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4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작고 귀여운 물건을 발견하면 "어머 이건 사야 돼"라고 생각하며 참지 못하고 구입하곤 하는데 이처럼 작고 귀여운 것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는 뭘까? '귀여움의 심리학'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물론 사물에게서도 귀여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심리 상태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 분야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다. 귀여움의 심리학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3년 독일의 동물학자인 콘라트 로렌츠 박사가 '아기 스키마'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아기 스키마 이론은 둥근 얼굴, 커다란 눈, 뽀얀 피부처럼 아기가 가진 전형적인 신체적 특징들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고 심지어 돌보고 보호하고 싶은 욕구까지 불러일으킨다는 이론이다. 즉, 귀엽다는 감정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작고 귀여운 아기도, 작고 귀여운 동물들도, 작고 귀여운 굿즈도 아닌 우리 학교 2학년 귀요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이 착하다고 알려져 있어 예전부터 주토피아(우리 학교 이름 첫 글자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로 불렸다. 나는 주토피아에서 작년부터 2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고3 담임을 한 작년에도 비담임인 올해도 우리 학교 귀요미들 덕분에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올해 2학기 2학년 전담을 하게 되면서 비담임이지만 저번주에 우리 학교 2학년 아이들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귀여운데 3박 4일의 수학여행 동안에도 참 귀여웠다.
월요일 아침 6시 45분쯤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 탑승까지 끊임없이 대기하는 시간들,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도 지루해서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와서 쿠키를 주는 게 아닌가? 요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뭔가를 나눠 먹으면서도 옆에 있는 교사에게 권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웃으면서 쿠키를 건네주는 아이라니...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피곤했는데 쿠키 하나에 기분 좋게 수학여행 첫째 날을 시작했다. 첫날 일정 중에는 오설록티뮤지엄 관람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여기서 폭풍 쇼핑을 하였다. 아이들에게 뭐가 핫한 건지 물어보고 나도 말차 프레첼 두 봉지를 구입했다.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해 버스로 가는 길에서 만난 아이가 "선생님, 이거 드세요. 선생님께서 평소에 저희들 간식 많이 사주셔서 저도 이거 드리려고요." 하면서 나에게 오설록 녹차 웨하스를 쓱 내미는 게 아닌가? 이런 귀요미를 봤나ㅎㅎㅎ 수학여행 첫날부터 너무 훈훈했다.
둘째 날 아침,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1층 조식 장소로 내려가서 자리를 잡고 음식을 가지러 갔는데 그걸 본 한 아이가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랑 밥 먹으면 소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회 생활하고 있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ㅋㅋㅋ 내가 교장선생님과의 불편한 아침 식사로 인해 체할까 봐 걱정해 주는 귀요미라니... 그리고 그날 호텔에서 내가 묵는 방을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쓰는 방과 똑같다고 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고 해서 저녁 먹고 잠시 자유 시간일 때 와도 된다고 했고, 초인종을 눌러서 나가보니 "선생님과 함께 먹으려고 사 왔어요." 하면서 동문재래시장 갔을 때 산 크림떡 한 통을 들고 5명의 아이들이 찾아왔다. 한 30분 동안 같이 떠들었는데 선생님과 한 침대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신기하다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 선생님 방 구경 간다며 신나서 유명한 간식을 사서 오는 귀요미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3박 4일의 수학여행 기간 내내 어디서든 나를 보면 먼저 웃으면서 인사해 주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인사하는 모습이나 청소 시간에 어떻게 하는지 보면 그 학생이 어떤 학생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도에서 만나면 항상 먼저 인사해 주는 아이들, 청소 시간에 지도하는 교사가 없더라도 자기가 맡은 구역을 최선을 다해서 관리하는 아이들을 보면 흐뭇하다. 우리 학교 귀요미들은 숙소에서도 어딜 구경할 때도 나를 만나면 꼭꼭 먼저 인사를 해줬다. 내가 데이식스의 영케이를 좋아하는 걸 아는 아이들은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데이식스 노래만 나와도 나를 쳐다 보고, 영케이 캐릭터 인형이랑 사진 찍어야 하는데 왜 안 가져왔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셋째 날 방문한 스누피가든에서 산 작고 귀여운 굿즈를 내 크로스백에 달고 다녔는데 그걸 볼 때마다 귀엽다고 리액션해 주는 귀요미들, 새벽까지 숙소에서 놀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버스에서 쉬면 안 되냐고 하는 아이들이 꼭 있기 마련인데 한 번도 그런 불평불만 없이 버스에서 내려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들, 다른 버스를 타는 아이들 중에도 나를 만나기만 하면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 덕분에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난 1학기 수술로 인해 2개월의 병가를 끝내고, 출근한 날 친한 선생님께서 교문지도 하는 날이라 함께 교문에서 지도하고 있었는데 나를 본 2학년 아이가 달려와서 나를 안아 주었다. 2개월 간 쉬다가 출근한 첫날, 뭔가 나름 어색한 기분이 있었는데 이 아이 덕분에 스르륵 녹아내렸던 날의 기억도 선명하다. 우리 학교 2학년 귀요미들을 만날 날이 이제 2달도 남지 않았다. 겨울방학 학교 공사로 인해 12월 말에 종업식을 하기 때문이다. 내년에 고3이 되어도 이 아이들은 귀요미일 것 같지만 내가 내년에 고3 수업을 하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으니 남은 11월과 12월을 잘 보내야겠다. 우리 학교 2학년 귀요미들아, 샘이 너희들 진짜 좋아하는데 기말고사는 유전 파트가 들어가서 아마도 중간고사보다는 훨씬 어려울 거야. 일반선택과목은 등급이 나와야 해서 어쩔 수 없어. 미안해ㅠㅠ 내년에 샘이 고3 수업을 하게 되면 그때는 진로선택과목이니 등급 스트레스 없이 좀 더 즐겁게 공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