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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녕그것은 Mar 25. 2020

식량난에는 역시 고구마인가

[편의점에서 유럽까지] #1. 콜비잭과 구황작물







언제쯤 끝날까? 망할 코로나.




나의 일상이 바이러스 따위에 이렇게 한 번에 차단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살면서 신경 쓸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는 하다 하다 바이러스 눈치까지 보며 돌아다녀야 되냐고 했던 게 설날이었다. 무려 두 달이 다 돼가는 시간이다. 이제는 감히 바이러스 '따위'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만큼 우리 생활 전반을 군림하고 있다. 그간 우리 동네에서 확진자가 나와서 일주일 가량 재택근무도 해봤지만 커뮤니케이션과 업무 진행에 답답함을 느껴 다시 출근을 하는 중이다. 웬만하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약속은 잡지 않으려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서 끼니를 챙기며 연명 중이다. 


 집에서는 동선이 한정된다. 자연스레 점점 가벼운 음식을 찾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고구마까지 쪄 먹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전에도 잠깐 말했다시피 나는 조금이라도 단맛이 과하게 느껴지면 한입 이상을 먹지 못한다. 고구마는 게다가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 식감 때문에 누가 입에 넣어주지 않는 이상 내가 찾아먹는 일은 절대 없었는데 코로나가 만든 이 전쟁 같은 상황에 식량이 떨어져 결국은 찬장에 처박혀 있던 고구마를 꺼내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폴폴 김을 풍기며 푹 익어가는 고구마를 보고 있자니 창의력이 샘솟았다. 



1. 김치에 싸 먹는다

 사실 가장 만만하지만 오늘은 왠지 실험정신이 샘솟는다.


2. 냉장고에 좀 지난 라끌렛 치즈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퐁듀처럼 찍어 먹는다

 입에서 쩍쩍 대는 것이 입안에서 더 소용돌이칠 것 같다. 패스


3. 오지 치즈 프라이를 해 먹으려고 뜯지 않았던 콜비잭을 곁들여 먹는다

 왠지 괜찮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고고!






[콜비잭] 


 마치 미국 하이틴 영화의 남주 이름 같은 이름이다. 


근데 '잭'이라는 이름은 내가 유추한 대로 1800년대 후반 이 치즈를 캘리포니아 밖으로 팔았던 데이비드 잭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몬터레이 잭이라고도 불리는데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라는 마을에서 멕시코 수도사들이 만들어 먹던 것을 기원으로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미의 어떤 특별한 맛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고 가장 무난하고 대중적인 맛이다.





보다시피 콜비잭은 얼룩덜룩 마치 노란 젖소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띠고 있다. 두 종류의 커드를 압착해 만들었는데 플레인 한 마일드 타입과 체더 타입의 커드가 혼합되어 일반 체더치즈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고구마의 짝꿍으로 콜비잭을 선택한 이유는 약간의 산미, 즉 새콤한 맛 또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내준 이 고구마들은 너무나 달아서 사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맛있게 먹겠지만 나에게는 중화가 필요했다. 




 사실 고구마를 먹어본 적이 많이 없어 어떻게 잘라야 할지조차 우왕좌왕이었다. 어차피 누구에게 대접할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좋자고 먹는 건데..라며 스틱처럼 잘라 같이 치즈와 함께 포크로 집어먹었다.(그래서 모양이 가지각색이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은 고구마보다 치즈를 크게 잘라 맛이 잘 어우러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 고구마가 치즈보다 더 큰 조각들은 퍽퍽함만 더 커질 뿐 조화로움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치즈를 고구마보다 살짝 더 크게 잘라 한입에 먹으면 달콤함은 줄어들지만 치즈의 담백함과 약간의 새콤함이 함께 고구마에 더해져 한결 더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 나중에 와인을 먹을 때 핑거푸드로 곁들여 먹어도 좋을 듯하다. 






 다민족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완전한 수출용 치즈 콜비잭. 그래서 마트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고 대량생산의 천편일률적인 것이 주는 마음의 안정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치즈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가장 첫 번째로 나는 콜비잭을 말한다. 그라인더  갈아서 볶음밥 위에 녹여 먹기도 좋고 과일 칼로 툭 잘라서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아도 간식처럼 먹을 수 있다. 얼마 전 집에 갑작스레 손님이 와서 와인과 곁들여 먹을 것이 필요했는데 콜비잭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안주가 되었다. 사실 치즈 플레이트라는 게 별것 있겠나? 콜비잭을 피자 조각 모양으로 잘라 내놨더니 콜비잭 플레이트가 되었다는 후문. 




 빵에 곁들여 먹어도, 샐러드에 조각내어 넣어 먹어도, 재택근무를 하며 젤리나 견과류 대신 집어먹을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해도 얼마든지 오케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유통기한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으며 가격이 착하다! 


이것 이외의 얼마나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가?!





고구마와 함께한 '콜비잭' 치즈력 89%

[치즈력]은 치즈의 정령이 지극히 주관적으로 가격과 맛 식감 유통기한을 포함해 평가하는 지표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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