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5
나는 고등학교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생명과학 I 과목에는 근육의 수축 원리에 대해 배우는 단원이 있다. 활주설, 액틴 필라멘트가 마이오신 필라멘트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근육 원섬유 마디의 길이가 짧아지면 근수축이 일어난다. 근수축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H대의 길이와 I대의 길이는 짧아지고, 액틴 필라멘트와 마이오신 필라멘트가 겹치는 부분의 길이는 길어진다. 액틴 필라멘트와 마이오신 필라멘트의 길이와 마이오신 필라멘트 길이와 같은 A대의 길이는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근육 수축의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아래와 같은 문제를 풀이한다. 고3이 되면 수능 준비를 하면서 이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길이 계산 문제도 풀게 된다.
근수축의 원리를 알고, 문제는 잘 풀지만 내 몸의 근육들을 학창 시절 이후 제대로 수축시켜 본 적이 없다. 수술한 지 5개월이 지나 이제 헬스를 해야지 생각하면서 집 근처 헬스장들을 검색해 보긴 했지만 막상 혼자 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교 선생님 중에서 우리 집과 가까운 헬스장에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선생님의 피티를 담당하는 트레이너 선생님이 좋다며 소개를 해주셔서 나는 갑자기 10월 초부터 헬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튼 행복"은 내가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대상에 관하여 매주 하나씩 적고 있는 브런치북이다. 이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아무튼 헬스"에 대해 적을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운동을 하면서 성취감이나 행복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헬스를 시작한 지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장에 출석한 나는 3박 4일 동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3일 동안 헬스장 못 가서 아쉬운데...'라고 생각하며 부산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저녁 피티를 잡았다. 그리고 저번주 수능감독을 마치고, 선생님들과 저녁을 먹은 후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향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학교 선생님들이 다들 놀랐다. 한 달 만에 내가 이렇게 헬스에 진심이 되다니…
트레이너 선생님이 가르쳐준 동작을 내 몸이 온전히 익히는 순간은 같은 동작을 아주 여러 번 반복한 후에 찾아온다. 피티를 해주는 트레이너 선생님은 나의 비포&애프터 동작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내가 동작 하나하나를 성공하면 웃으면서 칭찬을 해준다. 처음에는 그 순간이 좀 쑥스럽기도 하고, 근육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조금만 성공해도 잘했다고 해주셔서 부끄럽기도 했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이제 어떤 동작을 한 후에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잘한다고 이야기해 주시면 신난다. 앞으로 배울 여러 가지 동작들은 어떤 것일까 기대가 되고, 그 모든 동작들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잘하고 싶다 혹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근수축의 원리만 알던 내가 내 몸 곳곳에 존재하는 근육을 실제로 수축시키는 경험을 할 때마다 신기해서 히죽히죽 웃게 된다.
유튜브에는 운동과 헬스장에 있는 기구 사용법을 알려주는 수많은 동영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운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잘 만들어진 영상을 본다고 해도 제대로 하기도 어렵고, 어떤 좋은 동영상도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몸 컨디션을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운동을 알려주는 것은 동영상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나의 피티 선생님은 운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운동을 가르쳐주신 첫 선생님이다. 운동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게 그 습관을 하나하나 만들어주고 계신 선생님께 고맙다.
이번주에는 기말고사 출제를 마무리해야 한다. 출근하면 고도의 집중력으로 시험 문제 출제에 몰두하고, 퇴근길에 신나게 헬스장에 가야지! 이번주에는 또 어떤 새로운 동작과 기구 사용법을 배우게 될까? 일단 오늘도 즐겁게 헬스장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