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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송이 Jul 04. 2023

휴식이 필요해 2

[틱톡 일기 38] 잠시 탈출을 하겠습니다...

<앞서 뇌빼고 노는 글>

https://brunch.co.kr/@jungrnii/75


앞서 뇌절하고 놀았던 나의 무박이일 다음 날, 나는 제주행 비행기를 끊고 백팩 하나 매고 일주일을 보내러 제주에 내려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 안되는 것이 투성인 내 인생에서, 인간을 떠나 자연으로부터 얻는 그런 수수함, 인위적이지 않음, 속고 속이는 거짓말 없는 그런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과거얘기 한번 해볼게

애월쪽에 예쁜 카페가 많더라구요~


나는 매우 계산적이다. 대가리 굴려서 잇속 차릴 생각뿐인게 더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목표 때문에 배신을 하거나 속이진 않는다. 왜냐하면, 정당히 얻어야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어도 행복하고 못 가지게 되더라도 후회없고 결과에 승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걸 언제 깨달았냐면, 중학교 3학년. 다시는 걷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 오는 겨울, 운동장 한복판에서 울부짖었던 그 날. 나는 씩씩한게 아니라 씩씩한 군인이 되어야 했고, 거침없고 당당한 리더가 아니라, 그런 리더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려서 운동을 죽어라했고, 위험한 건 사려서 몸을 지켰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근처도 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틀에서만 움직이는 철저한 로봇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다, 부모님 회식하던 겨울, 축구하다가 복숭아뼈가 부러졌다. 사실 발목 부러지면 알지만, 하나도 안 아프고 그냥 그렇다. 근데 일어설 수가 없었다. '다시는 걸을 수 없는거 아닌가'에서 '내가 군인이 못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뻗어가니깐, 콧물/눈물이 다 나오더라. 소리지르면서 울부짖었고, 앰뷸란스를 타면서도 울었다. 어려서부터 원하는 거 하나 없는 내가, 가장 원하는건 군인이 되는 거였다.


제주 관덕정 근처에 이런 갬성 천지에요


중3 때 발목 수술 이후, 무사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다리를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또 다쳤다. 이 때의 기분은 ㅈ같지도 않고 해탈하게 된다. 떨어진 계단에서 겨우 올라오면서 집에 기어들어가 병원을 갔다. 사람이 운도 계속 없으면 희망보다는 세상 속에 버려진 것처럼 그냥 아무렇게나 살면 되겠지.. 하고 해탈을 하게 된다.


그러다 만난 선생님이 '전복순'선생님이다. 내 모든 가치관과 형태들을 복붙한 나의 동굴 속 이데아. 군인되는 것을 하늘이 간절히 말리는 것처럼 매년 같은 다리가 부러지는 게 맞는걸까 싶었다. 전복순쌤은 매 수업 때마다 나를 부르고 창피함을 주면서 기를 죽이고 공부하라고 매번 말했다.


내 인생에 누군가가 들어온 게 그 분이 처음이었다. 잔소리에 잔소리, 다그침의 다그침. 내 별멍은 '육정'이었는데, 진짜 너무 생생한게 매번 어느 말도 안되는 상황들에 나를 불러서 공부를 시켰다. 너무 짜증나서 그 분이 담당하는 영어를 정복하려고 영어 사전(아마 Longman일거다)을 거의 다 외워서 그 분 수업 때 조금이라도 흠집을 안 잡히려고 했다. (+여기에 수학썜을 좋아해서 수학까지 미친듯이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영어(수학)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나중에는 한 개 틀려도 운다는게 무슨 기분인지 알았다. 그렇게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나를 속이면 성적이 떨어지고, 과정상 하나에만 집중하면 되는 경기. 그렇게 나는 배우는 것, 알아가는 것, 진지해지는 게 좋았다.


무작정 비우려고 떠났다. 제주도

비 오기 10분전, 협재해변은 아름다웠습니다...^^


공부를 시작으로 취업하는 과정, 그리고 인간관계를 알아가는 것부터 그대로 대입하면 남 등쳐서 하나 얻는 것보다, 정당한 방식으로 다 얻는 게 더 유리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오히려 그냥 내가 했다고 한다. 매도 빨리 맞아야 덜 아프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업(業)에서는 내 공식이 안 맞는다. 혼날 것 같으면 피하고, 숨고 불리하면 감추고.. 대체 뭘까? 이생태계는. 사실 이게 시발점이 되어 내가 떠나게 되었다. 같이 있으면 미치겠고 숨이 안 쉬어지더라. 정당함이 허용되지 않는 관계와 흐름. 내 공식을 거역하듯이 반대로 가는 기차를 붙잡는게 힘들었다. 그러면서 또 반성이 되는 건, '전복순쌤은 그런 나를 그 당시 어떻게 붙잡으셨을까'한거다.


내가 바뀔지말지 모르는 50:50 인 확률에서 짐승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이 되리라고 믿었던 그 시간들. 눈 감고 무관심하게 응원했던 그 몸짓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럴 그릇도 안되고 몹시 힘들다. 나는 담을 수가 없는 크기인가보다. 이 생각에 치여 무작정 떠났다. 제주도로.


내가 사실 서핑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간섭 받고 싶지 않아서야.


제주도 친구네에서 머물면서 일정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그저 나는 아무 죄책감 없이, 자연이 주는 그 순수함에 젖고 싶었다. 서핑도 계획에 전혀 없었고 제주도 장마라고 해서 비맞으며 드라이브하는 것만이 내 최선의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그런데 제주도가 비가 안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일기예보가 틀렸다. 공항에 도착해서 김민건이 데릴러 왔다. 좋은 소리 절대 안하는 나인데도 고기 맛집에 데려다주고 경악만 나오는 노을을 보여줬다. 노을을 그냥 멍하니 보는데 너무 오랜만에 뭉클해지면서 아팠다. 하늘은 지는 순간까지 본인을 태워 전체를 밝게 하는구나. 그 붉으스레한 하늘이 아직도 아련하다.


제주 하늘은 가식이 없어. 그러나 제주녹차빙수는 가식적이지


다같이 모여 유림, 소현이와 김민건과 비오는 날에 막걸리와 파전을 먹었다. 솔직히 서울에서는 절대 안 마시는 술을 이틀 연속으로 마시는데도 너무 지독하게 행복하더라. 역시 본인들 삶에 속임없이 사는 사람들은 당당하다. 싸워도 마주보면서 싸우고, 으르렁대면서 서로가 서로를 깍아내려도 납득이 된다. 그렇게 부딪히던 우리들이 지금 이런 모습으로 4,5년 만에 마주한 것도, 이러한 우정이 가능한 것도, 인위적이지 않아서이다. 


그렇게 놀고 돌아가면 서하네 집에서 같이 머무는데, 이로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이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회복해갔다. 방향 없이 떠난 여행에서 친구들을 만나 생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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