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복실에서 만날 수 있어요

선생님의 활력징후를 직접적으로 담당해 볼게요!

by 정생물 선생님

고등학교 졸업 후 의대에 진학해 마취과 의사가 된 아이에게 받은 과분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 아이의 고2, 고3 생명과학 수업을 2년간 담당했으며 담임으로 만나지는 않았다. 이때만 해도 대학 수시 전형에 교사 추천서가 필요한 경우가 많았고, 생명과학 분야로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나에게 추천서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담임은 아니었지만 2년 동안 생명과학을 가르치면서 지켜봐 온 선생님께서 추천서를 써주시면 좋겠다고 찾아온 아이들 추천서는 당연히 내가 써줘야지.


대한민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아무래도 문제를 푸는 시간일 것이다. EBS 수능 특강과 수능 완성, 그리고 수능 기출문제집, 각종 사교육 학원 문제집 등등 하루 종일 객관식 문제를 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 문제를 다 풀고 동그라미를 하고 있는 영균이가 가지고 있는 빨간 펜이 좋아 보여서 관심을 가졌더니 선물로 하나를 줬다. 나도 각종 수행평가 채점을 하려면 빨간 펜이 필요하니까 ㅋㅋㅋ



영균이는 그 해 운 좋게 의대에 입학했고, 2016년 2월 졸업한 이후로 우린 페이스북을 통해 어쩌다 한 번 정도 연락했을까 그 후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게 되었다. 올해 1월 29일 병원 진료에서 수술해야 된다는 진단을 받고, 그냥 문득 의대에 간 귀요미들이 생각났다. 이 아이와 친구인 우리 반 반장이었던 재정이도 이 아이와는 다른 의대에 합격했으니 혹시 아직도 연락하고 있지 않을까 해서 재정이 안부를 물으며 이 아이의 안부도 물어봤는데 내가 수술을 하고 싶었던 대학병원에서 마취과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대학병원에 진료를 보러 가는 날 영균이를 만나고 싶어서 연락처를 받아 졸업 후 거의 10년 만에 뜬금없이 카톡을 보냈는데 진료 마치고 만나자는 내 말에 좋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 거의 10년 만에 만나는 건데 단 둘이 만나면 무슨 말을 하지? 너무 어색할 것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2년 간 생명과학을 가르쳤고, 날 잘 따라와 줬던 아이가 훈훈한 20대 청년 의사가 된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진료를 마치고 우리는 병원 입구에서 만났다.


서로 옛날과 똑같다며 처음에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점심 먹으러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 특히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의 물꼬를 터버린 우리는 마치 어제 고3 교실에서 수업 시간에 만난 선생님과 제자처럼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 나갔다. 점심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 제가 뭐 아직 완전한 의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아는 선에서 대답해 드릴 수 있으니 선생님 진료 본 것 관련해서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 하는데 어찌나 든든하던지.


제자로 생각하지 않고, 진짜 의사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궁금한 이것저것을 물어봤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안과 수술을 위해 나는 전신 마취를 했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은 적은 있지만 내 기억에 없으므로 이번 전신 마취를 하고 개복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은 나에게 너무 큰 스트레스이자 두려움이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 차갑게 보이는 수술실에 들어가는 상상만 해도 잠이 안 올 정도로... 그리고 집도를 담당하는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면 내 건은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나는 2월부터 석 달 동안 거의 매일 하루에 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그 후 카톡으로 내 수술과 관련하여 나는 질문이 생길 때마다 편안하게 물어봤고, 병원 투어를 3군데 다니면서 어느 병원에서 수술할지 고민하다가 여러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도 중요했지만 결국 내가 직접 진료를 봤을 때 가장 신뢰가 가는 분께 수술을 받고 싶어서 대학 병원에서 수술하는 걸로 결정을 내렸다. 이 아이는 지금 레지던트라 한시적 백수인 상태이지만 선생님께서 수술하게 되는 5월이 되면 자기가 복귀해 있을 테니 마취를 담당하겠다며 이야기했다.


5월이 되었지만 이 사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마취과 의사로서 내 활력징후를 담당하겠다는 아이는 결국 수술실과 회복실에서 나를 만날 수 없었다. 내가 이야기를 하다가 "수술실 밖에서 보호자랑 인사하고 나면 무서운 수술실 안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텐데 그때 네가 있다는 거지?"라고 질문했는데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통과하는 회복실에서부터 자기를 만날 수 있고, 선생님이 무섭지 않게 옆에 있어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진짜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자기 엄마도 이모도 아니고,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담임도 아닌데 이런 멘트를 나에게 해주다니... 내가 마취과 의사였고, 내 은사님이 우리 병원에서 수술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라면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과연 건넬 수 있었을까? 괜히 우리 병원에서 수술하시는데 내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려도 그 수술 결과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을 텐데... 이런 생각에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느낌의 표현을 나는 못 했을 것 같은데 ㅠㅠ


이 아이를 가르쳤던 학교는 내 교직 생애 근무한 3번째 학교로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학교에서 근무했던 4년을 내 교직 생애 암흑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아이를 시작으로 이때 만나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던 아이들 몇 명과 수술 전에 만났는데 만나면서 이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담임을 했던 2014년과 2016년 때 우리 반 아이들 명렬을 봤는데 진짜 나를 힘들게 했던 아이는 우리 반 아이들 중 10%도 안 되는 걸 알고 너무 놀랐다. 진짜 내 기억에 이 학교 아이들은 70~80%가 이상하고, 나머지가 귀요미지 이런 느낌으로 남아 있는데...


이 학교에서도 나와 소통하던 귀요미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 10%도 안 되는 안 좋은 기억들이 너무도 크게 느껴져서 그 학교에서 근무하던 내 소중한 4년의 시간을 불행했던 시간으로 왜곡해서 기억했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내 암흑기라고 생각했던 그 4년도 나에게 결국 빛이 나던 시간이었고, 나를 교사 같지 않다고 평가하는 교원평가 글에 상처받아서 나 같은 교사가 자기 학교에 근무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교원평가 글에 좀 더 집중하고 귀요미들을 케어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교사는 아이들의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동료 교사와 관리자의 한 마디도 중요하고, 학부모님의 한 마디도 중요하지만 결국 나는 학생들과 래포를 형성하고, 소통이 잘 되면 그 한 해는 정말 행복하다고 느낀다. 90%가 넘는 아이들과 그 학교에서도 나는 잘 지냈는데 왜 내 기억에는 그 시절이 불행함으로 가득한 시절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이 학교를 졸업하고 이번에 만난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희 모교에서 근무했던 시절도 암흑기가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며 너희 모교를 잘못 평가했던 죄로 비싸고 맛있는 걸 사준다며 이야기했다. ㅋㅋㅋ


회복실에서 만날 수 있어요.

이 한 마디를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내 수술이 잘 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는데 잘못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그리고 나중에 다른 글로 적겠지만 내가 수술한다는 것을 알렸을 때 동료 교사와 제자로부터 받은 응원이 너무나도 많아서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나 생각하게 되었으므로 신이 있다면 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고, 전신마취 개복 수술을 받은 나는 오늘로 수술 후 2주 정도가 지난 상황이라 아직도 배가 땡기고 아프지만 하루하루 진짜 조금씩 회복되는 기분이 들어서 즐겁게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19년 차 만에 수술로 인한 병가 기간 동안 쉬면서 이렇게 쓰고 싶었던 글도 써보고 말이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샌드위치와 손 편지 사진은 진료를 받으러 간 날 스타벅스에서 조찬 모임을 가졌을 때 찍은 사진이다. 영균이가 나에게 선물 많이 받았다며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주고 손 편지에 진심인 나에게 편지도 전해줬던 시간. 영균이가 고등학생 때 나중에 의사가 된 후에 선생님께서 제 병원에 진료받으러 오시면 진료비는 안 받을 거라고, 그 돈은 자신의 학창 시절에 이미 다 지불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교사로서 남의 자식 챙기는 일을 할 뿐인데 이렇게 자기를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더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