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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잇아웃 정PD Aug 24. 2017

발표는 왜 하지?

엔지니어에게 발표란

이번 주 같이 일하는 후배가 팀장님 앞에서 발표를  했다. 너무 어린 후배라 (입사 2년 차) 발표자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의 성과와 기타 다른 사항들을 고려했을 때, 그 후배가 이 시점에 임팩트 있는 발표를 하는 것이 본인과 part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준비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발표자 스스로 '이 일은 팀장님 앞에서 발표할 거리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점이었다. 그런 생각이 있으니 본인이 이야기할 내용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스토리가 안 나오고, 어디를 중점적으로 말해야 할지 모르고, 결국 발표 자료도 못 만들고... 지난주 금요일 사전 review 후 결국 멘붕. 상심한 후배 데리고 커피 한 잔 하며 왜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발표를 하는 적임자가 왜 본인인지, 본인이 한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등에 대해 설명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느라 많은 시간을 이야기했다. 옆에서 뭐라 이야기하던 힘들어하던 당사자가 어떻게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월요일 자료 수정 및 review, 화요일 아침까지 자료 수정하고, 발표 연습하고. 드디어 팀장님 앞에서의 발표. 각 part 대표 한 명씩 발표했는데, 입사 7년 박사, 입사 7년 선임과 비교해서 약간 목소리가 작았다는 것 이외에는 내용이나 전달 모두 잘 했다. 팀장님한테 긍정적인 F/B도 받고, 잘했다고 part 원 다 같이 나가서 점심도 먹고.


똑같은 회의에서 딱 3개월 전, 내가 팀장님 앞에서 발표를 했었다. 당시 발표 이틀 전 review 후 자료를 전면 수정하라는 F/B을 받아 그날 밤새고, 다음 날도 얼마 못 자면서 자료 만들고, 연습해서 발표했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후배에게 그 발표가 얼마만큼의 압박으로 느껴졌을지... 100%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겠지...



처음 입사했을 때 엔지니어의 역할은 '엔지니어링'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발견하고, 평가를 통해 개선 방안을 찾고, 그 방안을 실제 공정에 적용해 더 나은 결과들을 만들어내고. 여기에 조금 더한다면 새로운 컨셉의 개발 정도. 하지만 요즘 후배들에게는 개선, 개발을 위한 일련의 작업들이 반, 나머지 절반은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작업 (자료 작성, 발표, 보고서 등)이라고 이야기한다. 간단히 말하면, 예전에는 '자료 작성이나 발표가 뭐가 중요해. 일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좀 있었다면, 지금은 '자료 만들고 발표해서 다른 사람 설득하는 게 일의 반이야.'라고 생각한달까. (요즘 나에게는 후자가 80%는 되는 것 같다...)


기반 기술에 대한 이해와 전문지식 없이 발표만 잘하는, 그래서 상사에게는 잘 보이더라도 동료들에게는 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엔지니어도 분명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는, 일은 너무 열심히 하고, 결국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옳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고 본인의 주장만을 하는 엔지니어도 있다. 물론 엔지니어 한 명이 어떤 한 가지 업무를 전담해서 맡는 경우가 많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위에 적은 내용은 상당히 극단적이다. 하지만 마냥 틀렸다고 이야기할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저 둘 사이 어딘가에 있을 테고, 가능하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발표를 후배에게 시킨 가장 큰 이유는 본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직 연차가 높지 않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 본 경험이 없고, 본인이 한 일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이 필요했다. 발표 능력이야 언제든 도움이 될 테고, 본인 일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은 앞으로 일을 하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은 힘들 수 있다.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발표가 끝나고 점심 먹으러 가는데, 발표자보다 내가 더 홀가분했다. 후배가 너무 힘들어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그걸 보면서 '괜히 시켰나'하던 기억이 나서, 아무리 옆에서 도와주더라도 결국 발표는 본인이 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맘 졸이며 지켜보다 긴장이 풀려서... 


후배는 이번 발표를 어떻게 생각할까. 발표에 대한 평가와 상관없이, 본인이 발표 준비를 한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조금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너무 고통스러운 경험이었고,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까... 전자라면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발표 준비 기간에도, 발표가 끝나고 나서도 고민은 계속된다.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그냥 내가 발표하는 게 맘 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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