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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생물 선생님 May 24. 2024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남학생들에게 받은 최고의 생일 선물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명대사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ㅋㅋㅋ 이 대사랑 라면 그림, 남학생에게 받은 생일 선물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트레이닝복

2010년, 5년 차 정생물은 2번째 학교인 남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첫 번째 4년 근무한 학교는 남녀공학이었기 때문에 남학생과 수업은 해봤지만 담임은 다 여학생반만 했기 때문에(그 당시 남녀공학은 거의 다 분반이었다. 현재는 선택과목이 너무도 다양하여 거의 남녀합반이라고 알고 있다.) 남학생 담임은 처음이었고, 그렇게 남학교에서 근무하는 첫 해에 나는 2-7 담임을 맡게 되었다.


5년 차 경력교사 정생물은 남학생 앞에서 쫄지 않기 위해 3월에 많은 노력을 했는데 28세 정생물은 결국 또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아이들에게 안 들킬 수 없었으며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5월 달에 제주도로 수학여행 갔을 때도 아이들이 날 친구처럼 대했고, 야자 시간에도 내가 감독인 날 편안한 마음으로 야자를 째고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해서 나를 빡치게 했다. 야자를 째고 난 뒷 날 불러서 앉았다 일어나기, 오리걸음 등의 벌을 줬지만 아이들은 헬스장에 운동하러 온 것처럼 행동해서 또 빡친 나는 더 높은 강도의 벌을 주었고, 그러자 땀을 흘리며 조금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고 또 미안한 마음에 손 씻고 세수하고 오라고 말한 뒤에 코코아를 타주곤 했다. 그러면 또 코코아 마시면서 생글생글 웃는 아이들이 참 귀여웠다. 그 후에 들어보니 코코아 마시고 싶은 날에는 야자를 쨌다며 야자 째는데 코코아 타준 선생님이 잘 못 한 거라며 야자를 쨀 수밖에 없었던 건 다 내 탓이라고 해서 어찌나 웃겼던지 ㅋㅋㅋㅋㅋ 그게 지금 할 말이가 하면서 단순한 남학생의 뇌구조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런 쿨한 뇌의 회로를 돌릴 수 있다는 게 약간 부럽기도 했다.


반장 민수도 든든했고, 부반장 동익이와 민기도 자기 역할을 잘해주었다. 첫날부터 반을 잘 못 찾아갔다가 늦게 우리 반에 온 영준이와 형호도 귀여웠다. 개금고 옆에는 테마공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밖에서 보면 안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공간이었지만 들어가 보면 운동 기구도 많고 작은 축구장도 있어서 이 아이들 데리고 가서 보물 찾기를 하기도 했고, 이 해 나의 업무 중 하나는 학예제였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오렌지 캬라멜로 무대에 올라 많은 호응을 얻었다.


내 생일은 1월 13일로 항상 겨울방학 때 있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부터 선생님이 되고 난 후까지 학기 중에 생일이 있는 친구들 생일은 많이 챙겨준 것에 비하면 내 생일을 챙겨주는 아이들이 적다는 생각에 항상 속상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때만 해도 방학 때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보충 수업에 참여하는 일괄 보충 수업을 할 때라 우리 반 앞에 있는 보충 수업 시간표에 있는 내 생일에 나는 철없게 동그라미를 해두었다.


동그라미를 해둔 것도 잊고, 보충 수업 때 제대로 학교를 오지 않고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빡쳐서 그랬을까? 생일날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축하를 해주기는커녕 교실 뒤편에 큰 박스가 놓여 있어서 그 박스를 발로 차면서 "이거 뭔데 여기 있는 거야? 빨리 치워"했는데 또 반응이 없는 아이들 때문에 한숨 쉬면서 교무실로 왔다. 얼마 지나서 우리 반 아이들 몇 명이 교무실로 그 박스 위에 편지를 올려서 가지고 왔다. 생일 선물이라고 주고 갔는데 내가 아침에 발로 찼던 그 박스가 내 생일 선물이었다니 ㅠㅠ 참 미안했다. 그 후에 미안했다고 하니까 자기 선물인 줄도 모르고 발로 차는 내 모습이 참 웃겼다고 해서 ㅋㅋㅋㅋㅋ 이 놈들이랑 나는 진짜 뇌구조가 다르구나 또 한 번 느꼈다.


이때 우리 반 아이들에게 받은 내 생일 선물은 단순하고 용돈이 부족한 남학생들이 준비해서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박스를 열었더니 엄청 다양한 종류의 라면이 30~40 봉지 들어 있었고, 자기 집에서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라면 한 봉지씩 가져와서 박스에 넣고, 그 위에 한 마디씩 적은 것이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한 명대사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을 패러디해서 2-7 아이들이 한 봉지 한 봉지 모았다고 말하는 영준이 글을 읽자마자 빵 터졌다. 애들이 전쟁 일어나도 선생님은 이제 걱정 없다고 ㅋㅋㅋㅋㅋ 나는 이 라면 다 다른 종류인데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끓여 먹기도 힘들고, 언제 한 봉지씩 다 끓여 먹지 걱정했다는 ㅋㅋㅋ


영준이는 3학년이 되어 자기 후배들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나에게 스승의 날에 야구 방망이를 선물하면서 애들한테 무섭게 하라고 ㅋㅋㅋㅋㅋ 자긴 내가 안 무서워서 마음대로 야자 째는 혜택을 다 누렸으면서 후배들이 그런 혜택을 누리는 건 싫었는지... 2011년 때 내가 맡은 2-7도 뽀또 에피소드에서 나오듯이 참 꼴통들 많았는데 나랑 잘 맞아서 즐겁게 1년을 보냈다. 영준이는 이제 결혼해서 자기랑 닮은 아들을 키우고 있다. 얼마 전에 연락했을 때 네가 나에게 준 야구 방망이 다시 돌려줄 테니 아들이랑 야구하라고 말했다. ㅋㅋㅋㅋㅋ 부인이 둘째를 임신해서 조만간 아들 2명의 아빠가 된다고 하는데 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구나 싶었다.


남자들의 소울 푸드는 돈가스, 국밥, 제육, 라면 이런 것이라고 알고 있다. ㅋㅋㅋ 자신이 아끼는 라면을 나에게 선물한 귀요미들, 이제 다들 30대가 되어서 잘 살고 있겠지?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길 때 너희들의 삶을 항상 응원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걸 생각하고 화이팅 하길,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잘 살 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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