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6
추억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추억이 담긴 일기장을 여러 권 가지고 있는데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적었던 일기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 시절 일기는 매일 써야 하는 숙제였기 때문에 일기를 매일 썼던 기억.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그날의 날씨를 바로 검색해 볼 수 없던 시절이라 방학 때는 날씨만 매일 기록하고, 일기는 개학 직전에 몰아서 썼던 기억이 난다(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 일기장 검사할 때 날씨 안 보셨을 것 같은데 말이지ㅋㅋㅋ). 아무리 생각해도 일기 쓸 주제가 생각나지 않거나 쓰기 싫을 때는 시집을 보고 동시를 적은 다음, 간단한 감상문을 썼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일기 숙제에서 해방되어 고등학생까지는 거의 일기를 쓰지 않다가 성인이 되고 난 후 대학생 때부터 매일 일기를 쓴다기보다 그날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날에 종종 일기를 썼다.
잠이 안 오는 날이면 나는 예전에 받았던 손편지나 일기장을 꺼내서 보는 추억 놀이를 하고는 하는데 브런치에 글을 적다가 책장 저 구석에 꽂혀있는 나의 일기장을 찾아 읽어보다가 웃긴 게 있어서 찍어봤다. 초등학생 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육청 주관 시험 전 날이었던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은 지금쯤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텐데 지금 놀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지만 자꾸 놀고 싶다니... '초등학생 정생물이나 지금의 정생물이나 비슷하군.' 이런 생각에 웃음이ㅋㅋㅋ
임용 재수를 하던 시절 다이어리를 보면 질풍노도의 정생물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최종 합격자 발표날에 얼마나 뿌듯했으면 1차 시험과 2차 시험 점수를 출력한 종이를 다이어리에 끼워 놓은 것도 볼 수 있다. 신규 시절 적은 다이어리를 보면 3월 발령을 받고 2주 만에 월요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재밌다는 이야기, 첫 월급 받고 학교에 떡 돌린 이야기, 주말에 서울로 공연 보러 다닌 이야기 등등 20대의 푸릇푸릇한 정생물을 느낄 수 있다.
교사가 되고 난 후에는 거의 매년 12월에 그다음 해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할 예쁜 다이어리를 샀다. 항상 야심 차게 1월 1일 새해의 다짐을 적고, 겨울방학 동안 빽빽하게 기록을 했다. 하지만 3월 신학기가 시작되고 바쁜 일상을 보내며 스르륵 일기를 적는 날이 줄어들어 그 해의 다이어리는 1~3월 정도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고, 4월부터 12월은 텅텅 비었던 경험도 많다. 하지만 올해는 잔잔한 내 삶 속에서 여러 가지 큰 이슈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1월부터 11월 말인 지금까지 1년 내내 다이어리를 꾸준히 적었다.
1월부터 시작된 병원 투어와 수술할 병원 찾기, 수술하기 전에 친구들과 제자들 많이 만난 이야기(선생님들께서 나의 빽빽한 스케줄을 보고 군대 가는 애도 가기 전에 샘보다 사람 적게 만날 거라 하셨지ㅋㅋㅋ), 데이식스에 빠져들게 된 이야기, 5~6월의 2개월 병가, 그 과정에서 브런치 작가에 신청해서 글을 쓰게 된 이야기, 생애 첫 운동으로 헬스를 시작한 이야기 등등. 작년까지는 3월에 개학하고 1학기 이야기를 적고, 8월부터 2학기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며 매년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패턴과 내용이 적혀있는 다이어리였다면 올해는 뭔가 새로운 경험 한가득 담긴 다이어리가 되었다.
2024년이 한 달 남은 지금, 올해는 어떤 예쁜 다이어리를 준비해서 2025년의 정생물 이야기를 적어볼까 생각해 보는 기분 좋은 일요일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