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부부는 일단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저에게는 가까운 친구가 넷이 있습니다. 저까지 다섯 친구의 모임은 가장 늦게 결혼한 저의 결혼과 동시에 다섯 가족의 모임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가족 모임은 각각 부부와 두 명의 아이들까지 모두 스무 명의 모임으로 인원수가 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무 명은 매년 크리스마스날 저녁 모임을 함께 가졌습니다. 물론 여자 친구들끼리는 평상시에도 수시로 만나곤 했고요.
공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저희 모임 안의 소모임 격인 "마다친"이라는 모임 명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도 모두 성장했기 때문에 여자들끼리만 만나고 있습니다만, 그때만 해도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만나다 보니까 "마누라의 다섯 친구 남편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지은 남편들의 모임 명이었습니다.
모임은 주로 호텔의 뷔페를 이용했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2차로 나이트도 가고 하면서 그 날만큼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들도 아주 좋아하더군요. 술을 마셔도 가족과 함께 마시니, 더군다나 아내의 친구 남편들과 마시니까 많이 마신다고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일도 없었거든요. 행여라도 아내가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당신 친구들 모임에서 마시는 건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대꾸가 돌아옵니다. 어떨 때는 남편들끼리도 술을 마시곤 했는데, 그럴 때도 아내들은 구박은 꿈도 꿀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회비까지 지원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 친구들 모임으로부터 생겨난 일이었기 때문이죠.
패키지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남편들을 개선문 앞에서 패키지 팀과 함께 귀국하도록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을 보내는 친구들과는 달리 남편을 보내려니 공연히 이산가족이 되는 것 같은 생각에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 일로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걸핏하면 저를 놀렸습니다. 그때가 결혼한 지 15년이 지난 때였는데, 친구들은 그때까지도 신혼이냐고 하면서 놀렸던 것입니다. 저도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장면을 회상하면 마음이 찡하면서도 웃음이 나오긴 합니다.
그렇게 모여 다니다가 친구 중 한 명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는 일이 있었고, 그 이후로는 가족 모임 대신에 여자들끼리만의 모임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다 커버려서 더 이상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긴 합니다만.
지금은 비록 다섯 친구에서 네 친구가 되었지만, 먼저 떠난 친구도 이렇게 남은 네 명의 친구들끼리 계속 가깝게 지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많이 쌓기를 원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네 명이 만나지만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항상 다섯 친구들이거든요. 언제까지라도 그럴 것입니다.