고 싶다.

10여년 전 혼자 영국에 살러 떠날 때는 수하물 30kg이 전부였고, 황구이기 보다는 리본 멘 요크셔테리어 쪽이었는데, 그 사이 내 삶이 많이도 묵직해졌다.



좌 : 당시의 화난 황구, 우 : 무자식 상팔자 시절 리본 멘 요키






뭄바이 공항은 예상보다 웅장하고, 쾌적했다.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며 이미그레이션 줄에 섰다.

대부분 이미그레이션(출입국 관리소)은 가출했던 정신을 잠시 잠깐 원상회복 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더욱이 그랬다. 첫 질문부터가 난황이었다.


“너 여기서 일하니?”


“아니 그럴리가.“


까무잡잡한 얼굴에 쏟아질 듯 큰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인도에 사는 현실 인도인을 마주한 순간.

이런, 첫 경험인데. 하필이면 유쾌하지 않은 순간이다. 네 눈이 큰가 내 눈이 큰가 어디 한번 다투어 보자는 기세로 괜히 나도 눈을 한껏 크고 동그랗게 뜨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내뿜어 보지만, 나는 주제 파악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므로, 이내 온화한 설명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여긴 인도고, 나는 외국인이며 인도 사람은 원래 눈이 크고 겨루어봤자 내 눈이 작다.


“내가 아니라, 남편이 일을 해요. S회사라고 거기 적혀있을 텐데요. 나는 그 사람 와이프고 아들도 함께 왔답니다. 우리는 앞으로 아마도 몇 년간 여기에 거주하게 될 것 같고, 경제활동은 우리 가족 중 남편이 유일할거예요. 우리가 살 집 주소도 거기에 적혀있으니 참고해주세요”


“한국에서도 전업주부였어?”


“남편은 인도 사람? 한국 사람? 결혼은 언제 했니?”


왠지 모르게 자꾸 반말을 듣고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영어에는 엄밀히 말하면 높임말, 반말이 없지만 말 하는 어투, 단어 선정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배려와 존중이 담긴 말인지 막 던지는 말인지.


 ‘띠링’ 종이 울렸다. 인내심 테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출입국 심사를 가장한 개인의 호기심을 기꺼이 해소해 주기로 한다.

싸워서 득이 되지 않을 싸움은 애초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계속 일을 해 왔지만, 인도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아마 집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하겠지…남편은 당연히 한국 사람이겠죠..? ”


'내 신상 서류는 죄다 들고 있으면서 그런 것 하나 볼 줄 몰라 물어보냐, 내가 결혼을 언제 했는지 그 쪽이 무슨 상관이냐. 애 안고, 짐까지 들고 팔 떨어지겠는데 이 새벽에 뭐 하냐 진짜.'

뭐, 이런 말들을 속으로 퍼부으며 겨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긍정의 ‘끄덕끄덕’이 아니라 마치 누구 놀리듯 머리를 좌우로 ‘까딱까딱’ 연신 흔드는 모습을 보고는 인내의 끈이 투드득 튿어져 결국 쏘아 보고 만다. ‘훠이훠이’ 파리 쫓듯 그만 가도 좋다는 손짓이 시야에 들어왔다. ‘알았다는거야 몰랐다는거야 뭐야!!’ 짜증이 고점을 찍은 상태로 아이를 바짝 끌어안고 빠져 나왔다.



출 처 :  Giphy / 'Yes' 인지 'No'인지 때에 따라서는  '지금 누구 놀리나....' 싶은 Indian Nodding



이제 남은 관문은 챙겨 온 식료품들을 무사히 들고 공항을 빠져나가는 것.

먼저, 수하물 벨트에서 다량의 이민 가방, 캐리어를 찾아 카트에 차곡차곡 나누어 싣는데, 이 때부터 보통 어슬렁 어슬렁 인도 공항 직원인 듯한 사람이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접근해 온다. 정말 놀랍게도, 그들 중 다수는 실제로 인도 공항의 고용인이 맞다. 그렇다고 안도할 수는 없다. 십중팔구 당당하고도 집요하게 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돈 없냐.’ ‘달러도 괜찮다’ 이런 직설적이고도 확실한 멘트를 곧 듣게 될 것이다. 그들의 타겟은 주로 여성 중에서도 특히, 나처럼 짐이 넘치고 아이까지 케어해야 해서 누구의 도움이라도 물리치지 못 할 대상이다. 물론, 사전에 남편으로부터 이 귀한 정보를 입수한 나는 차라리 돈을 주고 도움을 받을까 하다 말고 왠지 모를 불안함에 ‘NO’를 외치고 말았다.



참 신기한 조합이다. 고급 인테리어로 잘 지어진 공항에 선의의 도움을 가장하여 금품을 요구하는 공항 직원들의 공존. 당시에는 중간이 없는 그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 모습이 바로 인도의 축약본이다.



카트에 쌓인 짐이 와르르 무너질까 아슬아슬 지나가는 동안 짐 중 하나를 한번 더 엑스레이에 넣어보자고 한다. 하필이면 냉동 식품, 고기, 생선 등이 실린 가방 중 하나인데 그러고 보니 하얀 분필 같은 것으로 ‘X’ 표시가 되어 있다. 이게 뭐지? 손으로 툭툭 털어보니 지워진다. 순간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추정컨대 음식물이라고 나름 구분을 한 것인가 싶지만, 저렇게 슥 지워져 버릴 표식은 무슨 쓸모였던 걸까? 인도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소고기를 먹을 수 없고,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돼지고기 또한 구경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뭄바이는 사방이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상태라던가 생선을 다루는 위생상태를 보면 차마 현지에서 생선을 사 먹지 못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가뜩이나 충분한 영양 보충이 필요한 어린 아이를 키우는 우리와 같은 가정에는 한국에서 공수해 온 이 식품 가방이 우리 목숨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 이 가방이 통째로 압수 당하는 건 아니겠지? 속으로 무척이나 불안에 떨고 있는데, 또 내 앞에 서 있던 직원이 ‘끄덕끄덕’이 아니라 ‘까딱까딱’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지나가도 좋다는 손 짓을 한다. 이 나라에서는 긍정의 표시를 하면 안 되는 건가? 공항 직원들이 확답을 하면 안 되도록 교육을 받은건가…?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무척이나 다행이기는 하지만, 찝찝한 마음으로 공항을 나섰다.



뭄바이 공항은 비행기 티켓을 소지하고 있거나,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사람 외에는 누구도 공항 출입이 불가하다. 덕분에, 나와 아이도 공항을 완전히 빠져 나온 후에야 남편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남편은 인상 좋아 보이는 까만 남자 한명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상 속의 재회는 보자마자 달려가 와락 안기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에서의 재회는 조용히 눈 인사를 나눈 후 아이를 건네주고, 마중 나온 인도 남자의 도움을 받아 차에 짐 싣기에 바빴다. 드디어 차가 출발했고, 그제서야 스르르 마음이 놓였다. 아무 말 없이 등을 기대고 창 밖을 물끄러미 보려니, 창이 모두 까만 덮개로 막혀있다.

“귀빈 의전이야 뭐야, 과한거 아니야? 밖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하하하 폭소를 터트리며 정면 유리로 아직은 어둠이 짙은 새벽 인도의 모습을 처음 만났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생각보다 깨끗해 보인다. 조금 더 달리자 노상에 어마어마한 무더기의 야채와 맨 발, 맨 손 그야말로 맨 몸으로 짐을 실어 내리며 새벽 장을 준비하는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세계사 교과서에서나 보았지 싶은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자 시대를 거슬러 시간 여행이라도 온 듯한 기분에 홀린 듯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출처  : mid-day.com / Dadar Market, Sack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소년



“꼬꼬! 뭐 이상한 거 없나?”

오른쪽 귓바퀴로 남편의 목소리가 날아 들었다.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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