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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흔 Aug 11. 2022

머리 땋는 남편

신혼여행과 신혼인사 기간 내내 남편은 저의 전담 미용사였습니다. 

워낙 급하게 준비한 결혼식치곤 식이 끝날 때까지 별다른 차질 없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결혼식이 오후 두 시 반이었으므로 피로연까지 다 끝나고 나니 공항으로 이동할 시간이 다 되었더라고요. 물론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습니다. 아마 거의 저녁 마지막 비행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주 공항에 내린 시간이 일곱 시가 넘었거든요. 숙소는 서귀포 H 호텔에서 3박을 하는 것으로 예약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때까지 없던 문제가 호텔이 와서 생겼습니다. 결론적으로 저희가 예약한 방이 무슨 까닭에서인지 이중으로 예약이 되면서 방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저희를 호텔로 안내했던 여행사 직원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이리저리 수단을 마련해보려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첫날밤을 길바닥에서 보낼 판이었습니다.      

저희를 안내한 여행사 직원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저희를 다시 제주시로 데리고 갔습니다. 저희는 일단 잠을 잠 곳만 있다면 아무 곳에서라도 쉬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여관의 상호는 “동남장”인지 “서남장”인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비슷한 이름의 여관이었습니다. 그나마 황금 같은 5월에 숙박시설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으므로 저희는 그냥 그곳에 투숙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첫날밤을 허름한 여관에서 보냈습니다. 




옷을 걸어 두려고 벽장을 열어 보니 봉투가 몇 개 나왔습니다. 봉투의 뒷면을 보니 고모님, 큰어머님, 등등 얼핏 보아도 절값이 담겨있던 봉투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글귀가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서, 저희처럼 신혼 첫날밤을 보낸 신혼부부가 다녀간 방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첫날밤치고는 빈약한 밤을 보냈습니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니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머리를 다듬어야 하는데, 호텔도 아니었고 특별히 머리 손질할 곳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관광차 예약한 택시 기사님께서 오실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난감하더라고요. 그때 안절부절못하는 저를 본 남편이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이리 앉아 봐. 내가 해 줄게.”




저는 남편의 솜씨를 믿을 수 없긴 했지만, 이미 엉클어진 머리를 남편 손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생각보다 꼼꼼하더라고요. 제 머리 모양이 약간 복잡했습니다. 머리 양쪽에 마치 관을 쓴 것처럼 옆으로 땋아서 머리 뒤까지 돌린 다음에 뒤에서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한쪽 머리칼을 먼저 풀었습니다. 그리고는 반대편 머리칼을 보면서 한 올 한 올 땋아갔습니다. 그렇게 한쪽을 완성한 다음에, 다시 반대쪽 머리칼을 풀어서 이번에도 새로 땋은 쪽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땋아갔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머리를 보니 예식장 미용실에서 했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말끔하게 땋아졌습니다.     




우리는 첫날밤을 여관에서 지내고 나니 나머지 이틀 밤이 걱정되었습니다. 일단 H 호텔에 전화해 보니 예약이 가능하다고 하길래 일박만 예약했고, 나머지 일박은 바로 옆에 있는 S 호텔로 예약했습니다. 그렇게 저녁 숙소까지 해결하고 나니까 택시 기사님께서 오셨습니다. 저희는 서울에서 아예 기사님에게 2박 3일의 제주도 관광 일정을 예약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그 기사님께서 안내하는 대로 여행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신혼부부 1쌍과 함께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사님이 기사 겸, 가이드 겸, 사진사의 역할까지 일인 다역의 역할을 하시면서 신혼부부들의 제주도 여행을 맡아서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친구들의 집에 갔을 때 신혼여행 사진을 보면 거의 모든 사진이 인물만 다른 채 배경과 자세가 똑같은 사진이 많았습니다. 물론 저희 사진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렇게 3박 4일의 여행 기간 내내 저는 남편으로부터 특급호텔의 미용사 못지않은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끝내고 올라와서 친정에 갈 때와 친척들을 만나는 장소에 나갈 때까지 남편의 서비스는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부터 풀어놓으면 남편 자랑질을 하는 것일까요? 친구들과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은 지금도 말이 나오면 그 시절을 기억하면서 웃곤 합니다. 이런 남편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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