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생물 선생님 Dec 01. 2024

아무튼 남학생

episode 17

여고에서 7년째 근무하며 여학생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긴 하지만 여학생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남학생만의 매력이 확실히 있다.


올해 1월 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5월에 복강경 수술을 하려고 날짜를 잡았다. 4월 초에 수술 전 검사와 함께 MRI를 촬영하고 난 후 결과를 들으러 일주일 뒤에 갔더니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영상의학과 의사의 소견을 봤을 때 암일지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개복 수술로 변경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경우 보통 1,000명 중에 1명 정도 암이라 내가 암일 확률은 매우 낮지만 그 한 명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고, 만약 암이었을 경우 복강경 수술로 했을 때는 조직을 잘라서 꺼내게 되므로 문제가 생긴다는 것. 복강경 수술은 회복도 빠르고 해서 4주 진단이 나올 예정이었지만 개복 수술로 변경되고 난 후 의사는 8주 진단을 내렸다. '개복 수술은 진짜 회복이 더디구나.'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구멍을 낸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뭔가 길게 배를 가른다는 생각을 하니 무서웠고, 어딘가 훌쩍 떠날 사람처럼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 제자들을 만나기 위한 약속을 끊임없이 잡았다. 이때 내가 느낀 남학생 제자들 만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1.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남자 간호사 제자

MRI 촬영을 앞두고, 뭔가 겁이 나서 간호사 제자에게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내가 자꾸 무섭다 그러니까 "샘, 그 통 안에 들어가면 시끄러워서 귀마개 해주니까 한숨 푹 자고 나오면 됩니다." 쿨하게 말했다. MRI 촬영 당일, 그 아이가 해준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병원으로 갔는데 촬영 전 유의사항 설명해 주시는 분이 촬영 중에 움직이면 안 되니까 잠들면 안 된다고 하셨고, 귀마개는 해주셨지만 너무 시끄러워 절대 잠에 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제자의 이야기는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날 안심시키는 것에는 성공했다는ㅋㅋㅋ


그리고 학교에서 뭔가 나랑 안 맞는 선생님께서 사사건건 나에게 시비를 걸 때가 있어서 답답한 나머지 이 제자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명쾌하게 답변을 해줬다.

나:  "간호사 태움 문제 심각하잖아. 너도 당해봤어? 태움 당할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제자: "저는 뭐 당하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이거 왜 물어보세요?"

나: "학교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선생님 한 분이 날 힘들게 할 때가 있어서..."

제자: "그럼 물어야죠."

나: "뭘 여쭤보라는 거야?"

제자: "아니, 물어뜯으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물어뜯어야 샘 안 건드릴 테니 못 참겠으면 물어뜯어요ㅋㅋㅋㅋㅋ“


매력 터지는 답변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그 선생님을 물어뜯는 상상을 했더니 너무 신났다ㅋㅋㅋㅋㅋ 그 아이의 명쾌한 해결책으로 인해 나는 물론 그 선생님을 물어뜯지는 않겠지만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명과학을 가르치다 보니 나는 진짜 여자 간호사 제자들 많은데 여학생에게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다음 에피소드는 수술 일주일 후, 의사 선생님을 만나 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주변에 나의 수술 소식을 알고 있던 제자들에게 연락했을 때 받았던 위로인데, 진짜 여학생 제자들이랑 위로하는 방식이 정말 달랐다. 여자 제자들은 내가 수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같이 걱정해 주고, 암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기뻐해줬는데 몇몇 남자 제자들은 나에게 아주 신박한 위로 멘트를 날렸다.


2. 첫 학교에서 만난 남자 건물주 제자

나: "샘, 암 아니라고 이제 1년 뒤에 병원 오면 된다고 하셨어."

제자: "샘은 당연히 암 아니죠."

나: "왜?"

제자: "먼지 날리는 건축 현장에서 힘들게 끼니도 잘 못 챙겨 먹는 저도 암 안 걸렸는데 매일 영양사가 해주는 급식 따박따박 먹으면서 샘이 암 걸리면 저는 벌써 암 걸렸죠ㅋㅋㅋㅋㅋ"


3. 첫 학교에서 만난 남자 회사원 제자

나: "샘, 암 아니라고 이제 1년 뒤에 병원 오면 된다고 하셨어."

제자: "샘은 당연히 암 아니죠."

나: "왜?"

제자: "샘은 본인이 드라마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샘은 딱 여주인공 친구 정도라 절대 암 안 걸려요. 주인공 정도 되어야 암 걸리지ㅋㅋㅋㅋㅋ"


이 두 명의 남자 제자들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너무 웃기기도 하고, 반박할 수 없는 맞는 말이라 내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는ㅋㅋㅋ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이제 다 30대 아저씨라서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그런지 제자지만 종종 그냥 친한 후배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튼 남학생, 요즘 남고에도 이런 매력 터지는 남학생들이 있다면 다음 학교는 아무튼 남고로 결정해야 할 것만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