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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가 응원하는 정생물 1

정생물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 제자 일동

by 정생물 선생님

영화가 개봉하면 누적 관객 수 이런 걸 집계하듯이 19년 차 정생물의 누적 제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누적 제자가 늘어날수록 사회에서 만날 확률이 올라간다고 할 수 있겠지? 부산에서 근무하는 내가 서울에 놀러 갔을 때 광장 시장 안에서 제자를 만난 적이 있고, 영화 보러 갔다가 옆 자리에서 만난 적도 있고, 학교에 결핵 검사하러 온 버스 안에서 방사선사가 된 제자를 만나기도 하고, 아버지가 아파서 응급실에 왔다가 간호사 제자를 만난 적도 있다. 약속을 정하지 않아도 만나는 제자들부터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아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제자까지...


물론 나도 고등학교 때 은사님 몇 분께 아직도 연락드리지만 스승의 날과 같은 날에 연락드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1년 만에 전화드리기도 뻘쭘하고, 카톡 메시지나 문자 메시지 보내는 것도 좀 그렇고... 암튼 제자들과의 연락은 많아도 1년에 스승의 날 근처에 한 번 정도 하는 것일 텐데 이번에는 수술을 앞두고 의사나 간호사가 된 제자에게 연락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그냥 위로나 응원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내가 먼저 제자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데이식스 영케이 덕질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 영케이 인스타 공식 계정의 모든 것을 보고 싶어서 인스타를 올해 시작하게 된 것도 연락이 끊어졌던 제자들과 다시 소통하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ㅋㅋㅋ


계속 연락을 어느 정도 주고받던 제자나 의사, 간호사 제자들에게는 내가 궁금한 걸 물어보게 되면서 그들은 내가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누가 알고 있고 모르는지 헷갈려서 내 맘대로 이야기하다 보니 그리고 인스타에 사진과 글을 올리다 보니 많은 수의 제자가 알아버렸다. 지금은 30대 중반이 된 남자 제자가 주변에 좋은 형님 소개해달라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징징거리는 게 있어가지고 정은경의 남자가 된다는 게 상당히 피곤한 일일 텐데 그럼 제가 좋아하는 형님 소개 해주면 그 형님이 힘들어할 거라서 소개해줄 수 없다고 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잘 생각해 보라고 요즘에 수술 때문에 징징거렸지, 원래 친절하고 관대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참한 여교사 아니냐고? 그리고 그 아이의 논리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반박하기 위해 오빠한테는 안 징징거리는데? 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대화가 종료되었다. ㅋㅋㅋㅋㅋ


암튼 전신마취 수술의 후유증으로 응원을 받았는데도 잊어버려서 여기 못 적을 수도 있으니 자기 에피소드 없다고 서운해하는 제자가 없길 바랄 뿐이다. 제자들이 읽을 수도 있는데 내가 감동받은 순서대로 쓸 수 없어 근무했던 학교 순으로 적어본다. ㅋㅋㅋ 그리고 모든 번호에 다 증명할 수 있는 사진, 카톡 메시지, 인스타 디엠이 있지만 캡처해서 게시하지 않았다는 걸 참고부탁드린다.


1. 첫 번째 학교 제자

- 여기 1, 2기 아이들은 올해 30대 중반으로 마치 이 아이들과 나는 고등학생과 신규교사로 만났지만 뭔가 동기나 선배 같은 관계가 형성되어 버렸는데 왜냐면 아이들이 그때 선생님들 욕을 하면 나도 그 선생님들이 싫었기 때문에 같이 욕을 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사회에서 만나면 7살 차이는 누나, 언니 아닙니까? ㅋㅋㅋ 막 이러는데 특히 남자애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만났나 이 새끼야?"라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자기 부서 팀장, 과장, 점장 등등 자기랑 편안하게 지내는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젤 고마웠던 아이는 부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직장 생활하는 아이였고, 졸업 후 연락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뜬금없이 어쩌다가 연락이 되어 다른 한 명과 같이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기로 한 다음 날이 쉬는 날이라고 해서 저녁 늦게 만났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뒷 날에 쉬는 건 맞는데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부산에서 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사는 지역에 있는 역에서 5시 30분 기차를 타야 한다고... 우리가 저녁을 먹으러 고깃집에 들어간 게 저녁 8시였는데 운전해서 자기가 사는 곳까지 간 다음에 새벽 기차? 왜 말 안 했냐고 ㅠㅠ 그리고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고깃값도 계산해 버렸다는 ㅠㅠ 너무 미안해서 빨리 가야 되지 않냐니까 샘 보러 왔는데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해서 해운대 달맞이에 있는 24시간 하는 카페에 가서 새벽 1시 정도까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와 나의 수술 이야기, 그때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 등등을 하면서 놀다가 차를 태워 보냈는데, 졸음 운전할까 봐 걱정이 되어 커피를 쥐어 주고 도착하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그리고 MRI 판독 결과 들으러 가기 전날 또 내가 우울하다고 징징거려서 황령산에 야경 보러 데리고 가준 아이도 있고, 참 훈훈한 의리 있는 놈들이 많다.


2. 두 번째 학교 제자

- 나의 징징거림을 가장 많이 받아준 아이들이 속한 그룹으로 올해 30대 초반인 남자아이들이다. 부산에서 간호사를 하고 있는 제자는 무슨 전생에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아버지가 아플 때부터 항상 뭔가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가장 미안한 아이라서 뭔가 나름의 보상을 한다고 했지만ㅋㅋㅋ 나의 쓸데없는 말에도 리액션을 해주기 때문에 내가 계속 징정거리게 되는 아이ㅠㅠ ㅋㅋㅋ),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사는 아이들도 부산에 갈 일 있다고 만나러 오겠다고 해서 나에게 고기도 사주고 선물도 주고 ㅋㅋㅋ 또 이 아이들 만날 때 통화를 하게 된 아이들도 부산 가면 만나러 꼭 가겠다고 말해주고, 항상 카톡 메시지나 인스타 디엠 보내면 답해주고(항상 답해주는 건 아니고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할 때는 단호하게 읽씹 당함ㅋㅋㅋ), 11~12살 차이 나는 아이들이지만 친구같이 잘 지낸다. 그리고 내가 수술한 병원 응급실에 내가 가르친 아이가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어서 입원해 있을 때 치료실 앞에서 잠시 만나기도 했지.


3. 세 번째 학교 제자

- 여기서 만난 아이들은 올해 20대 후반에 속하는 남자아이들로 2학년 담임할 때 만난 손흥민급으로 축구를 잘해 우리 반 축구 우승의 주역과 내가 진짜 귀여워한 귀요미까지 이렇게 같이 만난 2명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응원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는 매년 의대에 아이들이 진학했고, 내가 생명과학을 가르치다 보니 그 아이들과 좀 친하게 지냈고 추천서를 내가 써주길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써주기도 했지. 의대에 진학해서 현재 레지던트, 인턴, 본과 학생 등등 여러 명이 있어서 자기가 아는 선에서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느라 나의 카톡과 전화를 많이 받았던 아이들. 미안해서 기프티콘으로 보답은 하고 있지만 ㅋㅋㅋ 은사님의 메시지에 그렇게 친절하게 답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3학년 때 내가 담임한 아이들도 수술 전에 5명이나 한꺼번에 만나게 되었는데 손편지와 바디워시 선물을 받고 감동했었다.


4. 네 번째 학교 제자

- 이 학교에서 내가 고3 담임을 한 게 21년이니까 이때 만난 아이들은 20대 초반 여자 아이들로 대부분 대학생이다. 고 3 담임했던 아이들은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경우가 많은데 여학생 특유의 감성으로 나를 응원해 줘서 감동의 눈물을 많이 흘렸다. 자꾸 대학생이라 자기들이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고, 응원 밖에 없다고 하는데 누가 누구를 위해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거 자체가 감동이거든 ㅠㅠ 나의 대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면 3학년 때 전공 수업이 가장 빡셔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학점 챙긴다고 고생 많을 텐데 ㅠㅠ


5. 다섯 번째 학교 제자

- 작년에 와서 고3 담임을 했으니 이 아이들은 올해 대학교 1학년 여학생이다. 인스타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내 소식을 알게 되고, 디엠으로 응원을 많이 해줬다. 그리고 올해 수업으로 만난 2학년 아이들도 수업 시간 마치고 나면 아프지 말라고 응원해 주고, 인스타 디엠도 보내줬지. 요즘 어느 학교의 교사가 병가를 쓰고 난 후에 그다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 아이가 수업 마치고 교탁에 와서 손가락으로 하트 만들면서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풍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다들 이런 낭만이 있던 교직 시절은 끝났다고 하지만 우리 학교 아이들은 아직도 이렇게 천사 같은 아이들이 많다.


온 우주가 응원하는 정생물 1

제목에 숫자 1이 있다는 건 그 뒤에 2, 3이 있다는 거다. 제자들의 응원뿐만 아니라 현임교 선생님들의 응원과 내가 거쳐온 여러 학교에서 맺은 인연으로 아직도 연락하는 선생님들의 응원이 뒤에 나올 예정이다. 온 우주가 응원하는 정생물에 대한 팩트 체크를 해야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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