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빠인생
"롯데에 꽃범호! 롯데에 꽃범호! 오오오오~ 오오오오~"
롯데 자이언츠가 2009년 FA 최대어 이범호를 70억 원으로 영입 성공! 드디어 롯데의 취약점인 3루에 수비 좋은 거포 타자가 영입됐다! 너무 기뻐서 신나게 이범호 응원가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가 좀 이상하다. 이건 '롯데의 강민호' 응원가인데? 그럼 강민호는? 그러고 보니 아직 롯데가 영입했다고 오피셜도 안 떴는데? 이범호는 일본 진출설도 있던데? 그런데 내가 노래 부르는 여기는 김치찌개집? 아! ㅅㅂ 꿈!!!!
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하지만 꿈에서 깨면서 진한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이불킥을 날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오전 11시, 다행히 김치찌개 집이 아니고 내 자취방 침대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노래 '롯데의 꽃범호'라는 근본 없는 노래. 그거 내가 진짜 불렀던 것 같다는 말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다른 이상한 여러 노래도 불렀다. 아! 어제 S형과 술 마셨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하나둘 어제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2009년 겨울, 학교 앞 김치찌개 집에서 S형과 J와 H와 술 마시며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아니 롯데 욕을 하다가 나는 그런 근본 없는 응원가를 실제로 불렀다. 만취상태였다. 뒤늦게 술자리에 도착한 J와 H의 표현에 따르면 S형과 내가 김치찌개와 어마어마게 많은 빈 소주병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술을 마시며 욕을, 아니 야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치찌개 집에서 술에 취해 타 팀인 이범호 선수 이름을 ‘롯데의 강민호’ 응원가에 개사해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나 같으면 절대로 친해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형과 J와 H는 2025년에도 아직도 나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내가 엘지 응원석에서 롯데를 외쳐도, 김치찌개 집에서 이상한 무근본 응원가를 불러도 나를 보듬어준 정말 착한 사람들이다. 이런 착한 사람들과 친구라니 내가 다 자랑스럽다.
2008년에 롯데자이언츠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첫 외국인 감독으로 선임했다. 외국인이 왔다고 전에는 8개 팀 중에 8888577을 하던 팀이 갑자기 잘 될까 모두가 의문을 가졌지만. 오자마자 로이스터 감독은 팀을 정규리그 3위로 가을야구에 진출시켰고, 2009년에도 4위로 가을야구에 진출시켰다. 2년 연속으로 팀은 가을야구에 진출은 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각각 삼성에 0대 3, 두산에 1대 3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선수들이 가을야구 경험이 없어서 스스로 무너진 것 같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야구였지만 2년 동안 가을에 1승밖에 못했기 때문에 팬들도 나도 너무 허무했다.
하루는 에라, 롯데 야구도 끝나버리고 다른 팀 한국시리즈나 봐야겠다고 생각해 저녁 6시에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러 편의점으로 갔다. 그런데 거기서 S형을 마주쳤다. 2009년에는 S형도 나도 그때는 졸업하고 학교를 유령처럼 떠돌아다닐 때였다. 서로 '왜 이 시간에 여기에?'라는 말을 주고받다가 야구를 보러 안주 거리를 사러 왔단다. 둘 다 저녁 6시 30분 경기 시작에 맞춰서 온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날 바로 편의점에서 우리 집으로 가서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야구 이야기를 엄청했다. 그 해에 7위로 마감한 엘지트윈스 팬인 S형도 허한 마음이었다는 걸 확인했다. 서로 엄청난 야구팬인 걸 지금까지 몰랐다가 그날, 그러니까 나도 졸업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나야 롯데팬이니까 당연히 부산이 아닌 곳에서 야구 이야기를 안 했던 건데, 형은 서울에 살면서 서울 연고인 엘지팬인 걸 왜 그동안 전혀 말하지 않았을까? 알고 보니 엘지도 당시에는 암흑기였다. 2003년부터 쭉 가을야구를 못한 것이다. 타 팀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는 형의 이야기를 통해 엘지팬과 동병상련을 느꼈다. 그날은 한국시리즈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끝난지도 모르고, 안주가 뭐였는지도 모르고, 서로 롯데와 엘지욕을 하다가, 아니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해보자고 했다. 3시간을 욕을, 아니 야구 이야기를 했지만 서로 못하는 팀의 팬이라는 한이 그만큼 많았던 것 같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나는 형과 김치찌개 집에서 만났다. 형이 김치찌개집을 골랐다. 의외였다. 대학가 바로 앞이라 양도 많고 맛도 있을뿐더러 방학 시즌이라 사람도 많이 없을 거라 편하게 오래 이야기할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하필 그 시기는 계절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시기였다. 형도 나도 졸업 후 백수가 되어 학교 근처에 살면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학생인 후배들이나 동기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만나면 뭐 하냐고 물어볼 것이고, 가을학기에 졸업한 지 5개월째인 나는 다른 동기나 후배들은 취직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 싫은 상태였다. 심지어 롯데도 허무하게 가을에 무너졌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면서 진짜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에 떨어져 한없이 집에서 땅굴을 파고 들어갈 때였다. 형도 비슷했으리라.
그런데 시험 끝나고 우연히 김치찌개 집에 들른 과후배가 우리를 발견했고, 그게 메신저로 돌고 돌아 오랜만에 반가운 마음에 우리 얼굴을 보겠다며 다들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S형과 계속해서 야구 이야기를 했고, 우리 옆자리에는 계속 우리 과 후배와 동기들이 바통을 터치해 가며 술을 마신 것이다. 그러니까 그 어마어마한 빈 소주병은 우리가 다 마신 게 아니라, 뒤늦게 합류한 J와 H가 겨우 목격한 한 장면에 불과했다. 물론 대부분은 우리가 마셨겠지만.
분명히 무근본 응원가를 부른 것 말고도 다른 노래도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엘지 트윈스의 응원이었다.
“1번 타자 이대형, 2번 타자 박용근, 3번 타자 박용택, 4번 타자 페~타지니...”
김치찌개 집은 계절학기 시험이 끝난 사람들로 넘쳐났고, 우리는 야구 이야기를 크게 했고, 하필 이곳은 서울이고, 엘지 팬이 많았던 것이다. 1번부터 9번까지 그리고 감독 이름까지 부르고 나서는 선수 개인의 응원가까지 다 불렀다.
“무적 엘!(엘)지(지)! 박용택 오오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
이 노래를 할 때는 모두 다 같이 일어나 두 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이건 나도 아는 응원가라 나도 같이 자리에 일어났다. 모두 모르는 사람이지만 “엘(엘)지(지)” 할 때는 돌림노래 약속하듯 누군가가 박자를 맞춰 절묘하게 끼어들기도 했다. 이 상황이 너무 웃겼지만 순간 즐거웠다.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김치찌개 집에서 야구 응원가를 부르다니. 하지만, S형은 이 모든 걸 기억하지 못했다. J와 H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그러면 꿈이었나?
행복했던 그날 밤의 김치찌개 냄새도, 엘지 응원가에 맞춰 흔들리던 손바닥도, ‘롯데의 꽃범호’를 외치던 내 목소리도 꿈속 장면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술기운이 만든 허상이었는지, 오래된 마음속 바람이 꾸게 한 몽상이었는지 이제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시간 속의 기쁨과 행복, 그리고 부끄러움은 내 인생을 이루는 소중한 조각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날 함께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다. 내가 목청껏 외친 ‘꽃범호’를 아무도 흑역사 취급하지 않고 넘어가 줬다는 점에서 이들이 얼마나 착한지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이들 덕분에 나는 덜 외롭게 살고 있나 보다.
16년 전 S형과 나를 조여오던 건, 백수의 시간보다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시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 그때보다 잘 먹고 잘살고 있다. 그 후로 엘지는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 시절보다 훨씬 나은 팀이 됐다. 여전히 발전이 없는 건 롯데뿐이었다. 롯데는 마치 나의 백수 때의 두려움과 공포를 현실로 이룰 기세로, 여전히 우승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걷고 있다. 가끔은 정말로 영원히 우승하지 못할 팀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롯데는 늘 나를 실망시키지만, 나를 실망시킬 자격이 있는 팀도 롯데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