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온 마음을 담아 기도하고, 응원할게요.
2019년, 14년 차에 4번째 학교에서 만난 성연이에게 받은 사랑이야기이다. 2018년 나는 4번째 학교로 이동하게 된다. 13년 차에 처음 근무해 보는 여고로 이동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성격이 남학생과 잘 맞다고 찰떡같이 믿고 있었으므로 여학생들이 좋다고 여학교에서만 근무하려고 하는 선생님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학교에서 근무하고 난 뒤 나는 5번째 근무 학교로 여학교를 선택할 만큼 여학생들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성연이는 2019년 고3 생명과학 수업에서 만난 아이로 그 학교 이과반에서 공부를 아주 잘하던 2명 중에 1명이었다. 어느 학교나 이과반 탑을 찍는 학생들이 대부분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것처럼 이 2명의 학생들도 의대 진학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 2명의 성적은 비슷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수업 태도는 확실히 달랐는데 성연이는 다 아는 내용을 수업해도 항상 바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하였고, 4 단위나 되어 수업이 지겨울 때쯤 8반 아이들이 놀자고 나를 꼬시면 마피아 게임 등을 종종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웃으면서 열심히 친구들과 놀던 해맑은 아이였다.
교사는 편애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내 수업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는 성연이가 재수하지 않고 현역으로 의대에 진학하길 누구보다 응원했던 한 사람이었지만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듯이 성연이는 재수를 하게 되었고, 1년 더 공부를 하고 의대에 가게 되었다.
2021년 스승의 날에 성연이는 담임선생님도 뵐 겸 학교에 찾아왔는데 고맙게 나에게도 인사를 하러 왔었다. 스타벅스 텀블러와 정성 가득한 손 편지를 써서 함께 가지고 왔었지. 그 손 편지 내용 중에는 자기가 의대 진학에 실패 한 걸 대부분의 선생님이 알고 계셨지만 따뜻한 이야기 해주시는 분은 몇 분 안 되었는데 내가 그중 한 명이었고, 승리의 빅토리 반지 만들어 주신 것도 고맙다는 것이 있었다. 빅토리 반지가 뭐지? 했는데 아이들이 수능 끝나고 교실에서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내가 3D펜 몇 개를 들고 가서 관심 가지는 애들 몇 명이랑 이것저것 만들면서 성연이에게 만들어준 어설픈 반지였다. 그 어설픈 반지 덕분에 늘 힘들고 벅찼던 재수 생활 속에서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고 말해주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그리고 고등학생 때도 재수할 때도 의대생이 되었을 때도 내가 계속 응원해 주는 것에 걸맞게 정말 따뜻하고 실력도 있는 의사가 되겠다는 내용도 참 훈훈했다.
그 뒤에도 종종 연락하고, 밥도 한 번씩 같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 의대에 진학을 했기 때문에 자주 보기는 어려웠고, 올해 1월에 수술해야 된다는 진단을 받고 의사가 된 제자들과 연락하다 보니 성연이가 생각나서 본과 2학년 생활을 응원하고 싶어서 기프티콘을 보냈다. 성연이는 휴학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올해 2월 마지막날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맛있는 파스타를 사주고 싶어서 마린시티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겟 201에서 만났는데 성연이는 또 훈훈하게 손편지와 선물을 챙겨 와서 나에게 건넸다. 선물은 샴푸와 바디워시였는데 손 편지 마지막에 이 선물의 의미가 적혀 있었다.
향에 예민한 편이라 좋아하는 향의 샤워용품을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자기를 위한 선물로 사용하는 편인데 그렇게 하면 스스로를 챙기는 기분도 들고 포근한 느낌도 들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향의 샴푸와 바디 워시를 내가 유용하게 잘 쓸 것 같아서 선물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낸 스타벅스 기프티콘과 메시지를 받은 날은 나로 인해 온종일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뒤에 알게 된 내 수술 소식으로 인해 마음도 안 좋고 걱정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 예과 때 놀았던 이야기, 본과 1학년을 보내면서 느꼈던 점, 내가 수업과 업무만 해도 힘들었을 텐데 자기와 친구들을 진심으로 아껴줘서 감사하다며 자기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하는 것이 힘든 것이라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은데 내가 늘 따뜻하게 품어줘서 오늘날의 자기가 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래서 자기도 나에게 받은 사랑을 베풀고 전할 수 있는 따뜻한 의사가 되겠다는 말과 함께 내 수술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내용까지... 또 빨리 멋진 의사가 되어 내가 아플 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장문의 손 편지를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년째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왜 내 자신을 제대로 챙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병원에 입원하면 선물로 받은 샴푸와 바디워시를 챙겨 가서 성연이가 느낀 기분을 나도 느껴봐야지... 나는 따뜻하게 챙겨준 기억이 거의 없는데 그냥 내가 교사로서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뭐가 이렇게 나에게 고마운 게 많다는 말인가? 성연이는 부모님께서 그렇게 키우셨기 때문에 따뜻한 아이로 자라서 따뜻한 의사가 될 텐데 왜 그 공이 나에게도 일부 있다고 표현해 주는 것일까?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연이 너무 훈훈하다고 성연이를 1학년 때 가르치고 장학사가 된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자기도 성연이를 너무 보고 싶다고 해서 4월 10일 우리는 투표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수안 커피에서 만나게 되었다. 성연이에게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휘낭시에를 사서 갔는데 성연이는 또 수술을 앞두고 있는 나를 위해 건강 부적과 함께 머그컵과 엽서를 나에게 주었다. ㅠㅠ
뒷날 출근해서 건강 부적에 내 이름을 써서 지갑 안에 넣고, 엽서를 다시 한번 읽어봤는데 성연이에게 허락을 받고 엽서 내용을 공개해 본다. 엽서의 그림은 젤 위에 나온 르누아르 그림인데 나와 이야기하다가 내가 르누아르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 엽서를 선택해서 편지를 써 온 것이었다.
이 엽서를 받은 날이 4월 10일이었고, 오늘은 5월 22일이다. 벚꽃이 지는 늦봄이 아니라 이제 초여름이 시작되는 5월 하순에 접어들었다. 성연이 말처럼 시간이 흘러서 내 수술도 잘 진행되었고, 회복도 아주 조금씩이지만 매일매일 몸이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성연이가 온 마음을 담아 기도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선물한 건강 부적의 효과는 10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