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평 Feb 12. 2020

너 정말 석사로 끝낼 거야?

아직은 결론이 없는 이야기


척척석사라면 공감할 한탄이 있다

연구원에 와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동료들이 끊임없이 진학과 관련된 진로를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리서치회사에서 동료들의 진로 고민이라면 대개 '어느 시기에 어떤 회사로 이직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애초에 괜찮다 싶은 조사업체가 몇 군데 없는 데다 연차가 1,2년만 쌓여도 어느 회사에 누가 있는지 알만큼 업계가 좁다. 리서치회사에서 선호하는 전공은 통계학과 사회학 등으로 한정적이라 대학교 사람이 곧 회사 사람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서치회사에 다니던 시절 옆 팀 구성원은 7명 중 4명이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출신이었다) 결국 조금만 버티면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좋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데다 나름 전문성을 갖춘 직군이니, 들어온 사람은 웬만하면 업계를 떠나지 않고 귀동냥을 하며 호시탐탐 이 회사 저 회사를 기웃거리게 된다.


연구원들은 주로 '박사가 될 것인가'를 고민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박사가 될지에 대해 생각했다. 전공은 무엇으로 발전시킬 건지, 어떤 사람들을 지도교수 후보로 놓을 건지, 해외로 나갈 건지, 나간다면 영국/유럽인지 미국인지 아시아인지 등등... 연구원들이 박사가 되어 더 높은 직급으로 재취업(?) 하지 않는 한, 정년을 채우는 그날까지 연구책임자들의 연구를 보조하는 R.A 신분이 이어진다. (이것도 물론 위촉이 아닌 무기직 연구원들의 경우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체성을 가지고 일하고 싶어 하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고민이었다. 난 일단 연구원이 되고 나면 밝고 아름다운 미래가 자연스레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나 보다.


저도 박사가 되고 싶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내가 박사과정에 대해 처음으로 고려해본 것은 석사학위를 마치고 반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졸업논문을 막 써냈을 무렵엔 '나에게 더 이상의 대학원 생활은 없다'는 소리를 여기저기 당당하게도 하고 다녔지만, 기억이 미화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 대학원 첫 해에 배 교수님 수업 참 좋았어. 그때처럼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발제하고 토론할 기회가 있다면 좋을 텐데. 두 번째 해엔 이 교수님과 거의 매일 한 번씩 만나면서 논문 지도받던 거 꽤나 재미있었지. 덕분에 학술지 논문도 여럿 써볼 수 있었고 말이야. 이렇게 많은 성취를 한 번에 했던 때가 있었던가? 나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참 호시절을 지냈어!" 하고 석사 시절을 장밋빛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무드셀라 증후군도 심하면 치료가 필요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견딜만했었다’는 인위적이지만 아름다운 기억이 머리를 지배하자, 마음 깊이 숨어있던 욕심이 대책 없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것은 나의 미약하고 얕은 학문을 최대한 완성형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였다. 또한 이것은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만 무작정 하고 싶은 어린 마음이기도 했다. 참으로 일차원적인 나는 모든 선택에 있어 의지와 흥미만을 중요한 것으로 고려해왔다. 박사가 되고 싶은 이유도 그만큼이나 단순했던 것이다. 끝까지, 재미있는걸, 하고 싶다.


유학이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 몇 달간 주변에서 유학을 간다거나 또는 갔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얼떨결에 유학길에 오르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척 좋아하고 동경하는 선배 연구원 H가 유학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로 이 고민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을 고민했다. 이것이 정말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인지 혹은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좇으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의지인지. 애초에 무엇을 하고 싶어 대학원 문을 두드렸는지를 상기했다. 나란 사람의 성취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유학에 대해 갖고 있는 의도는 결국 수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로는 여태껏 공부한 분야에 있어 최고 전문가가 되어 더 중요한 연구를 주도하고 싶은 욕심을 직시했다. 둘째로는 현재 그 자리로 가장 적당한 것은 C연구원의 연구위원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셋째로는 그 자리에 있는 선배들은 거진 다 해외 유학파, 그중에서도 미국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해서 나에게 유학은 욕구 실현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에 가까웠을 뿐, 진정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탐구의 세계는 아니었다는 답을 얻었다. 과연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의 학문이 얼마나 의미가 있나.


<무언가가 되려 하지 않기> 프로젝트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박사는 하고 싶다면서도 유학은 수단이라서 싫다고 말하는 거, 실은 내게 학문을 더 지속할 열정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나 기회비용은 안고 살아가는데, 노력의 무게가 버거워 혼자서만 해탈의 경지에 오른 양 수단이라는 핑계를 대는 건 아닐까. 결정의 기준이라던 의지도 흥미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던 것은 아닐까. 내로라할 인재들과 경쟁할 자신이 없으니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을 찾는 것은 아닐까. 이 외에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성찰의 밤은 매일 깊어만 갔다.


그러던 중 바로 오늘, 서귤작가의 인스타툰을 하나 보게 됐다. 단 세장의 짧은 내용이었지만 나에겐 제법 강렬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요즘 사는 게 힘들었던 나는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무언가가 되려 하지 않기> 프로젝트!

방법은 간단하다.
뭐가 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능력 있는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
인격이 성숙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조울증을 이겨낸 사람,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

그냥 이대로 산다.
그리고 내가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즐거운지 즐겁지 않은지 테스트해본다.
기한은 2020년 8월 12일까지!
(8월 12일은 서귤 생일...ㅎㅎㅎ)


그럴듯하다. 당분간은 억지로라도 머리를 비워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민은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유효하여 이런 글을 쓰고 있고 또 자연스레 내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조급함은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나는 연구원이거나 범죄사회학도이기 전에 한정된 인생의 시간을 살아가는 시간 여행자이니까.


그래서 이건 아직은 결론이 없는 이야기다. 척척박사든지 척척석사든지 에라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답이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서치회사 출신 연구원의 소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