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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송이 Oct 03. 2023

방구석에서 나는솔로 보는 그저그런 날들은 안녕

나만의 노잼극복기 _ 추석 연휴 일기 2

한 시간 뒤면, 추석으로 시작해서 개천절로 마무리하는 6일 간의 연휴가 마무리된다. 앞서 갈 길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보내는 날들이 많다는 말을 했었다. 벗어난 궤도에서 점점 정상 궤도로 다시 들어오려고 발버둥치다보니, 오늘은 조금 더 나아졌다. 노잼시기면 뭐 어떻고, 잠깐 방황하면 어떠며, 방향성을 못 잡으면 어떠냐싶은 결론을 내렸다.


<이전 글 보러가기>

https://brunch.co.kr/@jungrnii/87


방에서 속칭, 성인용 ebs라는 '나는 솔로'(연애 프로그램)를 보면서 보냈던 날들을 뒤로 하고 이번 연휴 내내 부지런히 움직였다. (물론 나는솔로 너무 재밌는 건, 부정을 못하겠다^^;;) 방에만 있기에는 연휴 내내 날이 너무 좋아서 창문만 열면 그렇게 나가고 싶었는데, 날씨도 노잼시기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듯하다.

전시 보러가기 (일리야 밀스타인)

일리야 밀스타인 전시는 한번쯤은 가볼 만 하더라.


전시를 좋아했는데, 언제부터 전시를 보러가도 새로운 감흥을 얻지 못한다고 느꼈어서 가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만에 간 전시였다. 우연한 기회로 전시를 보러가게 됐다. 워낙 유명한 작가, 일리야 밀스타인 작품들이 메인이었는데, 나는 후원한 노루페인팅에 감사를 하게 됐다. 작가의 작품을 '캐비닛 4'로 표현하면서 각각의 방에는 이색적인 느낌의 색감과 작품이 걸려져있는데,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번 전시는 매우 친근감있으면서 신선한 그런 작품들이 많았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같은 느낌이 강했고 무엇을 표현하는지 대략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었으며, 여러 브랜드들과 콜라보한 덕분에 익숙한 작품들도 많았다. 인상적인 부분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창가를 가운데에 두고 서재처럼 만들어서 눈이 오는 배경 혹은 바다 배경, 밤하늘 배경을 나란히 걸어둔 3개 작품이다. 가까이보거나 멀리 봐도 해당 작품들을 보면 침착해진다. 색감자체도 보랏빛, 푸른빛으로 한 분위기를 연출해서 그런가 고요히 보는데도 어떤 생각도 안 들고 멍하니 편안해졌다.


다른 하나는, 방 안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본 듯한 작품들이 있는 공간이었다. 흰색과 빨강의 조합으로 공간을 구성하여 딸기 아이스크림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었다. 어지러운 방 공간을 묘사하면서 해당 방에 누워있는 대상은 노래를 듣거나 편히 쉬는 코지한(cozy) 느낌을 나타냈다. 전반적으로 분홍빛깔을 띄면서 '저런 공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기저기 난잡하게 어지럽히고 아무도 치우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은 그런 평온한 공간 속에 갇히고 싶은 그런 마음도 들었다.


전시는 혼자가도 좋고 여럿이 가도 좋은 문화생활이다. 혼자가면 노래를 듣고 작품을 감상하면서 나만의 갬성으로 젖을 수 있다. 친구, 연인, 가족들 등 여럿이 가면 작품에 대해서 추론을 하고 서로의 생각을 얘기하면서 한 작품, 한 작품 보는 것도 신중해진다. 이래서 내가 전시가는 것을 많이 즐겼나보다. 6개월만에 찾은 이번 전시에서 간만에 신선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힙한 전시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편안한 술자리

가족들과 오랜만에 술집에 갔다. 나는 술을 잘 안 좋아하기도 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이렇게 다 모이는 것도 명절 아니면 없기도 한데, 이렇게 이자카야를 같이 가다니.. 신선했다. 음식을 시키면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오랜만에 서로 안부도 묻고, 요즘 근황들을 말하면서 때로는 뒷담 혹은 과거 얘기를 하면서 보냈다. 시간을 누군가가 멈춰놓기라도 한 듯, 천천히 가더라.


나는 사실 안주파라서 다른 사람들이 술 한잔 마실 때, 안주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젓가락질을 했지만 다들 술잔을 부딪히면서 술병들을 늘려 나갔다. 그러면서 웃음 소리도 커졌고 자세도 점점 편안해졌다. 힘들 때일수록 나는 더더욱 술을 잘 안 마신다. 의존성이 높아지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을 집요하게 찾는 성격이다. 혼술도 그렇기에 안하는 것이고, 스트레스가 많을 때 운동을 더더욱 열심히 가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연휴에 이처럼 가족들과 술을 마시는 시간은 즐거웠다. 직접 술을 찾아마시고 하이볼, 샤케, 맥주 등을 마시면서 알코올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온전히 즐겼다. 이렇게 노잼시기일수록, 가장 기대기 쉽고 심적으로 편안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는 더욱 더 필요한 듯하다.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 혹은 '나'라는 존재가 어떤 관계들 속에서 성장해왔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가족들이 사진을 잘 찍어서 난 좋다!


애정하는 무엇 하나 가꾸기/기르기


나는 러시안블루 고양이(이름 쿠로)를 키운다. 우리집 귀염둥이다. 쿠로에게 온전히 집중한다고 하면, 하루종일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요근래 퇴근하고 집에 와도 큰 반가움이 없어서 운동하고 씻고 자기에 바빴다.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멍하니, 누굴 돌보거나 가꿀 힘도 없었다.


그러다 이번 연휴 때 가족들이 다 흩어지고 남겨진 집에 쿠로랑 있으니, 굉장히 집 안이 엉망인 것을 알았다. 하나씩 치우면서 쿠로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빗질도 해야겠고 손발톱도 잘라야겠고, 사료도 매번 먹던게 아니라, 닭가슴살을 섞어주고 싶었고 캣휠을 좀 더 태워서 운동도 시키고 싶고... 등등 해야할 것이 많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게 된 셈이다.


우선, 쿠로를 안았다. 그냥 일단 쉬다가 슬슬 하고 싶었다. 담요로 쿠로 감싸면서 쓰담쓰담해주다가 그대로 낮잠을 자버렸다... 보통 고양이는 12시간 이상을 자는데, 특히 낮시간은 낮잠을 자다보니 쿠로도 졸았고 나도 그대로 졸아버렸다. 그렇게 한두시간 자고 일어나서 쿠로가 기지개키면서 하나씩 해야할 일들을 했다. 쿠로 장난감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고루 섞어서 줬다. 쿠로는 훼방을 놓는 건지, 즐기는 건지 계속해서 쫓아다녔다.


그렇게 2시간, 3시간이 흐르고나서 쿠로 돌봄이 온전히 끝났다. 뿌듯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친구와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서 디테일하게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언제는 내 친구가 자기는 동물은 못 키워서 식물을 많이 키운다는 얘기를 했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라고 작은 것뿐 아니라, 중간 크기 정도되는 식물도 키우면서 햇빛을 어떻게 봐줘야 하고 영양분은 어떻게 공급해줘야하는지 등등을 말해줬다. 그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돌이켜보면, 관심을 갖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이런 무엇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깨달았던 것 같다. 오늘도 천방지축 이쿠로랑 하루종일 싸우면서 하루를 마감하는데, 정말 알차고 즐거웠다.


쿠로야 많이 많이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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